★야곱 이야기(창세 25,19-36장)
*‘에사오와 야곱’ 이야기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
간교하고도 반윤리적인 성품을 지닌 둘째 아들 야곱이
어찌해서 도덕적으로 흠 없는 맏아들 에사오보다
더 많은 축복을 받고 선택된 민족이 되어
신앙인의 조상이 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유다교와 그리스도교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
예정론적 교조주의에 의해서 풀어나간다면,
이것은 성서의 가르침을 더 이상 귀 기울일 필요도 없는
무가치한 종교 독단론으로 전략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할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 결코 그런 예정론적 교조주의를 강요하지 않는다.
․성서는 야곱이 간교하게 형을 속여 장자권을 탈취하고,
․눈먼 아버지를 속여 유언의 축복을 훔치는 비인도적 행위를
신의 선택과 예정의 한 특권이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
성서는 야곱의 이러한 행위 다음에 그에게 찾아온 것은
불안과 두려움, 쫓기는 삶이었다고 한다.
․또한 야곱은 인적 없는 광야에서 외로이 노숙해야 했고(28,10-22),
․외삼촌 댁으로 도피해서는 오랫동안 노동 착취를 당했으며(19장-31장),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하느님으로부터 일격을 당해
졸지에 절름발이가 되었다고(32,26) 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형 앞에서 일곱 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하는(33,3)
굴욕적 항복을 해야 했다고 말하고 있다.
※敎條主義 : 사실의 검증없이 사물을 설명하고, 또는 신봉하려는 맹목적 태도
*그렇다면 이러한 야곱이 어떻게 하느님의 축복의 계승자가 되고
선민 이스라엘의 성조가 될 수 있었을까? :
성서는 이 물음에 ‘야곱이 이스라엘로
개명된 이야기’(32,23-33 ; 35,9-15)를 통해 답하고 있다.
․32장 23-33절의 이야기는 : 야뽁 나루터의 이름이
‘하느님의 얼굴’이란 의미의 브니엘로 바뀌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이야기에 의하면,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변화는
야곱이 야뽁 나루터에서 하느님께 일격을 허리에 맞고
절름발이가 되는 고난의 경험에 의해서 일어난다.
즉, 야곱은 이렇게 절름발이가 된 후에야
비로소 이스라엘로 개명되는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는 것.
․그 다음 35장 9-15절의 이야기는 :
야곱이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오자
야훼 하느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 후손에 관한 약속을
재천명해 주시는 야곱 이야기의 대단원.
*이렇게 야곱의 승리는 :
예정론적 교리의 한 결과가 아니라
고난을 통한 진정한 자기 발견과 참회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야곱 이야기에서 :
간교하고도 반도덕적인 인간 야곱이
하느님이 주시는 고난의 째찍을 통해 회개하고
‘이스라엘’로 전환되는 특수한 구원사를 읽게 된다.
즉,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무너지고 낮아지는 회개와
그 고난의 삶 한 가운데에서
오히려 신의 은총과 구원의 손길을 발견하는 믿음을 통해서
‘이스라엘’이라는 선민이 창조되는 구원사를 읽을 수 있다.
<황 모니카 수녀님 강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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