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토마도 같이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그리고 토마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토마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20, 26-29).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이 외침은 처음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토마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을 목격하고 말한 신앙 고백이다.
복음에는 죽음을 이기시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예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와 위로와 굳센 신앙을
주시는 내용이 나온다(요한 20, 24-29 참조).
예수님을 굳게 믿고 따라다녔던 제자들이었지만,
예수께서 어처구니없게도 유다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자,
그들은 예수께 대한 신앙도 흔들리고
또한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굳게 잠그고 숨어 있었다.
그 때 예수께서 문이 잠겨 있는데도 들어오셔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요한 20, 19) 하고 인사하신다.
그러자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들은 진정 부활하신 예수께서 주시는 평화의 인사를 받고,
이제는 두려움과 공포에 떨지 않고
오직 영광의 주님만을 믿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는 데에서 힘을 얻고
주님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없었던 토마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다른 제자들이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요한 20, 25) 하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도 불구하고 토마 사도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 25)라고 말했다.
즉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지 않고서는
예수 부활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토마 사도의 이러한 태도를 보고
가끔 토마 사도의 불신앙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사실 토마 사도야말로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확신하고
우리 그리스도인 신앙의 핵심을 고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 토마 사도의 신앙관
토마 사도의 신앙관에 대해 생각해 보자.
토마 사도는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던 베다니아로 가자고 했을 때
"우리도 주님과 함께 생사를 같이합시다."(요한 11, 16)라고 말한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제자들은 망설이고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선생님과 함께 죽으려고 생각할 만큼
예수님을 사랑하였고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셨을 때
토마 사도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토마 사도가 자리에 없던 차에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뵈었다는 말을 했을 때
그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 주일이 지난 뒤 다시 예수께서 나타나셨다.
그 때엔 토마도 자리에 있었다.
예수님은 토마 사도의 마음을 아시고 그에게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라고 하신다.
토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손으로 만져 확인한 후에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외쳤다.
이것은 대대로 유명한 신앙 고백이 되었다.
이렇게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으로 받아들인 토마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인도 지방에 가서 열심히 전교했다고 한다.
2. 토마 행전의 일화
토마 사도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토마 행전'이라는 외경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토마 사도의 성격과 태도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이 세상 곳곳으로 나가 복음을 전파하려고 할 때였다.
전교 지방을 정하려고 제비를 뽑아 보니, 토마는 인도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토마는 처음부터 인도에 가기를 거절하였다.
즉 자기는 긴 여행을 할 만큼 굳세거나 강건하지도 못하고
또 히브리 사람으로서 어떻게 인도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서
설교를 할 수 있는가 하고 인도에 가는 것을 거절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밤에 그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라, 토마야.
인도로 가서 거기에서 말씀을 전하라.
나의 은총이 너와 함께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토마는 그래도 완강히 거절하면서
"당신께서 보내 주시는 곳이라면 어디에라도 보내 주소서.
그러나 인도에만은 가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마침 아바네스(Abbanes)라고 하는 인도의 상인이
왕의 명령을 받고 예루살렘에 와서 숙련된 목수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토마는 목수였다.
그 때 예수께서 아바네스에게 와서 "나에게는 목수인 노예가 있는데
그를 팔고 싶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윽고 계약이 성립되고 토마는 팔려 가게 되었다.
계약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목수 요셉의 아들인 나 예수는 이름을 토마라고 하는
나의 노예를 인도의 군다포러스 왕의 상인인 아바네스에게 팔았다고 하는 것을 인정함."
이 증서를 작성한 후에 예수님은 토마를 찾아서 아바네스에게로 데리고 갔다.
아바네스가 토마에게 "이분이 너의 주인인가?" 하고 묻자
토마는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아바네스가 "내가 이분으로부터 너를 샀다."고 말하자
그 말에 토마는 아무 말도 안했다.
그리고 나서 토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도를 드리고 예수께 이렇게 말했다.
"주 예수이신 당신께서 원하시는 곳이라면 어디에든지 가겠습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그 후 토마는 인도에 가서 군다포러스 왕의 궁전을 세우고
거기서 복음을 전하여 인도에 그리스도교를 가져오게 했다.
이상이 토마 행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 토마 사도의 성격과 신앙의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이렇게 토마 사도의 성격은 확신하는 데 더디고 순종하는 데도 더디다.
그러나 한번 확신하고 나면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용기 있고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토마 사도와 같은 신앙은 말뿐만의 신앙 고백보다도
훨씬 더 믿음직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토마 사도가 고백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요한 20, 28)이란
바로 예수가 주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한 것이다.
3. 시련을 극복하는 신앙
사도 바오로도 로마서에서 이렇게 신앙을 고백했다.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로마 10, 9).
예수께서 주님이심을 고백한 것은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과 지배권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신뢰하는 것이다.
오늘날 토마 사도의 신앙 고백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은
우리로 하여금 여러모로 신앙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바가 많다.
우리는 과연 예수께 대한 신앙을 어떻게 갖고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그분을 진정으로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있는지?
'주님'이란 히브리 말로 '아도나이'(나의 주님)라고 하는데
이것은 종이 주인 앞에 나아가 부르는 표현이다.
바로 이 표현은 하느님께서는 나의 주인으로서
나의 생사권을 쥐고 계시므로
나를 그분 마음대로 그분 뜻대로 내맡기는 신앙의 태도이다.
토마 사도가 처음엔 인도로 가기 싫어했지만
주인인 예수님이 그를 종으로서 인도 상인에게 팔았을 때는
예수께 순종하고 인도로 갔듯이,
우리도 일상 생활 중에 종이 주인에게 순종하듯이,
하느님께 순종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다고 하면서도
인생의 중요한 사건이나 시련이 닥쳐올 때엔
하느님께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고 점을 보러 가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도 중요한 사건 때마다 그렇게 한다면,
즉 대학 입시, 혼배, 궁합 등등….
그리고 우리는 이웃 사람이 교회에 나가니까
아무 뜻도 없이 덩달아서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가는 것은 아닌지.
과연 우리는 토마 사도처럼 예수님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고 노력했는지.
우리 신자들 중에는 영세하고 얼마 안 가서 냉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냉담의 이유는 여러 가지로 많겠지만
냉담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영세 이후에
교리에 대해서 더 이상 알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이다.
그저 미사 참례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집에 돌아가서는 더 이상 기도도 안 드리고 교회 서적도 읽지 않는다.
교회에서 출판되는 신심 서적은 고사하고
정기 간행물도 읽지 않고 가톨릭 신문조차 읽지 않는다.
그리고 영세 후에 신심 단체나 교회 활동도 안하고
신자로서의 도리도 안하면서 신앙이 굳세지 못하다고 한탄한다.
신앙이라는 것은 나의 의지 없이는
다른 사람이 아무리 도와 준다고 해도 굳세질 수는 없는 것이다.
열심히 자신이 노력해야 한다.
토마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이라고 확신하기까지엔
신앙의 시련을 겪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분이 부활하셨는가?",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져 보자."는 태도도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볼 수는 없지만,
그분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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