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공부/마태오복음공부

잃은 양 한 마리 ;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 (18,10-14)

윤 베드로 2014. 11. 12. 21:57

③잃은 양 한 마리 ;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 (18,10-14)

 

10"너희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

12"너희의 생각은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둔 채

               그 길을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13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 양을 찾게 되면

           그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 아홉 마리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14이와 같이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잃은 양을 되찾고 기뻐하는 목자의 비유는 : 어록에서 옮겨 쓴 것.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본디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을 가리켰으나,

                        마태오에서는 교회의 미천한 신자들을 가리킨다.

 

⇒잘난 신자들이 미천한 신자들의 그리스도 신앙을 무너뜨려서도 안 되고

                      그들을 업신여겨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보잘 것 없는 이들을 염려하는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항상 모시고 있는 천사들이란?

                = 항상 하느님 가까이서 시중드는 매우 높은 천사들이다.

 

※쿰란 수도자들은 : 이들을 "얼굴의 천사들"이라 불렀는데,

            이 천사들은 작은 이들을 위해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을 하느님께 고발하기도 한다.

 

*잃은 양을 되찾고 기뻐하는 목자의 비유의 의미? :

        당시 이스라엘에선 : 율법상 죄인들, 윤리상 죄인들은 버림받은 무리,

                                   저주받은 무리로 인정되었다.

        예수님은 : 바로 이런 이들에게 각별히 온정을 쏟으셨다.

                           그들이 하느님 나라에 관한 가르침을 받아들일 때면

                                      함께 어울려 술잔을 기울일 만큼 기뻐하셨다.

                            이는 예수님뿐만 아니라 하느님도 흥겨워하셨다.

                            이것이 비유의 골자이다.

 

⇒그런데 마태오는 조금 달리 이해하여,

               못난 교우 한 사람(작은이들 가운데 하나)이라도

               신앙의 위기에 처해 있거든 (길을 앓는다면),

               그가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도록 모든 신자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이 힘써야 한다.

               이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 의지이다.

 

*요약 :

하느님께서는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돌보고 염려하시므로

         교회 공동체는 이들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이들은 겉으로 볼 때는 별 볼일 없는 이들 같지만

           하느님께서 돌보고 계시기 때문에 귀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작은이들, 미천한 교우들 중 한 사람이라도 길을 잃고 있으면,

              즉 신앙의 위기에 처해 있으면

              그가 멸망하지 않도록 모든 교우들, 지도자들이 힘써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작은 이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강한 구원 의지를 역설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