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이다의 소경(8,22-26)
예 수 |
소 경 |
서문 : 예수일행이 베싸이다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소경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고쳐 주시기를 청하였다. | |
예수님은 ①소경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②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고 ③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좀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보이느냐?’라는 말. |
눈을 뜨면서 "나무 같은 것이 보이는데 걸어 다니는걸 보니 아마 사람들인가 봅니다? 하고 대답.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아직까지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상태를 표현한 것 = Mk전반부의 상황을 요약한 것. |
Je께서 다시 그의 눈에 손을 대시자 눈이 밝아지고,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 ⇒Mk복음의 후반부 상황을 요약한 것. → |
(→소경이 처음에는 ‘사람들을 나무가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았듯이, 베드로도 Je께서 누구이신가를 알았지만 분명하게 안 것은 ×. 그러나 소경이 결국은 볼수있게 되듯이 제자들도 Je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분명하고 똑똑하게 깨닫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하시며, 그를 집으로 보내셨다. |
|
중요 메시지 : 베싸이다의 소경 치유 기적은 : Mk복음 전반부의 결론. 지금까지 Je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기적을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신 목적은 당신이 누구이신가를 알아보게 하려는 것이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는 것이 곧 눈이 뜨이는 것. 이처럼 제자들의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기 위해서는 긴 여정이 필요했다. |
*이제까지의 내용(1,14-8,21)을 요약해 보면,
예수님께서는 : 하느님의 善政을 선포의 주제로 삼고
그 위력을 여러 가지 행적으로 드러내셨건만,
사람들은 : 도무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백성도(6,14-15), 종교계와 정계 지도자들도,
친척들도(3,31-35), 고향 사람들도(6,1-6),
아니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모두 눈먼 소경들이다.
⇒예수 친히 이 소경들을 고쳐주시지 않는다면
그들 스스로는 예수님의 정체를 도무지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눈을 뜨게 하는 뜻으로
이제 베싸이다의 소경을 고쳐주시는 것이다(8,22-26절).
그 소경처럼 시력을 되찾은 제자들이 비로소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8,29).
* 이 이적사화는 :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치신
이적사화(7,31-37)와 매우 닮았다.
*소경이란 어떤 사람인가?(8,22) :
Mk복음에서 ‘보다’라는 동사는 : 단순히 시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해와 깨달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소경은 : 단순히 신체적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제자들은 빵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빵이 없다고 걱정.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고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8,18)라고 꾸짖으셨다.
진짜 소경은 진리 자체이신 θ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文盲, 컴盲 ; 盲 어둘 맹)
※우리는 흔히 세 개의 눈이 있다고 한다. 육안, 심안, 영안이다.
육안(肉眼)이란 :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는 것이고.
심안(心眼)이란 :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부분까지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다.
영안(靈眼)이란 : 신앙의 눈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령의 인도로 θ의 신비를 볼 수 있는 눈이다.
⇒육안으로 보는 것은 비교적 단순하다.
검은 색은 까맣다고 하고 푸른색은 푸르게 보는 것이다.
밖으로 드러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심안은 그 사람이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는냐에 따라서
보는 것이 다양하다.
시인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지는 낙엽을 보면서
단순히 ‘낙엽이 진다’ 고 하지 않고,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한다.
⇒영안이란 신앙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사물을 잘 보기 위해서는 시력이 좋아야 하고
시력이 좋은 것만큼 잘 볼수 있듯이,
영안은 신앙의 깊이와 복음에 눈을 뜬만큼 볼 수 있게 된다.
영안은 나의 능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빛을 받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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