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공부/마르코복음공부

단식에 대한 질문 : 단식 논쟁(마르 2,18-22)(마태 9,14-17 ; 루카 5,33-39)

윤 베드로 2014. 9. 2. 11:35

단식에 대한 질문 : 단식 논쟁(마르 2,18-22)(마태 9,14-17 ; 루카 5,33-39)

 

 

배경

18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

19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①"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신랑 : 예수, 음식 : Je의 가르침.

21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 단락은 :

①예수 생전에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았다는 상황어(18-19ㄱ),

②예수 사후에 그들이 단식하게 된다는 말(19ㄴ-20절),

③새것과 헌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중 단절어(21-22)로 구성.

 

*이 단락의 소재는 : 유대 사회의 주요한 종교 관습인 단식이나,

      이야기의 진정한 초점은 단식의 성격이나 이행여부에 있지 않고,

      그것을 빌미로 예수를 괴롭히기 위한 질문.

⇒예수님은 참된 금식이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신다.

 

*유다인들의 단식 :

①유다인들은 : 죄를 벗는 속죄의 행위로 1년에 한 번

        속죄의 날의무적으로 단식을 했고(레위 16,29-31),

②바리사이들은 : 일주일에 2번 단식을 했고

③요한 세례자의 제자들은 : 스승의 고행을 본받아 자주 단식.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은 : 단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식문제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는데,

⇒예수님의 시대야말로 혼인잔치가 벌어지는 시기이므로

               단식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제자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킨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즉, 예수님 당신이 돌아가신 후에는 단식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잔칫집에 온 신랑 친구들이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 단식을 할 수 있겠느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럴 수 없다." (2,19)

혼인잔치 : 신랑과 신부가 하나되는 것을 축하하는 자리.

여기서 말하는 혼인잔치란 : Je이 이 세상에 오셔서 공생활을 하시며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시고 인간과 함께 머물렀던 기간.

          즉, Je이 제자들과 함께 머무른 기간이 혼인잔치를 치르는 기간.

그래서 제자들은 신랑이신 예수님이 머무시는 동안

          그분이 주시는 음식(예수님의 가르침)을 먹고 즐겨야 한다.

 

⇒따라서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알아듣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제자들이 혼인잔치를 지내는 동안

           먹어야 할 음식인 것이다.

즉, 제자들은 Je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단식할 수 없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파하시는 동안에는

              단식이 필요 없다는 뜻(20절 참조).

 

※예수님의 제자들이 단식을 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 :

율법에서 단식이 죄를 벗기 위한 속죄의 행위였다면,

이제는 단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죄를 용서받아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치유해 주시면서

            “이제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2,10)고 말씀하셨고,

그러한 권한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중풍병자를 치유하셨다.

따라서 이제는 죄를 벗기 위해 단식을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2,21-22절의 비유는 :

         둘 다 옛 것과 새 것을 조합하려는 시도의 부적합성을 지적.

           즉, 예수님의 삶의 방식, 가르침 = 복음(새로운 것 : 새 천조각, 새 부대)과

              유다 지도자들의 삶의 방식 = 율법(낡은 것 : 낡은 옷, 낡은 가죽부대)은

                 함께 어우러질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은 :

       모든 것이 새로운 것이고 새 사람이 되는 것.

따라서 새 천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는 것은 좋지 않으며,

           낡은 것과 새 것, 과거와 현재, 율법과 복음을 섞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면 둘 다 못쓰게 된다.

⇒서로 다른 두 가지를 섞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제 낡은 것을 새 것으로,

          즉, 율법을 복음으로 바꾸어야 한다면서,

               의식을 전환하라는 말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심.

 

※가죽부대 :

양이나 염소 가죽을 통째로 벗겨 묶어서 포도주를 담던 부대.

낡은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으면,

       새 포도주의 발효하는 힘에 의해 부대가 터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