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전에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떠꺼머리총각 이라고 불렀다.
한국에서 결혼은 어른 세계로 진입하는 관문이며
사회적 명망과 지위를 향한 하나의 중요한 도약이다.
우리나라 전통 혼례식에서는 혼인 전날 밤 혼서와 채단을 함에 넣어
신부집으로 보내는 절차가 있었다.
요즘도 신랑 친구가 예단 넣은 함을 신부집으로 지고 가는 풍습이 있다.
옛날에는 함이 신부집에 도착하면 복많은 어른이 함 속을 더듬어 채단을 꺼냈는데
파랑이면 첫아들을 빨강이면 첫딸을 낳는다고 믿었다.
또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달기 라는 풍습이 있었다.
대청 대들보에 무명 한필을 풀어 걸고 한쪽 끝에다 신랑의 두 발목을 매고는
한쪽 자락을 쥐고 잡아당겨서 신랑 발바닥을 때렸다.
원시시대에는 신부를 폭력으로 빼앗아 갔기 때문에
신랑을 도둑으로 여기는 풍습이 있었다.
그래서 신랑을 호되게 때리는 관습이 근래까지 신랑달기 풍속으로 이어져 온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혼례풍습도 시대와 나라에 따라 다르며 각기 특징적 요소가 있다.
이스라엘 결혼식은 신랑과 신부에게 주어지는 축복문(창세 24 60 참조)을 제외하면
비종교적 행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순수 민간 행사였던 결혼을
하느님 언약과 연결시켜 결혼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 잠언은 결혼을 하느님 앞에서 맺은 약조 (잠언 2 17 참조)라고 했다.
이후 이스라엘 결혼식에는 결혼 계약문을 만들고
신랑 신부가 그것을 서약하는 절차가 혼인예식에 포함됐다.
이런 절차는 오늘날 유다인 결혼식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또 이스라엘 결혼식에서는 결혼 예복을 입는 것이 중요한 풍속이었다.
부잣집 잔치에는 손님들에게도 미리 준비해둔 결혼 예복이 제공됐다(마태 22 12 참조).
예수님은 혼인예식 예복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회개에 비유하기도 했다(마태 22 2-14 참조).
결혼식 날 신부는 실제로 아름다운 여왕처럼 몸치장을 했다.
신부는 목욕을 하고 가족이나 이웃에게서 보석을 빌려 한껏 멋내 머리를 장식했다.
그리고 신부는 베일로 얼굴을 가렸는데
이 베일은 결혼식을 올리는 장내에 들어갈 때까지 벗을 수 없었다.
전통적으로 신부 베일은 겸손과 존경과 순결의 상징이었다.
베일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신랑 신부가 결혼서약을 하고 결혼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후에만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결혼서약을 하고 남편과 아내가 됐음을 선언받은 후에야 베일을 걷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 결혼식에서는 결혼행렬도 중요했다.
결혼행렬은 신부집에서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이 살 새집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어두운 길목은 결혼식 손님들이 들고 있는 등잔불로 밝혔다.
새집에 도착한 신랑 신부는 작은 천막 모양의 차양 밑으로 들어간다.
이 차양은 이스라엘 유목민 장막과 신랑 신부가 함께 살게 될 새 보금자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그들은 주로 먹고 마시는 일로 이루어지는 결혼잔치를 주관했다.
이 혼인잔치는 초대받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신랑 신부를 축하하는 행사였다.
여기에 참석한 이들이 공식적으로 혼인 증인 역할을 했다.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 장소도
가나지방의 혼인잔치에서였다(요한 2 1-12).
결혼잔치는 보통 7일간 지속됐으며 때로는 두 주간 동안 계속되기도 했다.
잔치에 참가하는 손님들은 결혼이 성립하는 데 중요한 증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신부가 처녀라는 증거로 딸의 자리옷을 성읍 장로들에게 가져가
펴보이기도 하였다(신명 22 13-21 참조).
그리고 참석자들은 결혼잔치가 진행되는 동안 하느님 축복이 부부에게 내리길 기원했다.
나라와 풍습은 달라도 사람들이 결혼식에 부여하는 중요성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허영엽 / 성서의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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