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루카 복음서에 보면 특수 자료들이 종종 등장한다.
특히 ①‘잃은 양을 되찾고 기뻐하는 목자의 비유’(15,1-7)와
② ‘잃은 은전을 되찾고 기뻐하는 부인의 비유’(15,8-10),
③ ‘잃은 아들을 되찾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비유(15,11-32)에서
구원의 가늠자를 제시한다.
2. 어느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다가 한 닢을 잃어버렸고,
어느 목자는 양 백 마리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어느 아버지는 사랑하는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가 버리는 슬픔이 찾아왔다.
⇒그러자 부인과 목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동전과 양을 찾기 시작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동전 한 닢을 찾으려고 그렇게 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남은 아홉 닢을 잘 지키는 게 낮지 않을까?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섰다가 혹시 목자가 사고라도 당하는 날이면
남은 아흔 아홉 마리 양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 일 아닌가?
3. 하지만 이 비유들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10과 100이라는 숫자이다.
①유다인들은 : 예로부터 10을 흠이 없는 完全數로 간주했다(십계명).
따라서 완전수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그 완전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참금으로 준비한 돈이 은전 열 닢인데
만일 한 닢이라도 없어지면 파혼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말이 은전 한 닢이지,
은전을 찾는 것은 부인의 장래가 걸린 중대사일 수 있다.
하물며 10에 10을 곱한 100이면 더 하지 않겠는가.
부인과 목자가 사생결단하는 심정으로 찾아 나선 것은 이해가 간다.
②또 어느 아버지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 데,
첫째 아들은 똑바른 인생을 사는 반면, 둘째는 천성이 망나니였다.
⇒그래서 아직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도
둘째 아들은 자기 몫의 재산(유산)을 요구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 그런 불효 막심하고,
제 몫의 재산을 도시로 나가 다 날린 아들을,
초라하기 짝이 없는 행색으로 돌아온 아들을 두 팔 벌려 맞아들인다.
아니, 소 잡고 돼지 잡아 크나큰 잔치를 베풀었던 것이다.
4. 여기서 목자와 부인과 아버지는 :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는 존재들이다.
하느님은 : 대자대비하셔서 집나간 아들이든, 보잘것없이 보이는 양 한 마리든,
어디 가서 돈 취급도 못 받는 은전 한 닢이든
스스로 발 품을 팔면서까지 알뜰하게 거두어들이시는 분이다.
⇒그처럼 하느님은 :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이다.
예외란 없다. 완전수 10에 함축된 의미다.
5. 루카는 : 하느님의 구원 의지가 예수를 통해 어떻게 실현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다.
율법에 따르면, 사람들은 구원받아 마땅한 義人과
구원받지 못할 罪人으로 구분되었다.
세리, 목동, 백정, 의사, 고리대금업자 등은
천한 직업을 가졌다고 하여 죄인으로 취급받았고,
사생아, 앉은뱅이 병자, 이방인, 사마리아인, 여자는 태생 죄인이었다.
⇒예수는 : 그들 모두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여 주었다.
①행복선언(6,20-23)에서 예수는 울고 굶주리는 가난뱅이들이 행복하다고 했고,
②세리와 죄인, 병자들과 몰려다녔기에
‘세리와 죄인의 친구’(7,34)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③또 여성을 인간 취급하지 않던 당시 풍토에서
여성에게 정식 교육을 시켰고(10,38-42),
④여인들과 같이 다니며 시중까지 받았다(8,1-3).
⇒외간 여자의 머리카락을 보거나 숨소리만 들어도
죄를 짓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몹시 충격적인 일이었다.
6. 루카 복음서를 : ‘貧者의 복음’, ‘소외자를 위한 복음’,
‘자비의 복음’, ‘여성의 복음’이라고 정의 내린다.
그들도 하느님의 구원 대상에 포함되기에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루카가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복음서와 시간, 박태식, 생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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