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4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오늘의 묵상
주님의 기도가 지닌 독특한 점은 예수님 시대 즈음에 유다교 회당에서 바치던
열여덟 청원 기도문(쉐모네 에스레)이나 고대 근동의 아카드인들이 바치던 양팔 기도문과 비교할 때
잘 드러납니다.
이 두 기도문에는 무엇보다도 신적 존재에 대한 호칭이 다양하게 열거되어 나옵니다.
마치 여러 호칭을 계속 반복하지 않으면 그 신적 존재가 그 기도를 듣지 않을 것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다양한 호칭을 사용하는 배경에는 궁정 문화가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임금에게 무엇인가를 청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전에 이르기까지 여러 관문들을 지나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어전에서 멀리 떨어져 무릎을 꿇게 되는데,
이때에도 고위 신하가 눈짓으로 허락을 해야 겨우 자기가 청하고자 하는 바를 임금에게 아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에는 이렇게 엄숙하고 격조 높은 궁정 문화가 자리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한 번만 부르는데, 이마저도 가족 안에서 사용하는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다시 말하여 주님의 기도는 가족과 나누는 친밀하고 편안한 대화를 배경으로 합니다.
보통 가족끼리는 에두르거나 거창한 말로 꾸미지 않고 자기가 바라는 것을 편안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우리를 하느님의 새로운 가족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자녀입니다.
그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며 그분을 붙잡고 마음 편히 우리의 바람을 아뢸 수 있는 응석받이인 셈입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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