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양의 문과 착한 목자 (요한 10장)
①목자와 양(요한 10,1-6) : 비유
10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양우리에 들어 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딴 데로 넘어 들어가는 사람은 도둑이며 강도이다.
2양치는 목자는 문으로 버젓이 들어간다.
3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주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
목자는 자기 양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이렇게 양떼를 불러 낸 다음에 목자는 앞장 서 나간다.
양떼는 그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뒤따라간다.
5양들은 낯선 사람을 결코 따라가지 않는다. 그 사람의 음성이
귀에 익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피하여 달아난다.?
6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해 주셨지만
그들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②착한 목자(요한 10,7-21) : “양들의 문”과 “선한 목자”에 관한 우의적 해설
7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8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모두 다 도둑이며 강도이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안전할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좋은 풀을 먹을 수 있다.
10도둑은 다만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
11?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12목자가 아닌 삯꾼은 양들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가고 양떼는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13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14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
15이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16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어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 양들도 데려 와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 음성을 알아듣고
마침내 한 떼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게 될 것이다.?
17?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결국 나는 다시 그 목숨을 얻게 될 것이다.
18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
나에게는 목숨을 바칠 권리도 있고 다시 얻을 권리도 있다.
이것이 바로 내 아버지에게서 내가 받은 명령이다.?
19이 말씀을 들은 유다인들 사이에서는 다시 논란이 일어났다.
20많은 사람이 ?그는 마귀가 들렸소. 그런 미친 사람의 말을
무엇 때문에 듣는 거요?? 하고 말하는가 하면
21어떤 사람들은 ?마귀 들린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소?
더구나 마귀가 어떻게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단 말이오??하고 말하였다.
③유다인에게 배척을 받으신 예수(요한 10,22-42) : 양들에 관한 우의적 해설
22때는 겨울이었다. 예루살렘에서는 봉헌절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23예수께서는 성전 구내에 있는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는데
24유다인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당신은 얼마나 더 오래 우리의 마음을
죄게 할 작정입니까?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 주시오?하고 말하였다.
25그러자 예수께서는 ?내가 이미 말했는데도 너희는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바로 나를 증명해 준다.
26그러나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는다.
27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 온다.
28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 할 것이다.
29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아무도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하고 대답하셨다.
31이 때에 유다인들은 다시 돌을 집어 예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좋은 일들을 많이 보여 주었는데
그 중에서 어떤 것이 못마땅해서 돌을 들어 치려는 것이냐??하고 말씀하셨다.
33유다인들은 ?당신이 좋은 일을 했는데 우리가 왜 돌을 들겠소?
당신이 하느님을 모독했으니까 그러는 것이오. 당신은 한갓 사람이면서
하느님 행세를 하고 있지 않소??하고 대들었다.
34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율법서를 보면
하느님께서는?내가 너희를 신이라 불렀다?하신 기록이 있지 않느냐?
35이렇게 성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모두 신이라고 불렀다.
성경 말씀은 영원히 참되시다.
36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거룩한 일을 맡겨 세상에 보내 주셨다.
너희는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 때문에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37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나를 믿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만은 믿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39그 때에 유다인들이 다시금 예수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몸을 피하셨다.
40예수께서는 다시 요한이 전에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강 건너편으로 가시어
거기에 머무르셨다.
41그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몰려 와서 서로 “요한은 기적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가 이 사람에 관해서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고 하면서
42많은 사람이 거기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양을 치는 일은 : 유목민이었던 Is 백성에게 있어서 일상적인 삶이었다.
예수님께서는 : 청중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일상적인 삶의 요소들을
가르침을 위한 소재로 삼으신다.
*소경을 치유하신 사건을 두고 유다인들과 논쟁을 벌이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자신을 ?양이 드나드는 문?이며
?착한 목자?라고 계시. (☞착한 목자)
*“목자와 양”에 관한 비유는
①구약성서에서 백성과 지도자의 관계(이사 63,11 ; 에제 34,1-10)나,
②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설명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
(시편 77,20 ; 에제 34,11-16).
⇒예수님께서는 구약성서의 비유들을 취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를 설명 :
하느님께서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해 ?나의 양떼는 내가 찾아보고
내가 돌보리라?(에제 34,11)고 하신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었음을 가리키는 대목이다.
*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7절). “나는 문이다”(9절)는 :
요한복음에 나오는 자기계시 정식의 일종.
⇒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의 뜻은 :
예수는 양들이 드나들 수 있는 문으로서 또한 목자라는 뜻.
그리고 ①양들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은 하나밖에 없고,
②예수가 바로 그 문이기 때문에,
③예수만이 구원으로 이끄는 유일한 목자,
곧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길”이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 당신이 세우실 교회를, 양들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도록
울타리를 쳐 놓은 목장으로 소개하시고,
당신 자신을 양들이 드나드는 문으로 소개하신다.
*예수님을 불신하는 유다 지도자들은(10,22-42) :
결국 성전 봉헌절 날(하누카 : 여드레 동안 지내는 축제)
예수님께 해명을 요구하자,
예수님께서는 : 자신은 하느님과 하나이며(30절),
하느님의 아들(36절)이라고 답변.
*유대인들은 : 성전 봉헌절에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신 예수를 둘러싸고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시오”라고 다그치자,
예수께서는 :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바로 나를 증명해 준다”고 답변(25절).
즉, 하느님의 구원 진리를 계시하시는 당신의 말씀과 행적이
당신의 메시아性을 증명한다는 것.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 목자와 양떼의 비유(1-6절)에 나오는
양떼에 대한 우의적 해설을 내리시는데,
유대인들은 예수의 양떼가 아니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요지의 말씀.
*예수님께서는 :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라는 폭탄선언(30절).
⟹유다인들은 : 예수님을 죽이겠다고 결심하고
그 구실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께서 Ɵ을 모독했다는 증거를 찾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이 죄목에 맞는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는 메시아다.”라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실패하자 그들은 다른 방법을 찾는다.
이제 그들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는
예수님 말씀을 두고 따진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라는 이 말씀의 깊은 뜻은 :
아버지 하느님과 자신은 同等하다는 것.
즉, 예수는 아버지 하느님처럼 神性을 지니신 분이라는 것.
이 폭탄선언은 오직 야훼 한 분만을 θ으로 받드는
유대인들에게는 신성모독으로 들리는 망발이 아닐 수 없었다.
*유대인들이 : 예수를 향해 “한갓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다니”
하고 시비를 걸자(33절),
예수님께서는 : 랍비들의 논쟁 방식에 따라 성서를 인용하여
자신을 변호하시기를(34-36절),
①성서에서도 :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판관들을 두고
“내가 너희를 神들이라 하였다” (시편 82,6) 라고 말씀하셨고,
즉,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자들을 신이라 불렀고,
②예수는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이고,
③하느님의 파견을 받아 세상에 온 예수가
θ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이에 유대인들은 : 예수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몸을 피하신다.
*예수님께서는 : 유대인들과의 논쟁(10,22-39)을 계속하고 싶지 않아서
예루살렘을 떠나, 요한 세례자가 세례를 베풀었던 곳으로,
곧, 요르단 강 건너편 베다니아(1,28)로 가시자,
예루살렘의 유대인들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예수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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