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제프 하 조파티 작, 즈카르야의 다섯 번째 환시. |
즈카르야서 1─8장(제1즈카르야서)에도 하까이서처럼 날짜가 표시되어 있습니다(즈카 1,1.7; 7,1). 이에 따르면 즈카르야는 하까이 예언자가 활동하던 520년부터 기원전 518년 정도까지, 즉 성전이 재건되기 직전 시기에 예언을 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내용상으로도 하까이와 마찬가지로 성전 재건과 종말론을 말하지만, 하까이에 비해서 볼 때 즈카르야에게서는 임박한 종말을 알리는 것이 더 중심을 이룹니다.
즈카르야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1─6장에 있는 환시들입니다. 이전의 예언서들에서도 환시는 나타나지만, 즈카르야서의 환시들은 좀 다릅니다.
지금까지는 그런 환시를 보는 예언자가 직접 하느님과 대화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보는 것을 바로 이해했던 반면 즈카르야에서는 예언자가 자신이 환시로 본 것의 의미를 알지 못하여 천사가 매번 그 환시의 의미를 설명해 줍니다.
이러한 양식은 묵시문학에서 크게 발전하게 될 것으로, 하느님의 초월성을 강조합니다. 환시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본문에는 8개의 환시가 나오는데, 그 가운데 다섯째 환시에서는 즈루빠벨과 예수아가 함께 나오는 반면 넷째 환시에서는 즈루빠벨은 언급되지 않고 예수아만이 나오고 있습니다.
즈카르야서에 본래 환시 7개가 들어 있었는데 즈루빠벨이 사라진 다음 현재의 네 번째 환시가 삽입되어 예수아 대사제에게 희망이 집중되었다고 봅니다.
환시가 7개라면 그 중심에는 즈루빠벨과 예수아, 두 인물이 있게 되는데 8개가 되면서는 중심에 예수아만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여덟 개의 환시의 의미는 우리도 천사의 설명을 들어야겠지요.
- 첫 번째 환시, 말 탄 기사(즈카 1,7-17): 말 탄 기사들은 세상을 돌아보고, 온 세상이 평온하다고 주님께 보고를 드립니다. 여기에서 세상이 평온하다는 것은 새 시대가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부정적 의미를 지닙니다.
이러한 초조함에 대하여 주님께서 “다정하고도 위로가 되는 말씀으로 대답하셨다”(1,13)는 것은, 하느님께서 곧 개입하시어 민족들을 심판하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하시리라는 응답을 뜻합니다.
- 두 번째 환시, 뿔과 대장장이(2,1-4): 예언자는 먼저 뿔 네 개를 보고, 이어서 대장장이 네 명을 봅니다. 그 뿔들은 이스라엘을 흩어 놓은 이방 민족들이고 대장장이들은 그 민족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옵니다. 이제 새 시대가 올 것입니다.
- 세 번째 환시, 측량줄(2,5-17): 환시에서는 한 사람이 측량줄을 들고 예루살렘을 측량하러 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돌아온 이들과 짐승의 수가 너무 많아 예루살렘은 성벽이 없이 넓게 자리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시대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 네 번째 환시, 예수아 대사제(3,1-10): 예언자는, 천상의 법정에서 사탄이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예수아 대사제를 고발합니다. 그러나 천사가 예수아에게 깨끗한 옷을 입히고 터번을 씌워 줍니다.
이 환시는 유배 후의 공동체에서 사제직이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고합니다. 실상 유배에서 돌아온 후 유다 공동체에는 임금이 없었고, 사제들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 다섯 번째 환시, 등잔대와 두 올리브 나무(4,1-14): 이 환시에서 두 그루의 올리브 나무는 즈루빠벨과 예수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유배 이후의 공동체에서 초기에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권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던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후에 어떻게 해서 즈루빠벨이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 여섯 번째 환시, 두루마리(5,1-4): 날아다니는 두루마리에는 악인들에 대한 저주가 적혀 있어서, 이 세상에서 악이 제거될 것임을 예고합니다.
- 일곱 번째 환시, 뒤주(5,5-11): 뒤주 안에 앉아 있는 여자는 이 세상의 악을 나타내며, 환시는 그 악이 신아르, 즉 바빌론 땅으로 옮겨질 것임을 보여 줍니다. 이로써 예루살렘은 정화되고 악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 여덟 번째 환시, 병거(6,1-8): 병거 넉 대가 사방으로 갑니다. 북쪽으로 가는 병거가 주님의 영을 북쪽 땅에 자리하게 한다는 것은, 유배간 이들에게 고향으로 돌아와 성전 재건에 참여하도록 권고하기 위한 것입니다.
첫 번째 환시를 보면서 즈카르야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을 가엾이 여기지 않으시고 언제까지 내버려 두시렵니까?”(1,12)라고 묻습니다.
악에 대한 심판도, 하느님을 기다리는 이들의 구원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 세상의 상태.
그러나 이 환시들은 하느님께서 곧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시리라는 것을 말하고, 유다 총독 즈루빠벨과 대사제 예수아가 하느님께 성별된 사람들임을 보여 줍니다.
그의 예언은 한 마디로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1─6장의 환시들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것이라면 8장에서는 그 약속이 완성되었을 때의 모습을 그려 보입니다.
즈카르야가 환시를 보았던 짧은 기간 사이에 천지가 바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을까요? 성전 재건이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마지막 심판과 구원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시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를 보여 주는 예언자의 환시는 아직 보이지 않는 희망을 보게 해 줍니다.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희망을 붙잡고 걸어가게 하는 것, 그것이 즈카르야서와 이후의 묵시문학이 하는 역할입니다.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