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민수기 공부

민수기 29장 공부 : 신년제에 바치는 제물

윤 베드로 2018. 1. 4. 07:22

민수기 29장 공부 : 신년제에 바치는 제물

 

신년제에 바치는 제물(29,1-6)

 

칠월 초하루(월삭)에는 나팔을 부는 날이다.

이 날은 성회로 모이고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

이날 드릴 번제의 제물로는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일곱으로 하고,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 분의 삼으로,

매 수양 하나에는 에바 십 분의 이,

매 어린 양에는 에바 십분의 일로 해야 한다.

또한 이 외에 수염소 하나를 택하여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

 

속죄일에 바치는 제물(29,7-11)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다. 이날은 성회로 모이고 노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날에 드릴 번제로는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일곱으로 하고,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 분의 삼으로,

매 수양 하나에는 에바 십 분의 이,

매 어린 양에는 에바 십분의 일로 해야 한다.

또한 이 외에 수염소 하나를 택하여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

 

초막절에 바치는 제물(29,12-30,1)

 

29,12-38 :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다. 이 날은 성회로 모이고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

이 날에 드릴 번제의 제물은 수송아지 열셋과 수양 둘과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열넷으로 하고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서 수송아지 열셋에는

각기 에바 십 분의 삼으로, 수양 둘에는 각기 에바 십 분의 이,

어린 양 열 넷에는 에바 십분의 일로 해야 한다.

또한 이 외에 수염소 하나를 택하여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

둘째 날(십육일)에 드릴 번제의 번제물은 수송아지 열둘과 수양 둘과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칙대로 하고,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한다.

셋째 날에 드릴 번제의 제물은 수송아지 열 하나와 수양 둘과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칙대로 하고,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한다.

넷째 날에 드릴 번제의 제물은 수송아지 열과 수양 둘과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칙대로 하고,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한다.

다섯째 날에 드릴 번제의 제물은 수송아지 아홉과 수양 둘과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칙대로 하고,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한다.

여섯째 날에 드릴 번제의 제물은 수송아지 여덟과 수양 둘과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칙대로 하고,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한다.

일곱째 날에 드릴 번제의 제물은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둘과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칙대로 하고,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한다.

여덟째 날에는 거룩한 대회로 모여야 하고 노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번제의 제물로는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일곱을 드릴 것이며,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칙대로 하고,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한다.

 

29,39-30,1 :

이스라엘이 절기를 맞이할 때마다 하느님께서 정해 주신 방법으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것을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므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恣意的 숭배를 금하신 것이다.

이방인들은 자기 신들을 숭배할 때 자의적으로 숭배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에게 정해 주신 방법에 따라

하느님을 섬기도록 하셨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길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함이고,

또한 우상숭배자와 구별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자의적 숭배는 자기 과시가 포함 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의가 드러내고 또한 하느님을 제한하게 된다.

마치 하느님이 인간에게 무엇이 필요한 존재와 같이 비춰질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