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전도서 공부

전도서 2장 공부② : 실망스러운 결과

윤 베드로 2017. 11. 14. 08:13

실망스러운 결과(2,12-26) 


2,12-17 :

본문은 어째서 쾌락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주지 못하는지 말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이 때로는 쾌락을 누리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죽음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기 때문이고,

또한 쾌락을 위하여 수고할지라도 반드시 그 열매가

수고한 자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의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2:12)”

전도자는 사람들이 지혜라고 말하는 것과 망령되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을 다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지혜롭다고 말하는 자도 삶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망령되다고 말하는 자와 어리석은 자라고 하는 자도

세상에서 동일한 문제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물음에 대하여 13-16절은 이렇게 말해 주고 있다.

“나는 어둠보다는 빛이 더 쓸모 있듯

우매함보다는 지혜가 더 쓸모 있음을 보았다.

지혜로운 이의 눈은 제 앞을 보지만 어리석은 자는 어둠 속을 걷는다. 

               그러나 둘 다 같은 운명을 겪게 됨을 나는 또한 알았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말하였다. '어리석은 자의 운명을 나도 겪을 터인데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지혜를 추구하였던가?'

그래서 이 또한 허무라고 속으로 말하였다.

지혜로운 이에 대해서건 어리석은 자에 대해서건

영원한 기억이란 없으니 앞으로 올 날에는 모든 것이 잊히는 법.

아, 정녕 지혜로운 이도 어리석은 자와 함께 죽어 가지 않는가!”

본문은 세상적인 판단에 의하면 지혜자와 우매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빛과 어둠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같지만

삶의 궁극적 문제 앞에서 차이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실례로서 지혜자나 우매자 모두 죽음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런 의미에서 전도자는 “그래서 나는 삶을 싫어하게 되었다.

태양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이 좋지 않기 때문이며 이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이기 때문이다.(2:17)”라고 말했다.

이처럼 지혜로운 자도 어리석은 자도 삶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다음 세대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전도자는 “임금의 뒤를 잇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으리오?

선왕이 이미 이룩한 것밖에는!(2:12)”라고 말한 것이다.


2,18-23 :

본문은 어째서 쾌락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주지 못하는지

두 번째 이유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쾌락을 위하여 수고 하지만 그 열매가 반드시 수고한 사람이

거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나는 또 태양 아래에서 내가 애써 얻었건만

내 뒤에 오는 인간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내 모든 노고의 결실을 싫어하게 되었다(2:18)”라고 말하고 있다.

즉 사람이 일생을 통하여 소유를 더하였을지라도 자신이 모아놓은 소유를

              자신이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수고하지 않은 다른 사람이나

또는 다음 世代의 사람들이 그것을 누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고한 자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

그래서 전도자는 사람들에게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그 모든 노고와

노심으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2:22)”라고 묻고

또한 이 물음에 대하여 그는 스스로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에도 그의 마음은 쉴 줄을 모르니 이 또한 허무이다.(2:23)"

이 말의 의미는 복된 삶을 위하여 사람들은 일생을 수고하지만

그가 수고로 인하여 복을 얻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얻기 위하여 

          힘쓴 수고와 슬픔만 남겨 준다는 것이다.


2,24-26 :

전도자는 이처럼 사람이 세상에서 복된 삶을 살기 위하여

행하는 모든 일이 오히려 수고와 슬픔만을 남겨 준다고 말한 후

그러면 사람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복은 무엇인지 묻고 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2:24-26절에서 말해 주고 있다.

본문은 사람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복이란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가운데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뿐이라는 것을 말해 주며,

또한 이런 행복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실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전도자가 1장과 2장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세상에는

우리의 행복을 영원히 보장해 줄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상에서 누리는 복은

하느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말해 준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전도자처럼 세상에는 우리의 복된 삶을 영원히 보장해 주는 길이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결코 세상에서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구하며 산다면,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를 지혜롭게 할 것이다.

그러면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가?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 오늘을 은총의 날로 믿고 기쁘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며 또한 복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