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고백(1,12-2,11)
1:12-18.
전도자는 “하늘 아래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지혜로 살펴 깨치려고
내 마음을 쏟았다.”(13절)는 것은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동안
행하는 모든 수고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궁극적인 문제에 대하여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살펴보았다는 의미다.
그는 그 결과에 대하여 “이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언급한 것처럼 사람의 모든 수고가 그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에 “헛될 뿐”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래서 전도자는 이미 결론적으로 밝힌 것을 14-15절에서 다시 한 번
표현을 달리하여 말한 것이다.
“나는 태양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는데
이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이다.
구부러진 것은 똑바로 될 수 없고 없는 것은 헤아려질 수 없다.”
전도자는 지금까지 세상에서 행해지고 있는 보편적인 현상들을 살피며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말하였으나
지금은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이것을 밝히고 있다.
전도자는 지혜자로서 이스라엘 가운데 어떤 사람보다도
더 많은 지혜와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여기 “내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던 모든 분들보다
지혜를 크게 하고 더하였으며 내 마음은
수많은 지혜와 지식을 익혔다.(16절)”라는 말은
그의 관심이 언제나 지혜에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내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던 모든 분들보다
지혜를 크게 하고 더하였으며”라는 말은 그가 이스라엘 가운데
어떤 사람보다도 뛰어난 지혜자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또한 어떤 사람보다도 더 많이 지혜를 추구하며 살았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그는 이처럼 뛰어난 지혜와 그리고 지혜를 알기 원하는 열정을 가지고
세상에서 행해지고 있는 모든 수고가 인생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살폈지만 그것 역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삶의 궁극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할수록
오히려 번뇌만 더해 간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지혜가 많으면 걱정도 많다(1:18)”고 말한 것이다.
이처럼 전도자가 “태양 아래 행하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세상에 집착하지 말고,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따라야할 本分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그것에 따라 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다.
2,1-11 :
전도자는 인간에게 영원한 행복의 길이 있는지 살폈다.
1장에서는 지혜의 눈을 가지고 그 길을 찾았으나 실패했고,
2장에서는 “세속적 성공”을 비판하면서 그것이 참으로 행복의 길인지 묻고 있다.
2:1-11절 사이에 나오는 단어들, 사업, 집, 동산, 포도밭, 소와 양떼, 은금,
노래하는 남녀, 처와 궁녀, 보배, 술 등은 모두 현세적 의미에서
성공을 나타내 주는 것들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하였다. ‘자, 이제 너를 즐거움으로 시험해 보리니
행복을 누려 보아라!’ 그러나 보라, 이 또한 허무였다.
웃음에 대하여 나는 말하였다. ‘어리석은 짓!’
또 즐거움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것이 무얼 할 수 있으리오?’(1-2)”
전도자는 사유를 통하여 삶의 의미를 추구하였으나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1:13),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또 다시 현세적 즐거움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
본문에서 “즐거움” “행복” “웃음” “즐거움”등은 모두 쾌락을 의미한다.
전도자는 쾌락이야 말로 삶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들을 추구해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시도를 통해서도 生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쾌락을 상징하고 있는 웃음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하였고,
즐거움에 대하여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했다.
즉 한번 얻은 쾌락이 영원하지 못하고 일시적인 것이라면
이것에서 삶을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본문은 쾌락을 통하여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고 시도한
모든 것에 대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전도자가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은 그가 찾고 있는 삶의 의미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삶의 여정에서 일시적으로 삶을 즐겁게 하고
의미를 주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오히려 삶의 갈증만 더하게 할 뿐
궁극적인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전도자로 하여금 삶에 대하여
더욱 의문을 가지고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게 했다.
3-8절 본문은 전도자가 쾌락을 얻기 위하여 시도한 내용들이다.
3절, “나는 인간의 아들들이 한정된 생애동안 하늘 아래에서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무엇이 좋은지 깨치기까지”라는 것은
그가 쾌락을 추구한 목적을 말해 준다.
그가 쾌락을 추구한 것은 생각 없이 다만 방탕함에 이끌렸기 때문이 아니고
오히려 구도자의 심정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궁궐을 짓고… 포도밭과 정원과
공원을 만들고… 노비를 사기도 하였고…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이 가졌으며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의 기뻐하는 궁녀들을 많이 두었노라(3-8절)”
본문은 그가 무엇을 통하여 쾌락을 추구했는지 말해 준다.
이미 말한 것처럼 본문에 언급 되고 있는 사업, 궁궐, 포도밭, 정원,
소와 양떼, 은금, 노래하는 남녀, 처와 궁녀, 보배, 술 등은
모두 현세적 의미에서 성공을 나타내 주는 것들이다.
그는 쾌락을 위하여 얻고자 했던 모든 것을 얻었다.
전도자가 자신이 원했던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昌盛했기 때문이었고
또한 그들보다 지혜가 더했기 때문이었다.
여기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란 이스라엘의 왕들을 말한다.
솔로몬 시대는 이스라엘의 전성기였다.
그러므로 다른 왕들이 통치할 때보다 물질적으로 더 풍요했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은 전무후무한 지혜를 소유한 자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모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얻은 결론은 이런 것들로도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내 손이 이룬 그 모든 위업과 일하면서 애쓴 노고를 돌이켜 보았다.
그러나 보라, 이 모든 것이 바람을 잡는 일.
태양 아래에서는 아무 보람이 없다.(2:11)”
전도자는 경험을 통하여 자신의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웃음을 논하여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저가 무엇을 하는가”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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