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에제키엘서 공부

에제키엘서 43장 공부 : 주님의 영광이 성전으로 돌아오다

윤 베드로 2017. 10. 31. 08:28




주님의 영광이 성전으로 돌아오다(43,1-12) 


*40-42장은 하느님께서 계시는 성전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말해 주었다.

성전은 구별 된 터 위에 지어야 하고,

성전 건물은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이루어져야 하고,

또한 성전 예배를 준비하기 위한 부속 건물을 지어야 한다.

43장부터는 이렇게 완성된 성전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섬겨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해 주시고 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말한다면 40-42장까지는 “하느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은

         어디인지(하느님께서 누구와 함께 하시는지)”에 관한 말씀이라면,

43장부터는 “그 하느님을 어떻게 섬길 수 있는지(하느님과 어떻게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에

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43,1-5 :

43장은 먼저 東쪽 문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다.

42:15-20은 동쪽 문길로 나가서 사면 담을 측량한 내용이고,

43:1-5절은 하느님의 영광이 성전 안에 임하실 때 사용하신

동쪽 문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여기 “그 후에”는 성전 건축을 마친 후를 의미한다.

성전이 완공되었을 때 하느님께서 에제키엘을 인도하여 동쪽 문에 이르셨다.

그는 그곳에서 하느님의 영광이 동쪽 문을 향하여

성전 안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았다.

주의 영은 또 다시 에제키엘을 성전 안뜰로 인도하셨고

에제키엘은 그곳에서 주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보았다.

이처럼 주님의 영 인도하심으로 인하여 에제키엘은 완성된 성전 안으로

주님의 영광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또한 이로 인하여

성전 안에 주님의 영광이 충만한 것을 보았다.

하느님께서 에제키엘에게 이와 같은 것들을 보여주신 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세워진 성전에는 하느님께서 임재 하신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기 위함이었다.

성전의 건물은 우리가 지을 수 있지만 건물 자체로는 성전이 될 수 없다.

성전은 하느님께서 임재하실 때에만 성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43,6-12 :

주님의 영이 성전에서 에제키엘에게 말씀하고 있는 동안

곁에 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에제키엘에게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일반적으로 에제키엘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시는 이는 하느님이시다.

 따라서 본문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직접 에제키엘에게 주신 말씀으로서 그 중요성이 더 한다.

하느님은 에제키엘에게 어쩨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는지 말씀하신 후에

언제나 하느님의 임재 가운데 살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셨다.

하느님은 성전을 더럽힐 때 그곳에 살지 않으시고,

그리고 성전을 더럽힌 자들에 대하여 진노하신다.

이스라엘은 총체적으로 행음하였다. 물론 여기 행음은 우상숭배를 의미한다.

모든 예언서에 이스라엘이 우상숭배하는 행위를 행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시체들로 성전을 더럽혔다.

레위기의 성별 법을 보면 시체는 언제나 하느님의 백성들을

더럽히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안뜰의 제단(43,13-17) 

 

여기 제단은 성전 바로 앞에 놓여졌던 번제단을 말하는 것으로(40:47),

성소의 향단과는 구별된다(41:22).

번제단은 흠 없는 자신을 하느님께 드린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한다(히브9:14). 


제단의 봉헌(43,18-27) 

 

여기는 앞에 언급된 번제단을 주님께 봉헌하는 규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규정에 의하면 번제단은 7일 동안 속죄제를 드려서 봉헌토록 되어있다.

43장의 이와 같은 내용의 말씀들은 우리로 하여금 실생활에서

어떻게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 말해 주고 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하느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께서 임재 해 계시는 성전을 보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먼저 하느님의 임재하심을 의식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도할 때든지, 예배를 드릴 때든지, 일상생활을 할 때든지,

기타 무슨 일을 할 때든지 우리는 지금 여기에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하느님의 임재하심을 의식하되 마치 에제키엘이 성전에

하느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을 본 것처럼

지금 여기에 하느님의 임재하심이 충만한 것을 보아야 한다.

이처럼 하느님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