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역대기 공부

역대하 10장 공부 : 북쪽 지파들이 반기를 들다

윤 베드로 2017. 9. 15. 07:37


북쪽 지파들이 반기를 들다(10,1-19) 


10,1-15 :

솔로몬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르호보암을 왕으로 세우기 위하여 세겜에 모였다.

세겜은 예루살렘에서 북쪽 약 65㎞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가나안 지역에서 중심부에 속한다.

또한 이곳에는 거룩한 상수리나무가 있었던 곳으로

종교적으로 중요한 곳이다(창세12:6, 35:4).

이런 이유 등으로 인하여 세겜은 이스라엘 가운데

특히 북쪽 이스라엘 지파 연합체의 정치적 중심 성읍이었던 것 같다.

특별히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기 위하여 세겜으로 간 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 구조를 잘 반영해 준다.

당시 이스라엘은 외형적으로는 통일 왕국을 이루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다윗초기의 정치 상황과 같이

유다를 중심한 정치 공동체와 나머지 지파를 중심한 정치 공동체가

공존하고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통일 왕국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두 공동체 모두가 한 왕(다윗 또는 솔로몬)을 자신들의 왕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솔로몬이 죽은 후에 르호보암도 두 공동체로부터

자신의 왕권에 대한 승인을 얻어야 했다.

물론 유다는 그의 왕권을 인정해 주었고, 다음으로 북쪽 공동체의

승인을 얻기 위하여 그는 세겜으로 간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르호보암을 왕으로 세우기 위하여

세겜에 모인 이스라엘은 북쪽 지파에 속하는 자들일 것이다.

이때 북쪽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지도자는 여로보암이었다.

솔로몬이 죽은 후에 북쪽 이스라엘 공동체는 사람을 보내어 애굽에

피신 중에 있던 여로보암을 청하여 자신들의 지도자로 삼았다.

이것은 여로보암이 솔로몬의 위협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신해 있을 때에도 

         북쪽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그의 영향력이 계속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그들이 여로보암을 불러온 것은

르호보암을 왕으로 세우는 일에 문제가 있을 때

그를 자신들의 왕으로 삼고자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예로보암은 온 이스라엘과 함께 르하브암에게 가서 말하였다.

‘임금님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멍에를 힘겹게 하셨습니다.

이제 임금님의 아버지께서 지우신 힘겨운 일과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임금님을 섬기겠습니다.’”(10:3,4)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르호보암에게 왕권을 인정해 주기 위한

조건을 제시했다. 하나는 세금을 감해 달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부역을 감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솔로몬이 백성들에게 너무 많은 세금과 부역을 부과하여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솔로몬은 일생동안 성전 건축과 왕궁과 성읍들을 건축하고

성벽을 쌓는 일을 위하여 막대한 돈과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부담 중의 일부를 담당했지만

그것 역시 그들에게 짐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르호보암을 왕으로 세우는 조건으로

세금과 부역을 감해 주어 자신들의 짐을 덜어달라는 것이었다.

르호보암은 백성들이 제시한 조건에 대하여 3일 후에 대답해 줄 것을

약속한 후, 그는 먼저 나라의 원로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원로들은 백성들의 요청을 들어 주라고 대답했다.

다음으로 르호보암은 자신과 함께 자란 소년들에게 동일한 조언을 구했다.

그들은 르호보암에게 백성들의 요청을 들어주지 말고

오히려 부친 솔로몬이 했던 것보다 더욱 엄하게 다스릴 것이라고

대답해 주라고 말했다. 즉 힘으로 왕권을 지키라는 것이다.

르호보암은 후자를 택했다.

3일 후 르호보암은 백성들에게 나가서

소년들의 말대로 포악하게 대답해 주었다.

로호보암의 이와 같은 대답으로 인하여 결국 나라가 분열된다.


10,16-19 :

르호보암의 포악한 말을 들은 이스라엘은 로호보암에게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보아라”고 말했다.

이것은 그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함으로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축제가 되어야 할 날이

오히려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슬픈 분열의 날이 되었다.

그러나 유다의 성읍들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은 르호보암을 왕으로 인정했다.

르호보암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고 흩어진 후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그들과 다시 협상하기 위하여

역군의 감독 하도람을 보내었지만 이미 사태를 수습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백성들의 마음이 크게 상하였음으로

그들은 르호보암이 보낸 자를 돌로 쳐 죽였다.

르호보암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고 급히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