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역대기 공부

역대상 11장 공부 :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다

윤 베드로 2017. 9. 2. 09:04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다(11,1-3) 


저자는 사울의 죽음을 말하며 그의 죽음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그를 죽게 하시고 이사이의 아들 다윗에게

나라를 넘겨주셨다(10:14)”라고 정리한 후,

신속하게 그의 왕권이 다윗에게 돌려진 것을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10장 14절과 11장 사이에는 생략된 역사가 있다.

사무엘하1-4장에 이 역사가 언급 되어 있다.

정리하면,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헤브론에 가서

유다의 왕이 되었고, 또한 사울을 따르던 지파들은 마하나임에서

사울을 대신하여 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해졌고 다윗의 짐은 강성해갔다.

특별히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 넬이 요압의 손에 살해당한 후

사울의 집은 급격히 약해졌고, 결국 이스보셋은

자신의 두 군대 장관 바아나와 레갑의 손에 살해당하였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은 헤브론으로 다윗을 찾아가서

자신들의 왕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것이 본문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사울이 죽고 칠년 육 개월 후에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왕이 되었다(사무하5:4).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다(11,4-9)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곧 王都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다윗이 유다 왕으로 있었을 때 왕도였던 헤브론은 유다 지파에 속한 땅으로

이스라엘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므로 이곳을 王都로 삼은 경우 두 가지 어려움이 예상되었을 것이다.

하나는 이스라엘 12지파의 분포를 고려할 때 헤브론은 지나치게

남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왕으로서 이스라엘 전체를

통치하기 위한 수도로서는 적합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헤브론은 유다에 속한 땅이기 때문에

그들이 왕을 독점하려는 경향이 예상 되었다.

그래서 그는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고 했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땅이지만 당시 그곳은 여부스족이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부스를 쫓아내고 그 곳을 왕도로 삼는다면

모든 지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땅과

모든 지파를 통치하기에 적합한 곳에 왕도를 세울 수 있었다.

그래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마자 왕도를 옮기고자 했던 것이다.

실제로 예루살렘은 難攻不落의 도시로 현재 예루살렘의 동남쪽 언덕에 있고, 

 오늘날까지도 말라본 적이 없는 두 개의 견고한 우물에 접근해 있고

깊은 계곡으로 쌓여 있다.

그래서 여호수아 시대로부터 사울 왕 시대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와서 인접한 도성들은 거의 다 점령하였지만

이 도성만은 400년간 점령하지 못하고 계속하여 여브스 족의 도성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성을 빼앗고, 그 성 이름을 다윗성이라고 불렀다. 

 

다윗의 용사들(11,10-47) 

 

11:10-14.

다윗의 용사들은 다윗의 힘을 도와 나라를 얻게 하였고 또한 다윗을 세워 왕을 삼았다.

그러므로 이들이 없었다면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윗에게 뛰어난 세 명의 용사가 있었다.

하나는 야소보암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엘르아살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의 이름은 여기에 언급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삼마다(사무하23:11).


11,15-19 :

세 용사 다음으로는 “삼십 두목”이 그 다음 지위를 차지했다.

본문은 삼십 두목들 가운데 세 사람의 행위를 통하여

그들이 다윗에게 얼마나 충성스런 자들인지 말해 주고 있다.

다윗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마시기 원했다.

그래서 그는 삼십 두목들 가운데 자신의 곁에 있는 세 사람에게

“누가 내게 마시게 할꼬”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물물이 있는 곳은 블레셋 군대가 진치고 있는 곳이었으므로

생명의 위험을 무릎 쓰지 않고는 그곳을 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다윗을 위하여 적진에 가서

우물물을 길어가지고 왔다(11,17-18).

이와 같은 이들의 행동은 다윗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조차

아까워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즉 그들은 다윗에게 충성스런 자였다.

그러나 다윗은 이들이 길어온 우물물을 마실 수 없었다.

그가 충동적으로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고 말했지만,

세 용사가 그 물을 구해오기 위하여 생명의 위험을 무릎 쓰고

적진가는 모습을 보고 그는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깊이 뉘우쳤다.

그래서 그는 그 물을 마시지 못하고 주님께 부어드렸다.


11,20-25 :

아비새는 다윗의 조카다. 그는 다윗을 위하여 블레셋 군대가 진치고 있는

베들레헴에 가서 우물물을 길어온 삼인 중에 두목이다.

그의 용사적인 기질은 다윗과 함께 밤에 사울의 진에 내려가기를

자원했던 모습에서 입증 되었다(사무상26:6,7).

그는 또한 이스보셋과 아브넬의 군대에 대항하기 위해

그의 형제 요압과 함께 군대장관을 지냈었다(사무하2:24).

세 용사 중의 다른 한 사람은 브나냐이고(11:22-25),

또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언급 되지 않았다.


11,26-47 :

여기서는 다윗의 삼십 명의 용사들의 이름들을 기록하고 있다.

삼십 명의 출신을 보면 여러 지파의 사람들이 있고,

또한 이 명단에는 이방인들까지 포함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암몬 사람 셀렉, 헷 사람 우리아 등이다.

이처럼 다윗의 용사들 가운데 이방인까지 포함된 것은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여러 지방으로 다닐 때 이방인들 가운데서

다윗을 따름으로 이루어진 일일 것이다.

이처럼 다윗은 편협적인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신앙을 고백하고

자신을 따르기로 한 자들을 기꺼이 받아 주었다.

다윗의 용사들에 대한 기록을 통해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다윗은 능력에 따라 군대를 조직하였다.

그의 군대는 요압을 군대 장관으로 하고 그 다음은 삼인의 용사

그 다음은 삼십인의 용사들로 조직 되었다.

이처럼 각 사람이 각각의 위치를 차지한 것은 그들 각자가 實戰을 통하여 

         군사로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 준 것에 따른 것이다.

둘째, 다윗의 용사들은 충성스런 자들이었다.

다윗을 위한 일이라면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셋째, 다윗은 편협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인재를 등용했다.

이것은 그의 용사들 가운데 이방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