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기타구약 공부

애가 5장 공부 : 애원의 기도

윤 베드로 2017. 8. 3. 09:20

다섯째 애가 : 애원의 기도(5,1-22)

 

 

5,1-18 :

하느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특권들 가운데 하나는 視空間을 초월하여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유다는 그들의 역사 가운데 가장 큰 시련을 받고 있는 중이다.

시온은 대적의 손에 황폐하였지만 그들에게는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전쟁에 패한 그들의 현재는 절망 그 자체였지만

            또한 미래를 바라보아도 소망의 빛을 찾을 수 없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절망 외에 무엇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이와 같은 환경 가운데서도 할 일이 남아 있다.

그것은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

예언자는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절망 가운데서도

                 하느님께 나가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보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이다.

예언자의 기도는 온전히 하느님의 矜恤하심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들이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은 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당당하게 하느님께 나갈 수 없었고

            다만 불쌍히 여겨 주시기만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긍휼하심은 우리가 죄로 인하여

            그의 진노하심 가운데 있을 때조차 구원의 문이 되신다.

예언자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당한 것을 기억하소서”라고 기도하며

                자신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들을 호소하였다.

“저희 상속의 땅은 외국인들에게 넘어가고 저희의 가옥들은 이방인들에게 넘어갔으며

         저희는 아비 없는 고아들이 되고 저희의 어미는 과부가 되었습니다.

저희의 물을 돈 내고 마셔야 하고 저희의 땔감도 값을 치르고 들여야 합니다.

저희는 목에 멍에를 맨 채 심하게 내몰려 기운이 다 빠졌건만

             숨 돌리기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5:2-5)”

 

본문은 유다가 바빌론에 정복당한 이후의 생활상을 말하고 있다.

유다는 지금까지 주님의 선민으로서 약속의 땅에서 자유민으로서 살았지만,

             바빌론에게 정복당한 후에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한낱 정복민으로서 살고 있다.

그들이 지금까지 살고 있던 집과 소유들은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었고

              또 그들이 자유롭게 사용했던 것들도 값을 주어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고아와 과부 같다고 말한 것이다.

예언자는 어째서 유다가 이처럼 황폐하였는지 말해 주고 있다.

여기 그들이 “양식으로 배불리려고 저희는 이집트와 아시리아에

          손을 내밀었습니다.(5,6)”는 것은 하느님을 의지하여야 할 그들이

          오히려 사람들을 의지했다는 것을 말한다.

즉 그들이 황폐한 것은 불신앙으로 인한 것이라는 의미다.

“죄를 지은 저희의 선조들은 이미 없는데 저희가 그들의 죄악들을 짊어져야 합니다.(5:7)”

여기 “그들의 죄악”이란 조상들이 지은 죄를 말한다.

그러므로 “저희가 그들의 죄악들을 짊어져야 합니다”란 조상들이 죄를 범하여 스스로 넘어졌지만

                또한 그들의 죄로 인한 하느님의 진노하심이 후손들에게까지 미쳤다는 의미다.

이런 의미에서 앞 세대는 다음세대에 대하여 책임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뿌렸든지 후 세대는 그들이 뿌린 씨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유다는 무기력한 자가 되었다.

 

그들이 하느님을 의지하고 살 때에는 열국이 그들을 두려워했는데

            이제는 종들이 관할해도 어쩔 수 없는 연약한 자가 되었다.

하느님을 의지할 때 그들은 광야에서도 양식이 궁핍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죽기를 무릅써도 생계조차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부녀와 처녀들이 욕을 당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지켜 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전에 존경받던 고관들과 원로들은 모든 권위를 잃어버렸고

         시온의 소년들은 맷돌을 지는 천민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처럼 불행한 일들은 열조의 죄로 인하여 후손들이 담당해야하는 것들이다(5:8-14).

“저희 마음에서 기쁨이 사라지고 춤은 통곡으로 바뀌었으며

          저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습니다.

오, 애통합니다, 저희가 죄를 지었으니!

이 때문에 저희의 마음은 괴롭고 이런 것들 때문에 저희의 눈은 어두워졌습니다.

폐허가 되어 여우들이 나돌아 다니는 시온 산 때문입니다.(5:15-18)”

기쁨이 있어야 할 그들 가운데 기쁨이 그쳤고, 춤이 있어야 할 그들 가운데 슬픔이 있고,

            면류관을 써야 할 자들의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진 것은모두 죄로 인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참으로 슬퍼야해야 할 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죄는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또한 우리의 땅을 황폐하게 하여 살 곳이 없게 한다.

 

5,19-22 :

예언자는 고난 중에서도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에게 하느님은 영원히 계시는 분이시다.

즉 예언자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은 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들에게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신 분이시다.

여기 예언자가 하느님을 영원히 계시다고 말한 것은

         이와 같은 하느님의 속성과 인격이 변함이 없다는 의미다.

이것은 비록 그들이 죄를 범하여 하느님의 진노하심 가운데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자신들을 구원해 주실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 대한 사랑도 변함이 없으시다는 의미다.

이처럼 고난 중에서도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회상하였을 때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언자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새롭게 하였을 때 다시 자비를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 나가 “어찌하여 저희를 끝내 잊으려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희를 영영 버리려 하십니까?

주님, 저희를 당신께 되돌리소서, 저희가 돌아가오리다.

저희의 날들을 예전처럼 새롭게 하여 주소서.”라고 하느님의 긍휼하심을 구하였다.

예언자는 자신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기 때문에

                 스스로 하느님께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 자신들을 하느님께로 돌이켜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그는 자신들이 하느님께 돌아갈 때 다시 새롭게 될 것을 믿었다.

예언자에게 구원은 곧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