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기타구약 공부

룻기 1장 공부 : 나오미가 룻과 함께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다

윤 베드로 2017. 8. 3. 11:36

기근이 들어 모압으로 이주하다(1,1-5)

 

여기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라는 말은 룻기가 판관시대에 있었던

또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관시대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이방인들의 신앙과 문화의 도전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정착하기까지 살았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룻기는 당시 하느님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대하여 가졌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의 어떠함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왜냐하면 당시 약속의 땅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태도는

그들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어떠함을 판단해 줄 수 있는 시금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약속의 땅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상속으로 주신 땅이며

또한 하느님의 약속이 있는 땅이었다.

 

엘리멜렉은 약속의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자신의 가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 베들레헴을 떠나 이방인의 땅 모압으로 이주했다.

모압 땅에서 家長인 엘리멜렉이 죽었다.

어쩌면 당시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는 비록 남편이 죽었을지라도

두 아들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모압에서 복된 삶을 살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두 아들을 위하여 모압 여인을 취하여 그들의 아내로 주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이 모압에 거주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십년 즈음에 두 아들도 죽었다.

그래서 그 집에는 세 명의 과부만 남아있었다.

특별히 아들들이 자녀를 생산하지 못하고 죽은 것을 보면

그들의 죽음은 결혼 초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오미가 룻과 함께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다(1,6-22)

 

1,6-14 :

나오미는 모압 땅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때,

그리고 자신이 버리고 나온 약속의 땅에 하느님께서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모압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이 하느님의 징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약속의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고자 했을 때 그의 두 며느리도 함께 했다.

그러나 도중에 나오미는 그들의 장래를 생각하여

그들을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고자 했다(8-10절).

나오미는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향할 때와 마찬가지로

모압으로부터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도 그의 행위는 신앙에 따른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고자 한 그 자체가 신앙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의 두 자부에게 각각의 어미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고한 것은

인정이었을 뿐 신앙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을 자신의 남편으로 택한 것은

단순한 결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改宗을 의미한다.

그런데 또 다시 그들을 옛 어미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떠나 본래의 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1:15).

만일 나오미가 확고한 신앙의 사람이었다면 그들의 장래 문제를

하느님께 맡기고 그들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향하였을 것이다.

 

1,15-22 :

나오미는 자기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두 자부에게

자신을 따를 때 어떤 희망도 없다는 것을 말하며

자신을 떠나 각각 자기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서 재혼하고 살도록 권고했다.

나오미의 이와 같은 권고로 인하여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을 맞추고 그를 떠났다.

그러나 룻은 결코 시어미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오미는 또 다시 그에게 자신을 떠날 것을 권고하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1:15)”

여기 시어마니를 떠난 오르바에 대하여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라는 말은 언급한 것처럼

그들이 이스라엘 집에 들어온 것은 그들의 백성과 신들을 버리고

이스라엘 백성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다시 옛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이스라엘과 하느님을

떠나 옛 백성과 옛 신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행동은 단순히 시어미에 대한 태도가 아니었고

하느님을 택하든지 모압의 신으로 돌아가든지 결단이 촉구되는 신앙의 행위였다.

이런 의미에서 오르바의 결정은 이스라엘 하느님에 대한 背敎였다.

 

룻은 신앙을 택했다. 그래서 나오미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시어머니를 따르겠다고 한 것이다(16-17절).

여기 우리는 룻의 결단을 통하여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한다.

하나는 결코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는 그의 결단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시어머니를 따르겠다는 말은 그가 섬기는

하느님을 따르겠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룻은 안락한 삶을 위하여 자기 백성과 그들의 신을 택하지 않았고

비록 고난을 받을지라도 이스라엘과 그들이 믿는 하느님을 택한 것이다.

나오미의 결심이 굳게 서 있었고, 룻의 결심이 굳게 서 있었을 때

두 사람은 베들레헴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하느님께 향한 결심이 굳게 서 있을 때 앞길에 어떤 장애가 놓여

있을지라도 이들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며 기쁘게 맞아 주었다.

그러나 나오미는 그들에게 자신을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했다.

나오미는 희락이라는 의미이고 마라라는 말은 괴로움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오미가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마라라고

부르라고 한 것은 약속의 땅을 떠났을 때

자신의 삶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간증이요 회개였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나오미라고 속이고 싶지 않았다.

여기 중요한 교훈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인식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새로운 길(회복의 은혜)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는 어째서 자신의 이름을 마라라고 불러야 마땅한지 말해 주기 위하여

약속의 땅을 떠났던 십년 동안의 삶을 보다 더 자세하게 이웃들에게 말해 주었다(20-21절).

나오미는 풍족한 가운데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갔다.

이것은 그들이 베들레헴을 떠난 것은 흉년으로 인하여

더 이상 그곳에 살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고 오히려 현재 누리고 있는 것보다

더 큰 풍요를 누리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나 그들은 더 큰 풍요로움을 누리기 위하여 신앙을 버려야 했다.

이로 인하여 그들이 얻게 된 것은 무엇인가?

나오미는 십년 동안의 삶의 경험을 통하여

이 물음에 대하여 분명한 대답을 주고 있다.

“나 아쉬움 없이 떠나갔는데

주님께서 나를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셨답니다.(21절)”

그들은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하여 하느님을 떠났지만

그러나 그들이 얻은 것이란 괴로움과 피곤뿐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모든 시대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큰 교훈이 된다.

우리가 하느님을 떠나 더 많은 것을 얻기 바란다면

이런 바람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바람이다.

오히려 하느님을 잃게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렇게 나오미는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들은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하느님은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생계를 해결할 수 있고,

또한 그들의 장래를 축복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한환경을 예비해 두셨다.

그들에 대한 하느님의 인도하심은 보리를 추수하는 밭에서 시작 되었다.

특별히 룻은 그곳에서 하루의 양식을 위하여 이삭을 주었지만

하느님은 그 일을 통하여 그에게 계획하신 놀라운 일로 인도해 가고 있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룻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 약속의 땅에 사는

자기 백성들 가운데 행하시는 일이다.

즉 우리는 매일의 삶 가운데 이삭을 줍지만 하느님은 그 일을 통하여

우리를 자신의 계획안으로 이끄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