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기타구약 공부

애가 3장 공부 : 고통과 희망

윤 베드로 2017. 8. 2. 12:36

셋째 애가 ; 고통과 희망(3,1-66)

 

3,1-18 :

예언자는 첫 번째 애가에서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탄식하였고

두 번째 애가에서 주께서 시온의 대적이 되신 것을 탄식하였고,

세 번째 애가에서는 하느님의 진노하심으로 인하여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들을 탄식하였다.

1절이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2-18절은 예언자가 받고 있는 고난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예언자 자신이 체험한 고난의 경험을 깊고 풍부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

특별히 2-18절에서 막대, 암흑, 담즙, 사슬, 쑥, 등과 같은 명사들과

            “치셨다” “물리치셨다” “무겁게 하셨다” “막았다” 등과 같은 동사들은

             저자가 체험한 고난이 얼마나 컸는지 말해 주고 있다.

 

3,19-39 :

예언자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다(3:21)”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예언자가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 말하고자 함이다.

특별히 예언자가 하느님을 회상함으로 깨달은 사실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주님의 자애는 다함이 없고 그분의 자비는 끝이 없어

             아침마다 새롭다네. 당신의 신의는 크기도 합니다.(3:22-23)”

예언자는 묵상을 통해 하느님의 인자와 자애가 무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하느님은 이런 은혜들을 자기 백성들에게 날마다

                 새롭게 부여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3:27-28)”

그가 고난을 예찬하게 된 것은 고난을 통하여 하느님을 보다 깊이 알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백성에게 하느님을 아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을 아는 만큼 신뢰할 수 있고 아는 만큼 예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들의 삶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 기초되어 있는 것이다.

예언자는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을 더 알 수 있다면 고난조차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외에도 그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들이 있다.

그것들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께서 고난받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구하도록

             보좌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것이다. 물론 이 길은 기도다.

예언자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고 이 있다.

“그는 제 입을 먼지 속에 박아야 하네. 어쩌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지.(2:29)”

예언자로 하여금 고난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한 것들 가운데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공의로우심이었다.

그는 하느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囚人들이 발아래 짓밟히는데

              지극히 높으신 분의 면전에서 인간의 권리가 박탈당하는데

              송사에서 사람이 불의하게 다루어지는데

               주님께서 보지 않으실 리 있으랴?(3:34-36)”

이것은 예언자가 지금 유다를 박해하고 있는 대적들이 언젠가는 하느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마음에 두고 한 말이다.

그들이 지금 죄를 범한 주님의 백성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이 범한 불의함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들은 그들에 의하여 절망과 좌절이 가늠되는 것은 아니다.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지극히 높으신 분의 명령에 따라 일어나지 않는가?

그러니 살아 있는 인간이 무엇을 한탄하리오?

저마다 제 잘못을 한탄할 수밖에.(3,38-39).

즉 현재 참담한 현실 가운데 있는 예언자는 이런 현실이

              외적 환경에 의하여 좌우되거나 영속화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만유의 주님이신 하느님의 주권에 의존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현실로 인하여 절망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3,40-54 :

禍와 福이 하느님의 주권에 있음을 안 예언자는 죄로 인하여 하느님의 진노가운데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유일한 소망의 길은 죄를 회개하고

        하느님께 자비를 구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백성들에게 40-41절에서

“우리의 길을 성찰하고 반성하여 주님께 돌아가세.

             손과 함께 우리의 마음도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들어 올리세.”라고 권고한 것이다.

이것은 자신들의 죄를 심판하실 권한이 하느님께 있는 것처럼

            자신들을 구원해 주실 권한도 하느님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하느님은 자기 백성들을 진노의 구름으로 가리고 계시다.

이와 같은 때 구원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회개하고

                 자비를 구하는 것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계속하여 예언자는 자신의 비탄을 말하고 있다(3:47-54).

그런데 예언자는 이처럼 백성들로 인하여 비탄에 빠질수록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나가 백성들의 구원을 위하여 탄원했다.

 

3,55-66 :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탄식과 부르짖음을 들으셨다는 것을 확신했고,

                하느님께서 대적들의 악한 행위를 보셨다는 것과

                그들의 죄악에 따라 심판하실 것을 믿었다.

또한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억울함을 돌아보실 것을 믿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 자신의 원통함을 풀어 주실 것을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