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기타구약 공부

애가 1장 공부 : 예루살렘의 참상

윤 베드로 2017. 8. 1. 09:58

첫째 애가 ; 예루살렘의 참상(1,1-22)

 

1,1-3 :

“외로이 앉아 있다” “밤이면 울고 또 울어” 등은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보는 예언자의 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에게 예루살렘의 황폐함은 한 순간의 슬픔이 아니었고

            그의 마음에 사무치는 또는 지울 수 없는 슬픔이요 비탄이었다.

그래서 이런 그의 비탄을 탄식으로 표현했고

            특별히 밤에 슬피 우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가 그토록 슬퍼한 것이 무엇인지는 본문을 통하여 보여 주고 있다.

예루살렘은 전에 주민이 많았고, 열국 중에 크던 자였더니

                    이제는 과부처럼 되었고, 적막한 곳이 되었고,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다.

이처럼 예루살렘은 외적 환경만 아니고 내적 환경도 황폐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사랑하던 자들과 친구들로부터

             소외와 배반을 당하였고 환난과 수고로움 가운데 살게 되었고

             또한 이와 같은 환경 가운데서 평안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던 곳으로부터 협잡한 곳으로 쫓겼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의 이와 같은 모습을 보고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1,4-7 :

예언자는 계속하여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말하고 있다.

특별히 그는 예루살렘의 절기의 모습을 마음으로 회상하며

             현재 그들이 얼마나 초라해졌는지 말해 주고 있다.

절기마다 예루살렘은 각 곳으로부터 온 유다인들로 넘쳐났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예배자들이 없음으로 도로는 한산했고 성전은 텅 비어 있었다.

이로 인하여 제사장들은 탄식하였다.

여기 제사장이 탄식했다는 것은 하느님께 예배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식물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백성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들 가운데

               제사장에게 돌리는 것으로 식물을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사가 끊기면 제사장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이처럼 제사장들에게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자신의 생계는 직결되어 있었다.

즉 그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모든 것을 공급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5절에서 예레미야는 적이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원수가 편안히 지내고 어린 아이들이 사로잡혀갔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주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로잡힘을 피하여 자기 나라에 살고 있을지라도

            쫓기는 자가 되고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자가 되고 환란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1,8-11 :

예루살렘이 황폐하게 된 것은 죄를 범하고도 나중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 “부정이 옷자락에 묻어 있다(1:9)”는 것은 유다가 하느님께 범죄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 “제 종말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무감각한 자가 되어 죄를 범하고도 회개할 줄 몰랐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그들로부터 모든 은혜를 뺏어 가셨고

                또한 대적을 보내심으로 그들을 심판하신 것이다.

즉 그들이 나중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 이처럼 큰 불행을 가져온 곳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달은 자들은 하느님께 나가 구원해 주시기를 탄원할 것이다.

여기 예언자의 탄원은 바로 이처럼 각성된 자의 기도다.

 

1,12-16 :

예언자의 탄식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자신과 같은 근심이

                 그들에게도 있는지 묻는 물음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예언자에게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황폐함으로 인한

            탄식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말해 준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속한 용사들을 모두 물리쳐 버리시고

                     내 젊은이들을 때려 부수시려 나를 거슬러 집회를 소집하셨다오.

주님께서는 포도 확을 밟듯 처녀 딸 유다를 짓밟으셨다오. (1:15)”

여기 용사들과 처녀 딸 유다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백성을 상징하고

         또한 하느님께서 택하여 주신 거룩한 성 시온의 아름다움을 지키도록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백성들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모두 무력한 자들이 되었다.

그들이 무력한 자가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할 곳이

             무력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언자의 고통은 하느님께 영광 돌려야 할 자들이 무력하게 된 것에 대한 고통과

                영광 받으셔야 할 하느님께서 그들의 무력함으로 인하여

                 영광을 받지 못하시는 것에 대한 고통 등 이중적인 고통이었다.

예언자는 이 탄식으로 인하여 종일토록 피곤하게 하여 황폐하게 되었고

                또한 이로 인하여 흘린 눈물이 물과 같이 흘러내렸다. .

 

1,17 :

유다는 위로가 필요해 두 손을 폈지만 위로해줄 자가 없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대적이 될지라도

           위로받을 수 있지만 하느님께서 우리를 적대하신다면

           세상에서 우리를 위로 해줄 자가 없다.

 

1,18-22 :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황폐하게 하셨을지라도

                   그것은 하느님의 의로우심을 손상시키는 일이 아니고

                     오히려 의로우심을 드러내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심판은 오히려 백성들의 죄를 각성시켜 준다.

그래서 예언자는 “주님은 의로우신 분

              내가 그분의 명령을 거역하였다.(1:18)”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심판으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는 예루살렘의 참혹한 현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 것은 영적으로 각성된 자에게 하느님의 심판으로 오는

          고통과 탄식은 하느님을 멀리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느님께 가까이 나가게 하는 은혜의 수단이 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탄식은 또 하나의 신앙의 디딤돌이 되는 것이다.

 

20-21에서 예언자는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이 죄로 인한 것임을 고백하고

                  하느님께 그 고통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호소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탄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죄의 심판으로 인하여 온 환란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을 심판하신 하느님께 나가 구원을 탄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