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예레미야서 공부

예레미야서 30장 공부 : 이스라엘의 회복①

윤 베드로 2017. 6. 2. 09:00

이스라엘의 회복(30,1-31,40)

 

*예레미야서 30-33장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 때가 이르면

                    다시 本土로 돌아올 것이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서 중에서 이 부분은 '위로의 책'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①머리말(30,1-3)

 

하느님은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에게 한 말을 모두 책에 적어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기록하라고 주신 말씀은

                   “포로 된 자들이 다시 귀환할 때가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 이것을 말씀해 주신 것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이

                   그 곳에서 낙심할 때마다 기록된 이 말씀을 읽고 소망을 얻도록 하려 하심이었다.

만일 이 말씀이 없었다면 그들은 바빌론에서 기약없는 포로생활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이 있기 때문에 때가 이르면 포로로부터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날을 소망하며 살 수 있었다.

이처럼 동일한 환경 가운데 살고 있을지라도

            소망 없이 사는 것과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그들이 포로로 살면서 고통스런 현실로 인하여 낙심될 때마다

                약속의 말씀을 읽음으로 소망을 새롭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②징벌의 회상(30,4-7)

아직은 예루살렘이 멸망하지 않은 때이지만 하느님은 미리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참혹하게 고난을 당할 것을

            말씀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후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에

            그들이 포로로부터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것을 말씀해 주셨다.

5절은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의하여 무너질 날의 공포스러움을 말해 주고 있다.

이런 날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있어서는 안 될 날이다.

그래서 본문은 그날의 비정상적인 모습과 그 고통스러움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자가 해산할 수 있는지 한번 물어보아라. 그런데 어찌하여 내가 보기에

             남자들이 모두 해산하는 여인처럼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있느냐?

어찌하여 얼굴이 모두 창백하게 변하였느냐?

아아 그날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무서운 날이다.(30:6-7)”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없듯이 하느님의 백성이

             이방인의 손에 잡혀 포로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다는 그들의 죄로 인하여 이방인의 손에 잡혀서 그들의 포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해산의 고통과 같을 것이다.

그럼에도 유다에게 소망이 있음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구원자가 되셔서

                그들을 포로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느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영원히 지키신다.

 

③해방과 섬김(30,8-9)

예루살렘의 멸망은 오래 동안 믿어 왔던 그들의 삶의 기반을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로 인하여 받게 된 상처는 인간의 힘으로서는 치료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그들에게 주신 그 날에 이루어질 말씀

              “그날에 내가 그의 목에서 멍에를 벗겨 부수고 그의 사슬을 끊어,

               더 이상 이방인들이 그를 종으로 부리지 못하게 하겠다.(30:8)”라는 말씀은

               이처럼 인간의 손으로는 치료받을 수 없는 그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신다는 약속이었다.

이런 은혜에 대한 약속은 예루살렘과 유다에게만 주어진 약속이 아니고,

          모든 시대 하느님의 백성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약속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들만 가질 수 있는 소망은 지금 사람의 손으로 꺾을 수 없는 멍에가

                우리의 목에 씌워졌을지라도 언젠가 하느님의 섭리 가운데 오게 될 그 날에

                 그 고통스런 멍에가 꺾이게 될 것이라는 소망이다.

“그러면 그들은 주 그들의 하느님을 섬기고, 내가 그들에게 일으켜 줄 임금 다윗을 섬길 것이다.(30:9)”라는

              말씀은, 그들은 지금 바빌론 왕을 섬기도록 강요받으며 살고 있지만

               때가 이르면 다시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길 것이다.

              즉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될 것이다.

 

④상처와 치유(30,10-17)

예언자는 회복의 날에 이루어질 일에 대하여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의 종 야곱아, 두려워하지 마라. 이스라엘아, 무서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먼 곳에서, 너의 후손을 포로살이하던 땅에서 구원해 내리라.

야곱이 돌아와 평안히 살며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고 편안히 살리라.(30:10)”

하느님은 야곱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느님은 그 날에 원방에서 포로 된 자기 백성들을

               그들의 조상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유다는 포로로부터 해방되기 전에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한 징계를마땅히 받아야 했다.

11절은 그들이 범한 죄로 인하여 받게 될 고통스런 징계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다.

여기 그들이 받게 될 징계의 고통을 “고칠 수 없는 중한 상처”로 묘사 하고 있다.

그들이 죄로 인하여 하느님께 징계를 받을 때에그들의 아픔을 함께 해 줄 자가 없을 것이다.

여기 “네 송사를 처리할 재판관이 없고…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30:13,14)”'라는 말은

           그들이 의지했던 열방들이 그들의 고통을 외면할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상처는 싸맬 약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상처는 죄로 인하여 온 것임으로 죄에 대한 회개만이 치유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16-17절은 하느님의 유다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말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유다의 죄를 징계하시기 위하여 잠시 대적의 손에 그들을 붙이셨지만

유다를 학대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유다의 죄를 징계하시기 위하여 고칠 수 없는 중한 상처를 허용하셨지만

그것은 그들을 온전함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하여 허용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⑤주님 백성의 회복(30,18-22)

계속하여 포로됨과 회복의 날이 반복적으로 예언되고 있다.

하느님은 또 다시 예언자를 통하여 유다의 회복의 날에 대한 말씀을 주셨다.

하느님께서 유다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포로로부터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었고,

                    또한 황폐한 그곳이 중건 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그토록 부패하여 대적의 손에 팔려 포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유다는 다시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하느님은 그들의 백성이 되는

                완전한 회복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다.

 

⑥주님의 폭풍(30,23-24)

이 단락은 23, 19-20절과 거의 비슷한 되풀이.

이 단락을 여기에 놓은 편집자는 하느님께 베푸시는 구원이란

                 모든 심판을 거두시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키고자 의도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