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예레미야서 공부

예리미야서 22장 공부 : 임금들과 궁궐과 도성

윤 베드로 2017. 5. 26. 06:42

②임금들과 궁궐과 도성(21,11-22,9)

 

*21,11-23,8절은 예레미야가 전해 준 유다의 여러 왕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 말씀들을 편집자가 모아 놓은 것이다.

그 순서는 왕들의 연대순을 따랐으며,

     일반적으로 유다 왕들에 대한 계시 말씀이 서론 역할을 하고 있다(21,11-22,9)

 

21,11-14 :

하느님은 유다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들이 안전하다고 신뢰하고 있는

                 바로 그곳을 불사르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유다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 바빌론이 아니고 오히려 하느님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넘어지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無知다.

특별히 하느님에 대한 무지는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넘어지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

대부분 하느님의 백성들은 하느님을 구원의 하느님으로만 알고 있을 뿐

            자신들을 멸망시키시는 하느님으로 알지 못하고 있다.

실례로서 유다는 자신들의 대적이 바빌론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요새화 된 예루살렘 성을 의지하며

            “누가 우리를 치러 내려오고 우리 거처까지 쳐들어오겠느냐?(21:13)”라고 말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만일 바빌론이 그들의 적이었다면 그들은 견고하고 요새화 된

         예루살렘에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대적하는 자는 바빌론이 아니라 하느님이시었다.

유다는 하느님께 범죄 함으로 스스로 하느님의 대적이 되었고

             또한 하느님께서도 그토록 많은 기회를 주시며 회개하도록 권고의 말씀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거역한 유다를 대적으로 삼으셨다.

그래서 하느님은 바빌론을 심판의 도구로 삼으심으로 유다를 침략하도록 하신 것이다.

 

22,1-9 :

하느님은 예레미야에게 왕궁에 가서 왕을 비롯하여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도록 하셨다.

예레미야는 전에도 하느님의 명하심에 따라 성전 뜰에서

                   모든 백성에게 말씀을 선포한 적이 있다(19:14).

예레미야는 지금 또 다시 하느님의 명에 따라 왕궁에 들어가서

                   왕을 비롯하여 왕궁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로 하여금 왕궁에서 말씀을 선포하도록 하신 것은

                    유다의 장래를 예언해 주시고자 함이었다.

하느님께서 성전 뜰에서 예언자를 통하여 신앙의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처럼,

                    왕궁 앞에서는 공의에 대하여 말씀하셨다(22:3-5).

이것은 성전과 왕궁의 부르심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말해 준다.

성전은 이스라엘이 하느님 앞에서 마땅히 가져야 할 신앙의 문제를 말해 주는 곳이라면

            왕궁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백성들 가운데서

             마땅히 행해야 할 공의의 문제를 말해 주는 곳이다.

이처럼 성전과 왕궁의 부르심이 각각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부르심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하여 하느님께서 예언자에게 왕궁에서 전하라고 하신 말씀이

                 성전 뜰 앞에서 선포하라고 하신 말씀과 다른 것이었다.

즉 공정과 정의를 행하라는 것과 탈취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는 것은 왕을 포함하여

      왕궁에 있는 자들이 하느님 앞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이다.

하느님은 “유다 왕의 집”을 길르앗과 레바논의 정상에 비유하였다(22:6-9).

우리는 하느님께서 이 비유들을 통하여 유다 왕궁에 대하여 말씀하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유들은 유다 왕궁의 좋은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길르앗은 상수리나무 숲으로 유명하고 레바논은 백향목 숲으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을 이해한다면 하느님께서 이 비유들을 사용하신 것은

          유다 왕궁이 레바논 숲처럼 아름답고 풍요로우며

          또한 견고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유다 왕궁이 이처럼 아름다운 곳일지라도 만일 그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으로부터 떠난다면

         그곳은 황무지처럼 황폐한 곳이 될 것이다(22:6-7).

 

③살룸의 운명(22,10-12)

 

22,10-30절은 유다의 세 왕에 대한 심판을 기록하고 있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유다의 왕이 된 여호아하스는 왕위에 오른지 3개월 후에

            애굽왕에게 폐위되어 애굽으로 포로로 잡혀갔고 거기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22:10-12).

그 후 애굽 왕에 의하여 그의 형제 여호야김이 왕위에 올랐으나

         그는 백성들을 폭정함으로 죽은 후에, 왕에 대한 예우에 따라 매장 되지 못하고

         오히려 예루살렘 문밖에 버려져서 나귀같이 매장되었다(22:13-18).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가 여호야긴이라는 이름으로 왕위에 올랐으나

                   그도 바빌론 왕에 의하여 폐위되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그리고 그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여호야김의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시드기야가 왕이 되지만 바빌론에 의해 포로로 잡혀 간다.

이렇게 하여 유다의 역사도 종말을 고하게 된다.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고 애도하지 마라. 오히려 멀리 떠나가는 자를 위하여 슬피 울어라.

그가 다시 돌아와 제가 태어난 땅을 보는 일이 없으리라.

요시야의 아들 살룸은 제 아버지 요시야 다음에 유다 임금이 되어

                다스리다가 이곳에서 떠나가야 했다. 그는 이곳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는 포로로 끌려간 거기에서 죽어다시는 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다.(22:10-12)”

여기 “죽은 자”란 요시야를 말한다.

그는 므깃도에서 애굽과 싸우다가 죽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그를 위하여 울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를 위하여 울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죽었으므로 울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왕 중에는 살아있지만 돌아올 수 없는 자도 있었다.

그가 요시야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애굽 왕에 의하여 폐위 되어

         애굽에 포로로 잡혀가서 돌아오지 못할 살룸이었다.

그러므로 유다가 울 자는 요시야가 아니고 살룸이었다.

하느님께서 유다로부터 은혜를 취하여 가실 때

                  왕조차도 살아있지만 돌아올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④여호야킴의 운명(22,13-19)

 

이 단락은 애굽왕이 여호아하스(살룸)를 폐하고 그를 대신하여 세운 여호야김에 대한 예언이다.

본문은 여호야김의 부패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여호야김은 애굽왕에 의하여 왕위에 오른 사람으로 폭정을 일삼았다.

여기 “불의로 제집을 짓고 부정으로 누각을 쌓는 자!

제 이웃에게 거저 일을 시키고 아무런 품삯도 주지 않는 자” 란

                    바로 여호야김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백성들의 苦役을 통하여 자신의 집을 세우는 일에만 힘썼다.

여호야김은 불의를 행함으로 하느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그의 불의로 인하여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 말씀해 주셨다(22,18-19).

그는 왕으로서 백성을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백성의 고역을 통하여

          자신의 배만을 채움으로 결국은 백성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⑤예루살렘의 탄식(22,20-23)

 

20-21절 말씀은 장차 예루살렘을 도울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다.

레바논, 바산, 아비림은 모두 유다가 도움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주변의 나라들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유다가 그들 가운데서 도움을 구할지라도 대답하는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모두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본문은 하느님의 심판이 임할 때 유다의 처지가 어떠할지 생생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유다가 이와 같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느님을 순종치 않는 것이 그들의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권고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습관이었으므로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충분히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기회를 살 수 없었다(22:21-22).

 

⑥콘야의 운명(22,24-30)

 

고니야는 B.C. 598년에 즉위하여 지낸 몇 달은 여러 가지 점에서

               살룸의 비극적인 경험의 재연이라고 할 수 있다.

열왕기하 24:10-16절은 바빌론의 침략에 의하여 그가 폐위되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말해 주고 있다.

고니야는 왕위를 계승하였을 때 여호야긴이라는 왕호를 썼다.

그는 자신이 예루살렘 성을 내어 준 바빌론에게 폐위 되었고

         그의 모후와 다른 유력한 시민들과 함께 포로로 끌려갔다.

그의 두 아들 가운데 아무도 다윗의 王位에 앉지 못했다.

하느님은 28-30절에서 고니야를 천하고 깨진 그릇에 비유하셨다.

즉 누구도 그를 원치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후 다시 유다로 돌아오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들 중에서도 왕위를 계승한 자가 없다.

실제로 그는 18세에 왕위에 올랐지만 3개월 후에 바빌론에 끌려갔다.

그에게는 일곱 아들들이 있었지만(역대상3:17,18),

               그들은 모두 바빌론에서 낳은 아들들로서 실제로 유다의 왕위를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