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10장 공부 ; 아시리아 임금에 대한 벌

윤 베드로 2017. 3. 27. 07:49

유다의 유력가들에 대한 일곱 번째 저주(10,1-4)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마음을 교만케 하고 완악케 함으로 회개치 않음을 책망하였고(9:8-13),

               이로 인하여 하느님께서 그들 가운데 지도자를 끊으시고,

               그 땅을 전쟁으로 인하여 황폐케 하심으로 기근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다(9:14-21).

하느님은 계속하여 이스라엘의 죄를 물으셨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불의한 법을 제정하여

                   백성들을 합법적으로 탈취함으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자들과 과부들의 권리가 박탈당하고 있었다(10,1-2).

하느님은 이렇게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을 말씀하셨다(10:3).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거절당한다면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고,

                우리의 영화를 보장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어떠한 존귀함도 지킬 수 없다.

이런 자들은 다만 포로된 자의 아래에 쭈구려앉거나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다(10:4).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죄 가운데 사는 것은

                 곧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하여 걷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앗시리아 임금에 대한 벌(10,5-19)

 

10,5-11 :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도구로 사용했던

앗시리아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앗시리아는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도구로 사용하신 나라였다.

그러므로 앗시리아가 강한 것도 그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느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들에게 허용하신 것이었다.

앗시리아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았다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 힘을 私有化함으로 남용했다(5-6).

 

앗시리아는 무지로 인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힘을 스스로의 힘으로 착각하고 교만해져서

                    오히려 그 힘으로 하느님을 멸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 힘을 사유화함으로

             자신들의 탐욕을 이루는 일에 사용했다.

그러므로 앗시리아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파괴적인 일이 일어났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기 전에는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은 이스라엘과의 싸움도 이스라엘이 의지하고 있는

          하느님과의 싸움으로 여기고 자신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하느님에 대한 멸시였다.

 

10,12-19 :

하느님은 앗시리아를 통하여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이루시고자 하신 일을

                모두 이루신 후 그들의 교만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나는 내 손의 힘으로 이것을 이루었다.

          나는 현명한 사람이기에 내 지혜로 이루었다.

          나는 민족들의 경계선을 치워 버렸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았으며

                   왕좌에 앉은 자들을 힘센 장사처럼 끌어내렸다.”(13절).

이 말씀은 앗시리아가 얼마나 스스로 교만했는지 말해 준다.

그들은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라고 말함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힘과

             하느님께서 행하신 일을 자신들의 것으로 돌렸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행위로서 용납 될 수 없는 일이다.

하느님은 교만하게 행한 앗시리아를 멸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주님께서는 그 비대한 자들에게 질병을 보내어 야위게 하시리라.

                 마치 불로 태우듯 그 영화를 불꽃으로 태워 버리시리라(16절).”

하느님의 심판은 스스로 높아져서 하느님을 멸시한 앗시리아에 대하여

                맹렬히 타는 불과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심판의 불이 앗시리아를 사를 때 앗시리아에게 남아 있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마치 산림이 불에 소멸 될 때 그 중에 조금 남은 나무들처럼

            아이라도 그 수를 셈할 수 있을 정도로 겨우 명맥을 유지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10,20-23)

 

하느님께서 앗시리아를 심판하셨을 때 그것을 본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더 이상 자기를 친 앗시리아를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을 신뢰할 것이다.

여기 ‘남은 자들’이란 하느님의 심판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말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에서 남은 자들이란 시련 중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을 말한다(마태24:31,히브3:14).

10,22-23 절에서 다시 한 번 남은 자들을 강조하고 있다.

즉 하느님께서 은혜의 기회를 주실지라도,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남은 자들만 하느님께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아시리아를 두려워하지 마라(10,24-27)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앗시리아가 그들을 학대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앗시리아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를 그치시고

                오히려 앗시리아를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외적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백성들이 직면하는 외적 환경들은

                하느님의 섭리 가운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이 지금 앗시리아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지만

                        그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앗시리아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로부터 심판을 거두어 가신다면

                 앗시리아로부터 오는 고통도 중단 될 것이다.

 

침략자들의 공격과 실패(10,28-34)

 

10,27-32절은 북쪽으로부터 유다를 거쳐 예루살렘 성문으로 나아가는

                       앗시리아 군대의 행진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이사야는 노래로서 자신이 하루 밤 사이에 망할 것을 알지 못하고

                교만히 행하는 앗시리아와 또한 그와 같은 앗시리아를 두려워하는

                 하느님의 백성들의 연약한 모습을 적나나하게 보여 주고 있다.

앗시리아는 자신이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곧 망하게 될 줄도 모르고

                    교만한 마음으로 가득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진격해 가고 있다.

앗시리아는 지금 군사상의 요충지인 믹마스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이스라엘은 두려워했다.

라마가 떨었고 사울의 기브아 사람은 도망했다.

맛메나 사람은 피난하며 게빔 주민은 도망하였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이야 말로 믿음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그리고 주시는 말씀을 믿었더라면

             이처럼 앗시리아를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앗시리아를 꺾으실 때 그들은 꺾일 수밖에 없다.

즉 주께서 앗시리아를 심판하실 때 현재 그들이 얼마나 강하냐는 것과

                상관없이 넘어 질 수밖에 없다(10,3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