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8장 공부 ; 주님만을 두려워하여라

윤 베드로 2017. 3. 26. 07:31

 

이사야의 아들의 탄생과 그의 상징적 이름(8,1-4)

 

4절, “다마스쿠스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전리품이 아시리아의 임금 앞으로

         운반될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스라엘과 아람이 앗시리아에 의하여 곧 망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다.

하느님은 예언자로 하여금 이 예언의 말씀의 핵심을 말해 주는

                “마헤르 살랄 하스 바즈”라는 말은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문자로 기록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언의 말씀을 백성들이 읽을 수 있도록 서판에 통용문자로 써서

            성문 앞에 붙이라는 의미다.

왜냐하면 당시 성문은 사람들이 빈번하게 왕래하는 곳으로 백성들에게 공개적으로 알리거나

                집행해야 할 일을 알리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여기 “마헤르 살랄 하스 바즈”란 “노략에 재빨리”의 뜻이 있다.

즉 이스라엘과 아람이 앗시리아에게 노략 될 것 또는 망하게 될 것을 말해 주는 말이다.

 

하느님은 이 예언의 말씀의 성취를 백성들에게 더욱 확실하게 말씀해 주시기 위하여

                예언자에게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즈가리야를 불러 증거 하게 하셨다.

이처럼 두 증인을 세운 것은 율법에 따라 증인을 세울 때, 확실성을 더하기 위하여

            두 명 이상의 증인을 세우도록 하신 것에 따른 것이다(신명19:15).

하느님은 유다에게 이 예언의 말씀을 더욱 확실하게 해 주시기 위하여

                 이사야에게 또 다른 한 가지를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의 아들의 이름을 “마헤르 살랄 하스 바즈”라고 지으라 하신 것이다.

 

아시리아의 침공(8,5-8)

 

하느님의 말씀이 다시 예언자에게 내렸다.

그 말씀은 유다의 불신앙에 대한 책망의 말씀이었다.

그들의 불신앙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한 것이다.

“실로아”는 예루살렘 동남부에 있는 못이다.

히스기야는 앗시리아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기혼의 샘물을 수도를 통하여 실로아 못에 끌어들였다(2열왕20:20).

이처럼 실로아 물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해 주는 저수지였다.

여기 “실로아 물”은 하느님의 은혜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라는 말은

                 유다가 하느님께서 은밀하게 베푸시는 은혜를 신뢰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눈에 강하게 보이는 이스라엘과 아람을 부러워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것이야 말로 유다의 불신앙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런 불신앙은 유다에게 재앙을 가져다주었다.

하느님은 그들이 부러워하는 강한 자들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지 보여 주시기 위하여 당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던 앗시리아를 그들에게 보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유다는 앗시리아를 의지함으로 침략자들로부터 보호받으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앗시리아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재물만 탈취 당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세상에서 강한 자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무엇인지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강함을 결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는다.

 

승리의 표징인 임마누엘(8,9-10)

 

예언자는 예언의 눈을 돌려 이제부터 앗시리아의 장래를 바라보며

                그들이 멸망할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여기 “민족들” “먼 나라 백성들”은 모두 앗시리아를 말한다.

예언자는 그들의 장래를 바라보며 그들이 패망할 것을 거듭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망하게 되는 이유를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앗시리아는 강한 나라였지만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망할 것이고,

        유다는 현재 죄를 범하여 하느님의 심판 가운데 있지만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결국은 회복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한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이

                 그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힘에 의존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온전히 하느님께 의존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주님만을 두려워하여라(8,11-15)

 

이제 예언자는 예언의 눈을 백성들의 불신앙으로 돌리고 있다.

여기 “이 백성의 길”이란 하느님을 떠나 자기 길로 가고 있는 불신앙적인 사람들을 말한다.

하느님은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모반이라고 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모반이라고 하지 마라.

그리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무서워하지도 마라.

너희는 만군의 주님만을 거룩히 모셔라. 그분만이 너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이시고

          그분만이 너희가 무서워해야 할 분이시다.(8:12-13)”

신앙 사람들의 말은 믿을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이루시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 말하기 때문이다.

 

봉인된 증언 문서(8,16-18)

 

이사야는 자신이 받은 말씀을 봉인하여 제자들이 읽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심판의 말씀이 혹시 제자들에게 낙심을 가져다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주께 받은 말씀일지라도 그 말씀을 받을 만한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의 죄를 심판하심으로

                마치 자기 백성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자신은 끝까지 하느님께 소망을 두고 기다릴 것을 말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주님의 진노하심 가운데 있을지라도

         구원은 주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매한 종교에 대한 경고(8,19-20)

 

예언자는 신뢰하는 자들을 보호해 주기 위하여 거짓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하느님을 신뢰하는 자가 스스로를 거짓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길은

                하느님 외에 어떤 것에게도 묻지 않는 것이다(8,19).

모든 사람은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을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재난을 당할 때 그 결과를 미리 알고 싶어 하거나 또는 자신의 미래를 미리 알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언제나 점쟁이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을 신뢰하는 자들은 이런 일을 이들에게 물어서도 안 되고

            또한 이런 일에 호감을 가져서도 안 된다.

점쟁이에게 묻는 것 자체가 불신앙이기 때문이다.

 

역경의 때(8,21-23)

 

예언자는 하느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스스로를 거짓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오직 율법과 증거의 말씀만을 좇을 것을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신뢰하는 자들에게 말씀만을 좇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말씀만이 하느님께서 보장해 주신 길이기 때문이며

                   또한 말씀만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직 말씀만을 좇는 자들은 거짓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이들에 대하여 언급한 ‘고난, 암흑, 어둠’ 등은

               모두 말씀에 역행하는 자들이 받게 될 고통을 묘사한 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