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강의/복음 묵상

성지 주일의 환희와 비애

윤 베드로 2015. 3. 20. 18:47

●성지 주일의 환희와 비애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지극히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 (마태 21, 9).

 

성주간의 첫날인 주의 수난 성지 주일은 예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당하신 수난을 전례적으로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고 '성지 주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주님께서 고통을 받으시기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이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환호했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다.

 

1. 동예루살렘의 골든 게이트

현재의 예루살렘은 동서로 나뉘어 있다.

동예루살렘은 예수 시대의 발자취가 보존되어 있는 구예루살렘이며

          현재 아랍계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서예루살렘은 현대적인 건축물들로 건설된 예루살렘으로

           주로 유다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서예루살렘의 현대적 도시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흰색 계통이 많다.

즉 건물들의 외벽은 흰 대리석을 붙여 건축되었는데,

     그 이유는 동예루살렘의 돌로 된 건축물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예수께서 입성하셨던 문은 동예루살렘 성에 있는 여덟 개 문 가운데,

       지금은 유일하게 폐쇄되어 사용하지 않는 금문(Golden Gate)이다.

이 문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부활하심으로써 구원 사업을 이루셨고,

            이제 다시 재림하시어 이 문으로 들어오실 때까지

            굳게 닫혀 있게 된다는 상징적인 뜻을 갖고 있다.

 

이 날부터 부활 주일까지는 교회 전례상

     가장 성스러운 주간이라해서 聖週間이라고 부른다.

예수께서 나귀를 타시고 제자들과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환희가 마음에 가득하나,

      한편으로는 곧 당하셔야 할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슬픔을

      수난 복음에서 깊이 느끼게 된다.

이미 이사야 예언자가 언급한 것과 같이 예수님은 메시아이시고 영광의 왕이시지만,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바치셨다.

예수님 안에는 환희와 고통, 영광과 수난이 함께 있음을 알 수 있다.

 

2. 성지 주일의 환희와 비애

성지 주일의 예식에는 환희와 비애가 섞여 있다.

그 날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을 며칠 앞두고 구약 시대의 왕들이 행하던

        전통적 형식으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심으로써

        당신이 메시아이고 왕임을 드러내 보이신다.

그래서 백성들과 아이들은 이 왕을 열렬히 환영했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가 온다. 만세!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찬미받으소서."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가시는 길에 겉옷을 펴놓고,

            나무를 꺾어 그 길 위에 펴 놓았다.

또 군중은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바로 며칠 후에는 그 군중이 "호산나, 만세"의 환호성 대신에

           예수님을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며 날뛴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처럼 자기 위주로 변하고

              자기들의 편의대로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영광은 다시 수난으로 변하게 된다.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는 예수님의 고통을 예견하면서

           그 수난당하시는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때리는 자들에게 나의 등을 맡기며…,

           욕설과 침 뱉음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우지도 않는다"(이사 50, 6).

또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것을 모두 버리시고

           종의 신분을 취하시고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다고 말한다(필립 2, 7-8).

사실 수난 복음은 수난당하시는 메시아 왕의 모습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로부터 배신당하고

              이리저리 헤로데와 빌라도, 가야파 등에게로 끌려 다니셨고,

              또 가장 사랑하였던 베드로에게마저도 배반당하셨다.

또 채찍으로 매를 맞으시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또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바리아 산에 오르시고

     또 십자가에 못 박혀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아 죽으셨다.

예수님은 끝내는 하느님에게서마저 버림받은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마태 27, 46).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그 처절한 십자가상의 죽음의 외침은 과연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왜 하느님께서는 그토록 사랑하시는 당신 아들을 처참하게 죽게 만드셨을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알 수 없지만 하느님은 인간의 죄악을 그토록 싫어하시어

              인간들로 하여금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당신의 가장 사랑하시는 아드님까지도 속죄의 제물로 내놓으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의 영광을 찬미하고 노래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십자가의 고통도 볼 줄 알아야 한다.

부활의 영광이 있기까지는 처절한 십자가의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