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공부를 하자
퇴직하면 무얼 할래. 물어보면 그 때 가 봐야 알지. 그렇게 막연한 대답을 한다. 대부분 오랜 시간동안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고독 속에서 말년을 보낸다.
이는 어느 누구 하나 수긍 안하고 인정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말이야 그렇지만 새털처럼 많은 날들을 무위도식하며 허송세월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피부로 느끼며 안다.
남자들은 나이 먹으면 여자에 비하여 무료한 시간이 많고 길다. 반면 여자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할 일이 많다. 여자들은 평소에 노는데도 익숙해 있고 친구 만나 혹은 이웃에서 수다 떨다 보면 전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독할 틈도 없다.
자식 집에 가더라도 여자들은 환영을 받지만 남자들은 한대(寒帶)다. 친구 만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학생들이 학교 가듯, 직장인들이 직장 가듯 그렇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노는데도 익숙지 않다.
그래서 일상의 무료함이나 고독을 달래기 위해 갖가지 취미를 찾기 시작한다. 어느 사람은 등산으로, 어느 사람은 낚시로, 어느 사람은 바둑에서, 어느 사람은 운동으로, 어느 사람은 독서로, 어느 사람은 술로 무료함을 달래고 신체를 달련시킨다.
취미가 일상이나 적성에 맞으면 다행이고 육체적 정신적 건강상으로 좋은 일이며 권장 할 일이다. 다만 과도한 술만은 안 된다. 허나,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취미도 되고 육체적 정신적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최근에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건강에 무척 신경을 쓴다. 건강에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도 있다. 그러나 건강하면 정신적 건강보다는 육체적 건강에만 신경을 쓴다.
육체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몇 배 중요한 정신적 건강이 있음을 간과하지 말자. 사람들은 건강에 좋은 약이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렇게 해야 되는 것으로 알고 마구 잡이로 먹는다.
때로는 그것이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은 상호 유기적 관계에 놓여 있다. 귀를 통하여 아름다운 새 소리, 바람소리, 아름다운 노래 소리, 그리운 님의 소리를 듣는다.
눈을 통하여 파란 창공, 아름다운 그대의 눈동자 아이들의 재롱을 본다. 코를 통하여 파릇파릇 올라오는 봄의 싱그러운 풀 내음을 맞고 마주 앉은 그녀의 커피 잔에서 스며 나오는 커피의 짙은 향에 심취되어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입을 통하여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지만 말로서 우리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그러니 말 할 때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향기가 나도록 항상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정신의 건강은 눈, 코, 입, 귀 육체의 일부를 통하여 정보를 전달받고 완성되며 말로서는 남에게 자기의 정신세계를 전달하는 통로로 삼고 있다.
세상에는 신경 쓰이는 일이 너무 많다. 그런 것 다 생각하면 어떻게 살랴. 이제 인생의 잡다한 일 다 접어놓고 인생을 다시 새롭게 설계하면 어떨까? 그 근간이 공부로부터 시작하면 안 될까? 공부는 정신 건강상 좋다.
정신건강만으로는 안 되는 일은 운동으로 육체적 건강도 다져 나가면 그것이 일석이조(一石二鳥)가 되는 것은 아니한가. 그러면 인생나기도 한결 수월해지고 노후 생활도 즐겁고 보람이 있으리라.
노후란 대부분 시간도 많고 누구로부터도 구애를 받지 않는다. 이 기회에 취미삼아 학생처럼 평생 교육인 공부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신문에서 감언이설 아니면 말고 라는 김정운의 칼럼을 읽었다.
"자아실현은 공부를 통해 구체화된다. 공부야 말로 가장 훌륭한 노후 대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를 겪고 있는 일본이나 다른 서구 국가들이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내린 고령화 사회대책은 공부다.
평생학습 개념도 고령화 사회라는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 역시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공부는 돈과 연관하여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80대에 임박하여 대학 나온 분 70대 중반에서 한글을 깨우친 분들을 볼 때마다 존경스럽다.
그들은 그것으로 무엇을 이루지는 못 하였더라도 그 것에 몰입하여 기쁨을 얻을 수만 있다면 인생을 잘 산 사람이며 노년을 멋지게 보내는 사람이다.
내가 아는 어느 노부인은 10분이면 갈 길을 배가 걸렸다고 합니다. 길가에 간판을 다 읽다보니 그렇게 걸린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얼마나 글을 알고 싶었으며 한글을 몰라 답답했겠습니까?
한글을 깨우친 기쁨은 본인이 아니고선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내 친구 남궁 탁은 퇴직 후 그림에 심취하더니 2013년 대한민국 국제 미술대전에서 통도사 극락암 만춘(通道寺 極樂庵 晩春)이란 작품으로 최우수상을 받더니 이어 연속적으로 2013년 한국 향토문화 미술대전 공모전에서 관악산 연주암 중추 (冠岳山 戀主庵 仲秋)라는 작품으로 최우수상과 동시에 추천작가로 등단하였다.
그 능력이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으나 대단한 일이다. 동창으로서 이 보다 더 한 기쁨이 어디 있으리. 나도 그분들을 본받아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 하리라는 믿음을 갖고 중국어를 배우러 학원에 갑니다.
배운지 2달 밖에 되지 않아 아무 것도 모릅니다. 물론 젊은이들을 딸아 갈수도 없습니다. 허나, 젊음과 어울리니 젊어진 것 같고 나도 학생이다. 라는 자부심 하나로 기분은 짱이다.
오늘도 학원가는 길 춥고 전철 안은 사람들로 붐빈다. 그래도 학원가는 길은 나에게 즐거운 소풍 길이다.
2015년 2월 24일
내생애 단 한번만이라도 / 조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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