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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막과 성전

윤 베드로 2014. 12. 26. 18:13

 

 

성막(Tabernacle)

 

 

 

 

 

 

하나님이 거하시는 이동식 성소로(25:8)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던 장소를

말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주시는 곳이어서 회막이라고도 하였고

(27:21; 33:7-10), 장막(25:9; 33:7; 대상 6:48), 증거막(38:21; 1:50; 10:11),

법막(대하 24:6), 여호와의 성막(16:9), 증거의 장막(7:44; 15:5), 성소(25:8),

여호와의 집(삼상 1:7), 세상에 속한 성소(9:1)라고도 불렸다.

 

성막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오헬’(’ohel)은 원래 동물의 가죽이나 짐승의 털로 된 유목민들의

이동식 거주지인 천막(텐트)을 말하는 단어(9:21)로 운반되는 성소를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26:36; 왕상 1:39). 거처, 거주지를 뜻하는 히브리어 미쉬칸’(mishkan)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막(25:9), 성막(26:1; 3:26), 회막(39:32; 3:7)으로도 번역되었다.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과 삶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면 성막은 율법에 따라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드린 처소였다. 성막은 땅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처소(25:8)로 모세가 40

금식 기도 후 하나님께 율법을 받고 하나님이 친히 지시하신 규격과 내용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24:18-25:9). 그런데 하나님이 명령하신 기준대로 성막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송아지 숭배 사건이 일어나(32:1-35) 모세에 의해 이스라엘 진 밖에 일시적으로

회막이 만들어졌으며(33:7) 이곳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났다(33:7-11; 34:34-35).

 

하나님의 지시대로 만들어진 성막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시고 그들 가운데

임재하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다(25:8). 그래서 성막은 항상 이스라엘의 진 중앙에

세워져야 했으며(2:2) 항상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해서 세워졌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드리는 장소였고(29:43)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써 죄의 용서를 받는 처소였다(1:1-17:16).

 

성막은 광야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이동되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실로(18:1)에 세워졌다. 사사 시대에도 계속해서 실로(18:31; 삼상 3:21) 성막이 제사

드리는 중심지였다가(78:60) 초기 왕정 시대에 블레셋의 위협을 받아 놉 땅으로 옮겨지게

되었다(삼상 21:1-6).

 

다윗에 의해 세워진 예루살렘 성막(삼하 6:17) 외에 기브온에도 성막이 있었다

(대상 16:39; 21:29).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예루살렘 성막에는 법궤가 있었고 기브온 성막에는

그 외 다른 성막의 기물들이 있었을 것으로 말하고 있다. 어쨌든 그 이후 솔로몬이 성전을

건립함으로써 성막은 성전으로 대치되었다(왕상 8:1-4).

 

 

 

 

 

 

 

성막 건립과 성막의 재료 성막 건립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준행하여 출애굽 211일에

완성되었다(40:17). 성막의 설계자는 하나님이셨지만 성령이 충만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이

풍성한 브살렐, 오홀리압과 지혜로운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35:30-36:3).

 

성막이 완성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게 임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40:34-35). 성막을 만들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막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바치게 하셨다(35:4-5). 이때 예물을 드린 사람의 수는

20세 이상의 남자만 해도 603550명이나 되었다(38:26).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친 성막 재료들(35:5-9) 중 금속 종류는 금, , 놋이었다.

금은 법궤를 싸고 금테를 만드는 데(25:11), 금고리(25:12)와 속죄소를 만드는 데

(25:17), 그룹을 만드는 데(26:18), 떡상(25:24)과 떡상의 채(25:28), 대접과 숟가락,

, 잔 등을 만드는 재료(25:29), 등대(25:31), 앙장의 갈고리(26:6, 32), 지성소의

기둥(26:32, 37), 제사장의 의복을 만드는 데(28:6, 8, 11, 14) 쓰였다. 은은 성막 널판

아래 40개의 받침을 만드는 곳에 쓰였고(26:19) 기둥의 갈고리, 가름대(27:10)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놋은 성막 갈고리(26:11), 문장 기둥의 받침(26:37), 번제단(27:2), 제단의 통과 부삽,

대야, 갈고리, 불그릇(27:3), 제단의 채(27:6), 성막 기둥의 받침(27:10), 성막의 모든

기구와 말뚝(27:19)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이들이 드린 금의 중량은 29달란트와

 730세겔로 약 1,200kg 정도였으며 은은 100달란트와 1,775세겔로 약 3,420kg,

놋은 70달란트와 2,400세겔로 약 2,407kg 이었다(38:24-29).

 

 

 

 

 

이스라엘 백성이 드린 실은 청색실, 자색실, 홍색실, 가는 베실, 염소털 등이었다.

여인들 중에는 손수 실을 낳아 예물로 드린 사람도 있었다(35:25). 이 실로는 성막의 앙장

열 폭 위에 그룹을 수놓는 재료(36:8), 성막의 출입문과 지성소의 출입문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27:13-16; 36:35, 37).

 

백성들은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도 드렸는데 이것들은 지성소의 덮개로

사용되었다. 드려진 조각목으로는 성막 기구들의 본체를 만드는 데 사용하였고

그 위에 금, , 놋을 입혔다.

 

백성들이 드린 품목으로는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 향할 향을 만드는 향품, 호마노며

에봇에 물릴 보석 등도 들어 있었다. 이러한 예물들은 모두 자원하는 마음으로 넘치도록

바쳐졌으며(36:3-7) 일상 생활에 쓰이던 것들이 드려져 성막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었다

(35:22).

 

 

 

성막 이동과 성막 운반법: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부터 솔로몬의 성전 시대까지

제사를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고 운반 가능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 위에 낮에는 구름이,

밤에는 불기둥이 머무는 것을 보며 하나님이 그들과 친히 함께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심을

알게 되었다(40:36-38). 그리고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의 진 가운데 세워졌으며(9:15-23),

백성들은 성막 위에 구름이 떠오르면 진행하고 구름이 머물면 진을 쳤다.

 

성막 이동 시 운반은 반드시 하나님이 지정하신 레위인이 해야만 했다.

레위 자손 중 게르손 자손은 성막의 모든 휘장, 장막, 줄 등을 수레 2, 4마리로 운반해야

했다(3:21-26). 고핫 자손은 성소 안의 모든 기구들을 어깨로 운반해야 했고(3:31)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기둥들과 받침들을 수레 4, 8마리로 운반해야 했다(4:31-33).

 

특히 고핫 자손이 메는 성물은 손으로 만져서는 안되었는데(4:15) 훗날 다윗 시대에

법궤를 옮기던 웃사는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대상 13:10).

 

 

 

 

 

 

성막의 구조와 기구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의 여정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친히 지시하셔서 만들게 되었는데(25:9) 출애굽기 25-31, 34-40장에 성막의

모형과 건립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나온다.

 

뜰을 포함하여 성막이 세워진 전체 대지의 크기는 길이 100규빗(45m), 50규빗(22.5m)

으로 약 300평 정도의 크기였다.

 

성막 뜰에는 뜰로 들어가기 위한 문이 있고 그 다음에 번제를 위한 번제단이 있으며 번제단과

성막 사이에는 제사장들이 성막에 들어가기 전 손발을 씻는 물두멍이 위치하였다.

 

물두멍 다음에 위치한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를 통틀어 말한다.

성막은 폭 10규빗, 길이 30규빗의 규모였는데 성소에는 왼편에 등대, 앞에 분향단, 오른편에

떡상을 놓았다. 지성소에는 법궤가 안치되었다. 제사장은 매일 아침 저녁 두 차례씩 성소에

들어가 향단에 향을 사르고 등불을 켜고 등대를 청소하는 일을 하였다(30:7-9). 지성소는

6평 정도 되는 넓이였으며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것도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였다(16:17, 30).

성막 기구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각 항목을 참고하라.

 

 

 

 

 

성막과 예수님: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지어진 성막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하였다(8:5). 성막의 이름을 회막이라고도 불렀던 것처럼 성막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주시던 곳이었으며 그들의 죄로 인해

드려지는 제사를 받으셨던 곳으로 궁극적으로는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9:23-26).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성막의 모든

기구들도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출처:두란노 비전성경사전

 

 

 

 

 

 

 

 

 

 

[참고] 성막의 기구들에 담긴 영적 의미

 

하나님을 만나러 들어가는 데 세워진 하나밖에 없는 출입문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양의

문이시고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10:7-9; 14:6).

 

성막을 둘러 친 울타리는 2.5m쯤 되는 높이로 밖에서는 볼 수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별과 보호를 상징한다(11:1-2).

 

번제단에서는 희생의 속죄 제물이 드려졌는데 번제단의 희생 제물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이었다(27:46). 그리고 제사장들의 손과 발을 깨끗이 씻기 위해

마련된 물두멍의 물은 인류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기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것이었다(19:34; 7:14).

 

성소 안에 있는 등대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예수님의 사역을 의미한다(8:12).

아침 저녁으로 등대에 감람유를 넣어야 빛을 발할 수 있었듯이 성도는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빛 된 삶을 살 수 있다. 또 제사장들이 늘 등대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점검했듯이(27:20-21)

성도는 늘 자신의 모습을 살펴야 함을 교훈받는다. 금으로 된 떡상에는 12개의 떡이 준비되어

있었다.

 

떡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6:47-51), 떡을 받치고 있는 떡상은 예수님이 그의 백성을

항상 돌보고 계심을 보여 주는 것이다(13:5 ). 제사장들은 안식일마다 차려져 있던 떡을

먹고 새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이를 통해 성장하며 하나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분향단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향기로운 향을 피웠는데(30:7-8) 이 향은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의 향품을 유향에 섞어서 만들었다(30:34-38). 향은 오직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만들어야 했다(30:37).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하는 것으로(141:2; 8:3)

매일 향을 피워 하나님께 올려 드리듯 성도들도 끊임없이 기도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지성소에 안치된 법궤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 항아리, 십계명을 넣었다. 이것들은

부활과 생명이 되신 예수님(11:25-26), 하늘의 참 양식이신 예수님(6:35),

말씀이신 예수님(1:14)을 상징한다. * 출처:두란노 비전성경사전

 

 

 

[참고] 지성물(The most holy thing)

 

지극히 거룩한 물건을 말한다. 지성물은 성막에서 사용되는 거룩한 기구들(30:29; 4:4)

이것에 접촉되는 것은 모두 거룩하게 되었다(30:29). 이 외에 하나님께 드린 제물이나

예물(18:9)을 지성물이라고 하며, 제사장은 제물로 드리고 남은 지성물을 먹을 수 있었다

(21:22). * 출처:두란노 비전성경사전 

 

 

 

 

 

 

성소(聖所, Holy place)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장소로 하나님을 예배하던 곳들을 말한다. ‘벧엘’(28:18-22)에서부터

시작하여 언약궤를 두었던 곳(8:30; 18;1; 20:27; 삼상 3:3;삼하 6:16),

성막’(26:1; 3:25; 22:19; 대상 16:39),

성전’(왕하 16:18; 대하 36:17; 3:8; 21:12; 11:27; 2:27, 37; 7:28; 3:1)

모두 가리키는 말이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몸과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14:58; 2:19, 21; 고전 3:16-17; 고후 6:16).

좁은 의미로는 성막과 성전에서 휘장으로 나누어진 두 곳 중 바깥쪽을 가리키는 말이다

(26:33; 28:29; 9:2). 이곳에는 등대, 분향단과 떡상이 있으며 제사장은 이곳에서 매일

분향했다(30:7, 8; 1:9, 21). 성전의 성소는 외소로도 불렸다(왕상 6:17).

* 출처:두란노 비전성경사전

 

 

 

 

 

 

지성소(The Most Holy Place)

 

지극히 거룩한 장소로 성막의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을 말한다.

성막의 입구에서 휘장을 지나면 성소이고 다시 휘장을 하나 더 지나면 지성소가 되도록

구별되어 있다(9:3).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면서 백향목 널판으로 마루에서 천장까지 가로막아서

가로, 세로, 높이 20규빗씩 되는 크기의 지성소를 만들고 백향목에 금을 입혔다(왕상 6:16-19).

그룹이 덮고 있는 언약궤가 놓여져 있던(왕상 8:6) 이곳에는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으며(26:34),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16:2)

속죄를 상징했다(9:1-10). 하지만 이러한 지성소와 성소의 구별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사라졌다(27:51). 휘장을 참고하라.

* 출처:두란노 비전성경사전

 

 

 

 

 

 

 

 

예루살렘 성전 - 솔로몬성전(제1성전)/스룹바벨의성전(제2성전)/헤롯성전

 

 

 

 

 
















 

예루살렘에는, 성서시대를 통하여, 세 성전이 있었다. 제1은 솔로몬의 성전(Solomon's Temple)으로서, 이른바 [제1성전] (First Temple)으로 말해진다. 제2는 스룹바벨의 성전(Zerubbable's Temple)으로서, 이른바 [제2성전](Second Temple)으로 말해진다. 제3은 헤롯의 성전(Herod's Temple)으로서, 이것은 헤롯이 제2성전을 증수(增修)한 성전이다. 이들은 모두 같은 장소에 세워졌다. 성전의 기본적인 개념은, [하나님의 주거(거처)]라는 것인데, 하나님은 장소적 제약을 넘은 영적 존재로 생각되기에 이르러, 성전은 하나님의 지상적 임재의 상징으로 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에 있어서, 모든 시대를 통하여 그 국민생활, 종교생활의 중심이었다. 그들은 멀리 세계의 각지에 이산(離散)되는 운명에 처하면서도, 계속 그 심령은 강하게 성전에 연결되어져 있었다.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은사면초가로 에워싸인 상태에 있어서도, 다니엘처럼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는 것이다. 성전은 [여호와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 겔 48:35)라는 하나님의 언약적 은총이 구현되는 장소이고, 하늘과 땅이 접하는 곳, 즉 야곱이 말하는 [하늘의 문]이었다(창 28:17). 이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밀족의 성쇠와 깊이 관련되어 있는데서, 그기록은 비교적 자세하다.


1. 솔로몬 성전(제1성전)(Solomon's Temple, First Temple). 성서에 의하면, 솔로몬의 성전은 먼저 다윗이건설을 하고자 했는데(삼하 7장,왕상5:3-5,8:17,대상 22:14), 하나님께서 허락치 않아, 솔로몬의 손에 의해 실현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치세의 제5년(기원전 959년)에 예루살렘의 모리아산(구릉) 위에서 성전 건축에 착공, 7년의 세월을 거쳐, 제11년에 준공을 보았다(왕상 6:37,38,952년 완성). 손로몬은 두로왕 히람에게서 베니게(페니키아)의 기술의 원조를 받고, 또한 계약에 의해 레바논산의 목재의 공급을 히람에게서 받았다. 이스라엘 사람은일반 노무자로서 징용되었는데, 기술 담당자는 베니게 사람이었다(대하 2:7-14). 건축재료의어떤 것이든, 특히 성스런 기물을 만들기 위해 쓴 금의 지금(地金)등은 다윗에 의해 준비되어 있었다. (대상 22장).전체의묘사에서보아, 성전은 장방형의 구조로서, 현관, 성소, 지성소의 3부로 이룩되고, 넓이 10.5m, 길이 31.5m, 높이 15.8m로, 그 앞에 낭실이 있었다(왕상 6:3,7:19,21). 지성소에는 [언약궤], [제단], [두 그룹]이 두어지고, 안뜰에는 놋바다, 물구멍, 대제단이 놓여있다. 성전의 정면, 현관의 좌우에는 야긴과 보아스로 불리우는 두 개 청동제의 놋기둘이 독립하여 서 있었다(왕상 7:15-22). 그것은 높이 각각 18규빗(약 8.2m),주위각각12규빗(약 5.5m),기둥머리를만들어 기둥꼭대기에 둔 것의 높이 5규빗(약 2.3m),기둥머리에는구상(球狀)의 부문을 만들어 바둑판 모양의 조각을 하고, 그 상부는 백합화 꽃을 피운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같은 모양의 기둥머리는 므깃도에서 출토되어 있다. 이 제1성전은 전587(6)년,예루살렘이함락됨과 함께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놋 바다,물두멍의 받침 및 성전내의 집기는, 모두 바벨론으로 가져간 바 되었다(왕하 25:13-17,렘52:13,17-23).

 

2. 스룹바벨의 성전(제2성전)(Zerubbabel's Temple, Second Temple) 바사왕 고레스는 바벨론을 점령한 때, 그는 유대인에게 예루살렘의 파괴된 성전 재축을 허락해 주었다(전 538).이때포로에서귀환하여 스룹바벨의 지휘하에 재건된 성전이 제2성전인데, 곤란한 상황중에서 신지자 학개, 스가랴의 격려에 의해 전 515년완성되었는데,그것은 제1성전에 비하면 규모도 적고, 볼품도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팔레스티나 및 디아스포라에 있어서의 전유대인의 종교적 중심이 되었다는 의미에 있어서 국민생활의 가장 중대한 위치를 차지한 것이고, 세계 각지에서 떼를 지어 순레하기에 이르렀다. 예배의 장소로서 차츰 발전된 회당도 성전의 우월적 위치를 저하시키는 일 없이, 성서 후의 문헌에도 제2성전은 더욱 증대하는 존경심으로서 인용되어 있다. 탈무드에 의하면 이 성전에는 솔로몬 성전에 있던 것이, 다성이나 결여되어 있었다고 한ㄷ. 그것은 언약궤, 성화(聖火), 셰키나(→), 성령, 우림과 둠밈(→)이다. 지성소 안은 비어 있었다. 이 제2성전에 있어서는 예배는 의식화되고, 이 제2성전에 있어서는 예배는 의식화되고, 회생 제사가 중시되기에 이르렀는데, 전 169년시리아(수리아)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에 의해 약탈되고, 그는 더구나 우상예배로 성전을 더럽혔다(I 마카 1:21 이하,4:38, II 마카 6:2 이하. 그러나 마카비가의 유다 마카바이오스에 의해 재흥되었다. (I 마카4:36 이하). 그는 또한 장래의 공격에 대비하여 외측의 방어공사를 했다(6:7). 후에 이 성전은 로마군에 3개월 동안 포위된 후, 대속죄일에 로마의 폼페이우스 ([라] Pompeius Magnus전 106-48. 로마의 장군)에 의해, 전 63/62년지성소까지유린되었다.

 

3. 헤롯성전(Herod's Temple)-제2성전은 전1세기까지는 볼품 없는, 전쟁으로 상한 성소로서 남아 있었다. 이것을 한시대의 가장 장려(壯麗)한 건축물의 하나로서 완성한 것은, 헤롯대왕 때였다. 수축계획은 제20년(헤롯의 치세의 제 17, 또는 18년)에 개시되었다. 수축의 대부분은 10년 이내에 완성했는데, 추가 공사는 그 후도 오래 계속되었다. 헤롯 성전은 원래의 소규모 성전위에 또 주위에 추가 증축한 것이었다. 그것은 높은 대지 위에 세워지고, 주위는 원주와 아름다운 문으로써 둘러싸이고, 그리고 빛나는 대리석의 아름다움은 멀리 수 km의 땅에서도 바라볼 수가 있었다. 헤롯은 성전의 본전의 크기는 그대로 하여, 솔로몬 성전의 복원으로서 세워진 포로귀환 후의 성전 그대로하고, 또 그 전반적인 것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성전 뜰의 남동의 사면(斜面)을 묻고(솔로몬 시대에도 이미 착수되어 있었는데), 튜로페온(Tyropoeon-valley of the cheesmaker)의 골짜기와 성전 구릉과의 사이를 메우고, 동과 서로 높은 돌담을 쌓아, 성전뜰의 넓이를 솔로몬시대의 2배로 확장했다. 이것은 지금의 하람에쉬 샤리프로서, 남북 500m, 동서 300m의 약간 남측의 좁은 불규칙한 장방형을 하고,면적 14ha, 이것은 예루살렘 구시가의 약 1/6의면적을차지하는것으로 되어, 시민생활 중에 성전이 차지한 비중의 무게를 알 수가 있다. 성전뜰 남동쪽의 거대한 돌담과(지금의 통곡의 벽)은 오늘도 볼 수가 있어서, 커다란 석재를 쓴 하부구조는 경탄할 만한 것이었다. 헤롯시대 후는, 성전의 거의 외국 지배하에 놓여졌다. 대체사장은 문관적(文官的)으로 취급되고, 중앙정권에 의해 좌우되었다. 그들은 로마와 동조하고, 타협 내지는 심히 세속화했다. 로마 총독의 통치하에 있어서 성전들은 종종 3대 순례제(巡禮祭)등을 기회로 터진 폭동 때문에 유혈의 무대로 되었다. 로마에 대한 반대 행동 중 하나는 로마황제 위해 날마다 드려지는 희생제물의 중지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 행동은 대반란의 전주곡이기도 했다. 로마군은 열심당(셀롯당)의 거점으로 되어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장기에 걸친 고전과 대 손해후, 마침내 성전을 점령하고, 기원 70년 성전을 불살라 버렸다. 일곱가지의 촛대, 기타의 성스런 기물들은 승리품으로 로마에 옮겨지고, 그것들은 디도(티투스 [라] Titus, Flavius Vespasianus 39-81,로마황제, 79-81 재위)의 개선문의 부조(浮彫)로 되어있다. 헤홋 성전의 멸망일은 기이하게도아빕월의 9일로서, 이것은 제1성전 멸망과 같은 날이고, 그때 이래, 이것을 슬퍼하는 금식의날로서 각지의 유대인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 성전이 다시 재흥한다는 종말적 신앙은 세세에 걸쳐 정통파 유대인의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것은 다윗가의 메시야의 내림의 신앙과  관계되어 있다. 예루살렘 성전 자취에는  하드리아누스([라] Hadrianus,Publius Aelius 76-138, 로마황제, 117-138 재위)에 의해 로마식의 신전이 건설되고, 아라비아 시대(기원 7세기)이래, 이슬람의 사원인 [암석의 돔]이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4. 에스겔이 묘사한 이상적 성전(Ezekiel's Temple). 겔 40-48장에는,선지자에스겔의 이상적인 성전의 청사진과 거기에 있어서의 제의가 그려져 있다. 이 해석은 옛부터 곤란함이 지적되어 오고, 오늘도 계속되고있다. 그러면 어떠한 이해가 타당할까. 어디에 있어서나 그러하듯이 겔 40-48장도성서전체,특히 기타의 묵시적 내용을 가진곳과의 관련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 요망된다. 겔 1:1-3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에스겔의 예언은 바벨론포로의 사람들 사이에서 말해진 것으로서, 이 40-48장의 부분도 에스겔서의 다른 부분과의 일관성 있는 일부로서, 희망과 힘을 주기 위한 유다적(제사장직)인 극히 구체성 있는 표현이다. 특히 그것은 당시의 포로된 사람들에게 [현실의 지금]이라는 의미에서도 희망이고, 위로이며, 힘이었다. 동시에 귀환에 대한 기대와 그것에 따르는 그것 이후의 걸음 또는 생활에 대한 신앙적 결단을 구하는 예언적 내용이기도 했음에 틀림없다. 오랫동안 성전을 볼 수 없었던 포로의 동료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평안과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전과, 그것에 따르는 제의적 행사를 구체적으로 표시하는 것은 극히 필요했을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에스겔은 본래, 이것이 포로 귀환 후에 예루살렘에서 실제로 세워지는 성전의 설계가 될 것으로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J. 오어<<구약성서의 문제>>, 1906, Young).

 

 

 

 

출처 : 개혁하는 교회
글쓴이 : 청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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