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왕 이야기
1. 다윗의 등장 ; 하느님께 선택된 다윗
유다 지파 출신인 다윗은 : 사울의 신하로 봉직하기 전 소년 시절에
사무엘 예언자로부터 미래의 임금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1사무 16,1-13).
그후 다윗은 : 항상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하느님께서 지켜 주시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다윗은 :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①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이겼고,
②사울의 부하 장군으로 참전한 모든 전쟁에서도 이겼으며,
③이스라엘의 임금과 해방자로서 참가한 싸움터에서도
승리하였다(1사무 16-18장).
④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주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다.
2. 통일 왕국의 임금
사울이 전사하여 통치자가 없어진 왕국의 상황은 심상치 않았다.
그 당시 다윗은 :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으나,
아직 백성들로부터 정식 임금으로 추대받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장군으로 민심을 얻은
다윗은 우선 유다 지파에서 임금으로 추대되어
헤브론에서 통치하였다(2사무 2,1-4).
한편 살해되어 죽었을 것이라고 여겼던
사울의 아들 중 이스 보셋이 용케 살아남았다.
그가 아브네르 장군에 이끌려 사울의 대를 이어
북부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었다.
이때부터 사울의 잔존 세력과 다윗의 세력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져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될 위기에 처했다.
아브네르는 다윗과 강화조약을 맺으려고 노력하던 중,
다윗의 장군인 요압에 의하여 암살당했다.
이 소식을 듣고 낙담한 이스 보셋도 자신과 같은
벤야민 지파 출신의 자객들에게 암살되었다.
암살자들이 다윗에게 상을 받으려고
이스 보셋의 머리를 들고 갔을 때
다윗은 정도를 걷는 지도자답게 그 암살자들을 처단했다.
이처럼 사울의 잔존 세력이 소멸되자,
유다 지파 외의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의 원로들이
다윗을 찾아가 다윗을 정식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전체 임금으로 추대하였다(2사무 5,1-3).
이로써 다윗이 헤브론에서 임금이 된지 7년이 지났을 때
다윗은 南유다와 北이스라엘을 통합하는 임금이 되었다.
3. 다윗의 왕국
다윗은 : 왕국을 외견상으로는 주변 왕국을 본떠 조직했으나,
본질적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통치하였다.
다윗은 모세와 같이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어,
하느님께서 성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물려받았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도록 해 준다는 약속이었다.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쟁은 : 사울시대에 시작되어
다윗의 치세 때에도 계속되었으나,
다윗은 : 필리스티아인들을 성공적으로 물리쳤고,
한편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였다.
그때부터 ‘다윗의 도시’라고 불리게 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모든 지파들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나아가 주변의 여러 도시국가들을 속국으로 편입하여
왕국의 영토를 넓혀갔다.
4. 다윗의 종교생활
①다윗은 평생토록 θ만을 의지하면서 자기 소명에 성실하게 응답했다.
그의 종교생활의 특징은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를 박해하는 사울의 생명을 뺏을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도 사울을 살려 주었다(1사무 24장 ; 26장).
②다윗은 θ께서 주시는 특전에 대해서 지극히 고마워하는
겸손한 종이었다(2사무 7,18-19).
③또한 다윗은 어떠한 불행을 당하더라도
주님께서 축복으로 지켜 주실 것으로 생각했다(2사무 16,10-12).
따라서 다윗은 ‘가난한 이들’의 모범이 되었다.
가난한 이들은 다윗을 본받아 하느님께 의탁하고 확고한 희망을 가졌다.
④이러한 깊은 신앙심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종교의 원시적 성격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결점도 있었다.
집에다 테라핌(다윗의 아내 미칼이 섬기는 수호신)을 두기도 하였고(1사무 19,13),
점치는 도구로 사용되는 에풋을 쓰기도 하였다(1사무 23,9 ; 30,7).
⑤또한 다윗은 성전을 설계하고(1역대 22장),
예배의식을 정했으며(1역대 23-25장),
성가대를 조직하고(느헤 12,24. 36),
악기들도 만들었다(아모 6,5).
5. 다윗의 인간성 ; 단점과 장점
다윗은 :
①위대한 종교인이자 임금이었지만 인간적 약점도 있었다.
②용감하고도 지혜로운 무사였지만, 자식들에게는 너그러웠고,
그들의 비행을 교정하지 못했다.
③윤리의식은 투철하지 못하여 큰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다.
필리스티아 아키스 임금에게 가서 1년이 넘도록 망명생활을하면서
다윗은 약탈자들을 조직하고, 두목 노릇을 하였다(1사무 27,8-12).
④다윗은 노년에 자기에게 해를 끼친 모든 사람들을
몸소 엄벌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죽은 다음에 처벌하라고
솔로몬에게 유언까지 하였다(1열왕 2,5-9).
⑤그러나 사울에게 보인 항구한 존경심과
사울의 아들 요나탄에 대한 변함없는 우정은
다윗의 고결한 인품을 잘 드러낸다.
⑥또 다윗은 사울의 궁전 안에서 인심을 얻은 영리한 장군이었다.
⑦부하들의 생명을 아끼고 포용하는 마음은
그의 위대한 인품을 보여준다.
⑧망명생활을 하면서도 유다 장로들에게 선물을 보내어
호감을 사는 등 유능한 정치가였다(1사무 30,26-31).
⑨헤브론의 임금이 된 다음에는 요압이 아브네르를 암살한
비열한 행위를 비난했고(2사무 3,28-37),
이스 보셋을 죽이고 포상을 바라는 살해자를 처형하는
의리의 영웅이었다(2사무 4,9-12).
6. 다윗의 죄와 벌
다윗은 : 왕권이 안정되자, 막강한 권력을 남용하여
충신 우리야의 아내와 간음하고,
이를 감추려고 그 충신마저 죽이는 중죄를 범했다.
그때 나탄 예언자가 : ‘부자와 빈자의 비유’를 들어
다윗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 자신을 냉엄하게 판결하도록 경고하였다.
다윗은 : 나탄의 엄숙한 견책을 겸손되이 받아들이고
자기 잘못을 뉘우쳐서 죽음을 면하였다(2사무 11-12장).
다윗은 우리야 사건말고는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만 하였고,
살아있는 동안 내내 주님의 명령을 조금도 어기지 않았다 (열왕 15,5).
다윗의 살인죄와 간음죄에 대하여 유보되었던 처벌이
그의 늘그막에 집행되었다.
즉 다윗의 일곱 명의 왕비들과 열 명의 후궁들에게서
출생한 왕자들이 왕위를 두고 치열하게 싸웠다
(1열왕 1,11-53).
<정진석/ 하느님의 길, 인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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