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데 대왕
헤로데 대왕은 : 기원전 37년-4년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린 왕으로,
①건강과 지략을 바탕으로 정적을 제거하는데 빈틈없고 잔인하였으며,
②자기가 지배하는 자들 앞에서는 권위와 오만을 마음껏 드러낸 반면,
로마의 권력자들 앞에서는 맹종과 충성을 약속하였다.
③의심 많고 잔인한 그는 三王의 방문과 베들레헴의 영아 살해를 전하는
마태오 복음서의 기록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④헤로데는 이두메아인이었기에 유다인들에게 이방인으로 비쳐졌다.
그래서 그는 유다인적인 것이면 무엇이나 관심을 보이는 척했으나
실제로는 철저한 헬라주의자요 이교도였다.
⇒그의 생활 양식과 활동, 예루살렘 성전을 비롯한
건축사업이 이를 잘 반영한다.
⑤헤로데는 : 전체적으로 능력 있는 통치자였으며
놀랄만한 업적도 많이 남겼다.
로마와의 친분과 협력 관계에서 드러난
탁월한 정치적 수완은 온 이스라엘 땅에
안정과 번영을 가져다 주었다.
⇒그의 건축사업은 오늘날까지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는 자신을 지지해준 사마리아인들에게 보답하고
아우구스투스에게 충성을 표시하는 뜻으로
황폐한 사마리아를 세바스테(아우구스투스황제의 다른 이름)로 바꾸어 재건하였고,
㉯아름다운 부두를 갖춘 항구도시 가이사리아를 건설하여
로마 황제에게 바쳤다.
㉰그 밖의 많은 도시에 이교 신전과 헬라식 체육시설들을 세우고
다른 헬라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건축물들로
예루살렘을 다시 건설하였다.
㉱특히 예루살렘 성전은 헤로데의 걸작 가운데 하나이다.
㉲이 밖에 헤로데 궁전, 예리고의 별궁, 헤로디온, 마사다,
마캐루스 등 여러 요새들을 건설하였다.
⑥헤로데는 정적(政敵)이 많았다.
유다인 신하들이 그를 완전한 유다 임금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며, 로마의 불안정한 정치판도는 언제나 그를 긴장시켰다.
또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는
헤로데가 다스리는 이스라엘을 항상 노리고 있었다.
⑦헤로데는 의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자기 자리를 탐낸다는 이유로 수많은 귀족과 관리들을 처형하였다.
⑧헤로데의 사생활과 가족 생활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극적이었다.
그는 자신을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고 의심하여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을 유배하고 감옥에 가두거나
처형하기까지 하였다.
⑨헤로데는 기원전 4년 애지중지하던 예리고 궁전에서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