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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니엘

브니엘 ;  하느님과 씨름한 곳  야곱은 가족들과 함께 형 에사우를 만나기 위해 야뽁 나루를 건넜다.개울을 건넌 다음 자기가 가진 모든 것도 건너보냈다.그리고 야곱은 혼자 뒤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나타나 동이 트기까지 그와 씨름을 했다.그분은 야곱을 이겨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결국,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엉덩이뼈를 다치게 됐다.그분은 동이 밝아오니 이제 그만 놓으라고 했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복을 빌어주지 않으면 놓아드릴 수 없다고 떼를 썼다.그분이 야곱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너는 하느님과 겨루어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이제는 이스라엘이라 하여라."그리고 야곱에..

칼데아의 우르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은 노아의 10대손으로 표기돼 있다.그리고 노아의 맏아들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의 고향을 '칼데아의 우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창세 11,28).그러다가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테라는 아들 아브람과, 아들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라이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칼데아의 우르를 떠났다."(창세기 11,31). '칼데아의 우르'라는 지역이 어디에 있는 곳인지,                 어떤 지역이었는지는 성경에 전혀 언급이 없다. 창세기는 아브라함 가족이 칼데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길을 떠나다가              ..

하란 :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땅

하란은 아브라함의 부친 테라가 가족과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머물렀던 곳.아브라함의 아버지 테라는 하란에서 죽었고 그곳에 묻혔다(창세 11,32). 이후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창세 12,1-2). 하란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심을 받은 중요한 땅이다(창세 11,31-32). 하란은 어떤 곳이었을까? 하란은 우리말로 '길목'이란 뜻이다. 교통의 요지란 의미다. 지금은 터키 동남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산르 우파르에서            남쪽으로 약 40㎞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

아브라함 이야기

아브라함 이야기(창세 12,1-25,18)1. ‘아브라함’은 :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는 뜻. 아브라함은 : 야훼 하느님에게서 삶의 기본 조건인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모두 버리고 야훼가 장차 보여 줄 땅,             즉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날 것을 요구받고,             한마디의 항변이나 질의도 없이 즉시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 ⇒이렇게 θ께로부터 소명 받은 자의 삶이라고 해서                늘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2. 아브라함은 : 길을 떠나지만 곧 곤경에 처한다. ①자기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였다가             자기아내를 다른 남자의 품에 두어야 하는 비극을 경험(12-20장). ⇒이는 하느..

홍수 심판과 바벨탑 사건

홍수 심판과 바벨탑 사건(창세 6,5-11,9)1. ‘홍수’에 관한 전승은 : 고대 중동 세계에서는 널리 잘 알려진 민담 설화였다.      특히 고대 바빌론의 홍수 설화(길가메시 서사시)는               성서의 홍수 이야기와 자료상의 유사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성서의 홍수 이야기는 : 바빌론의 홍수 설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특이한 이스라엘적 신학이 나타난다. ①이 이야기는 : 노아 시대의 죄악에 대한 神의 심판과 조건 없는         神의 은총을 연결시킴으로써 인류 구원사를 새롭게 출발시키고 있다. ②하느님은 : 홍수 심판이 끝나자마자 스스로 후회하시며                       “다시는” 사람의 죄 때문에                   ..

창세기 1-11장에 나오는 족보

창세기 1-11장에 나오는 족보 장 절족보관련 절(개)비율 비 고 1 31 - - 2 25 - - 3 24 - - 4 26 10 38아담의 후손들(카인, 아벨, 셋) 5 32 32 100아담의 후손은             셋부터 노아의 아들까지 6 22 1 5 7 24 - - 8 22 - - 9 29 2 7 10 32 32 100노아의 후손을 통한 민족의 형성 11 32 22 69노아의 3아들 중 셈부터 아브람까지 계 299 99절 33%*299절 가운데 99절(1/3)이 인간의 족보             또는 족보와 직접 관련 있는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렇게 역사를 기록하는 데 족보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①고대인들은 자신이 누구에게로부터 왔으며      누구의 자손이었다는 것..

포도나무는 어떤 의미일까?

성경에서 많이 등장하는 포도밭과 포도나무는 '선택된 백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포도나무는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하느님이 내리는             '행복과 풍요'를 상징하고 '하느님께 선택받은 민족'을 가리키기도 했다. 구약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 가나안을 포도에 비유하기도 했다. 구약에서 포도밭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비유로도 많이 사용됐다. 그래서 포도나무는 모세가 이집트에서 끌고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비유한다.이집트를 탈출해서 유목민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이상적 정착생활을                '모든 사람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이처럼 약속의 땅을 대표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인 포도는              이스라엘 백성의 경제에 중요한 요소..

율법학자들을 예수님은 왜 질책했을까?

율법은 '지침, 규정, 법령, 명령, 계명'의 의미를 지닌다. 율법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토라'는 본래 가르침이란 뜻이다. 율법이란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하느님 백성의 생활과 행위에 관한                하느님 명령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 모든 이가 하느님 뜻을 따르게 하고자       하느님께서 내리신 도덕적ㆍ종교적ㆍ법률적 명령을 말한다. 율법학자란 대개 모세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데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이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하며 율법학자들을 공격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온다율법학자들은 법조문에 너무 얽매여 예수님과 항상 적대관계를 이뤄왔다(마태 15,1-20). 율법학자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율법학자는 원래 율법을 ..

여성들은 성경에서 어떤 존재일까?

구약시대에 여자는 남자의 재산목록 중 하나였고                    집안의 한 재산으로 매매가 가능한 존재로 생각됐다. 그래서 여인은 외부 세계와 완전히 격리됐으며             철저히 아버지나 남편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구약시대 여성들은 종교적인 면에서도 불리했다.엄격한 토라, 율법, 랍비 문헌에서 여성을 금하는 성전 의식을 실행했다. 이스라엘의 연중행사인 유월절, 초막절, 오순절에도                     여성들은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다. 여성들은 율법을 배울 수 없었고 율법교사가 될 수도 없었다. 또한, 구약성경에서 집과 밭, 소와 나귀와 마찬가지로          부인도 남편의 소유물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스라엘 여성의 위치가 노예와 법률적으로 차이가 나는..

이웃은 누구인가? (성경)

성경에서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사랑의 응답으로써          자신의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친다."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19,19). 여기서 언급하는 이웃이란 어떤 범위까지의 사람을 의미하는가?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동족만 이웃이라고 생각했다.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레위 19,18).이처럼 구약에서 '이웃'은 철저하게 같은 이스라엘 민족을 가르치는 단어였다. 당연히 이교도나 이방인은 이웃의 범주에 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같은 이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