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공부/바울로서간 공부

바오로 사도의 중요성

윤 베드로 2014. 7. 12. 16:59

바오로 사도의 중요성

 

 

성화에 나오는 바오로의 모습은 :

①긴 수염, 마른 뺨의 평범한 얼굴, 보통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손에는 성경과 칼을 들고 있다.

②허공을 향해 무언가를 응시하는 두 눈에서

              비범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성화에 나오는 바오로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바오로 사도의 중요성은 :

그리스도 교회 역사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②또한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신앙의 모범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③그리스도교를 특정 민족과 지역에 머물지 않는,

          인류 전체의 세계적인 종교로 만든 주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 초대 교회 때 유다교의 그늘을 벗어나는 일이

                           무척 어렵고 혼란스러웠다.

           초창기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의 회당에서 모임을 가졌다.

           심지어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할례와 율법 준수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유다교를 거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충돌하기까지 했다.

               교회가 분열될 위기였던 것이다.

이런 어려운 사태를 수습하고,

      그리스도 복음의 주체성을 분명하게

      확립한 인물이 바로 바오로이다.

 

④바오로 사도야말로 그리스도교의 창시자라는

              과장된 표현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분명한 것은 바오로 사도가 예수님 다음으로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⑤바오로 사도는 베드로와 두 기둥을 이루는

           초대 그리스도교 최고의 지도자였다.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13권을

         바오로가 직접 쓰거나 그의 제자들이 기록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적인 신학, 그리스도론,

   교회론 등이 그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고 열렬한 그리스도의 추종자,

   이방인의 사도로 변모했으며

    끝내 순교로 삶을 마감한 그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다고 하겠다.

 

 

⑥바오로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 철저한 종교 교육을 받았다

                  (필리 3,5; 갈라 1,14).

열심한 유다인 부모들은 : 자녀들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끊임없이 가르친다.

          물론 가르침의 골자는 성경과 율법이다.

          유다인의 삶의 중심은 철저한 율법 준수였다.

이스라엘 민족이 비참한 역사 속에서도

       줄기차게 정체성을 간직하며 살아오게 한 힘은

      야훼 하느님을 믿는 신앙의 힘이었다.

이스라엘인들은 그 중에서도 모세를 통해 주신

       하느님의 율법을 복종하고 지키는 것이

       구원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고 생활했다.

 

⑦바오로는 율법과 종교적 전통을 지키는데 열심이었던

                 율법학자였고 바리사이파였다(필리 3,5 ; 사도 23,6).

            한 마디로 그는 출세가 보장된 전도양양한

            유다인 사회의 엘리트 청년이었다.

⇒바오로 사도는 : 실제로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갈라 1,13)라고 고백했다.

          원로들과 율법학자들은 백성들 가운데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키는 스테파노를 체포해

          최고의회에 넘기고,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돌팔매질해 죽였다.

          사울은 현장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봤다.

          그는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울은 보통의 유다인들처럼 스테파노가 그리스도에 관해

           증언하고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키는 것에

           크게 반발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사도 8,3).

           그는 유다교의 호위병처럼 활동했다.

그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이유는 율법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유다인들의 눈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율법과 유다 전통을 뒤흔드는 위험한 사람들이었다.

열성적인 바리사이파 유다인이었던 사울은

       이 같은 예수님의 추종자들을 보고 격분했을 것이다.

       바오로의 유명한 회심 사건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으러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에 일어난다.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며 정점이 되었다.

 

⑧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 사건으로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처형된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를 분노케 했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소문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회심했다.

그리고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서 유다인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이방인들을 찾아다니며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했다.

세 차례에 걸쳐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열렬하게 복음을 선포했다.

그리스도교를 철저히 박해하던 그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한다고 하니 당연히

       유다인들의 의심과 비난, 미움을 받았다.

또한 교회 내적으로도 끊임없이 “당신에게 사도의 자격이 있는가”라는

       곤혹스런 질문을 받아야 했다.

유다인들에게 붙잡혀 돌팔매질을 당하고, 감옥살이도 했다.

교회 안팎으로 공격과 비난을 받았지만

       복음에 대한 그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⑨바오로는 20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교회 역사상 인류 복음화의 최고 사도이다.

           그가 선포한 복음의 메시지와 감동적인 삶은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허영엽 마티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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