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3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2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3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여인들’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라삐를 따라다닐 수 있는, 그래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될 수 있는 자리에
‘여인들’의 몫은 없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남녀 차별은 사회 문제였고, 오늘날 성차별에 대한 의식의 정도는
그 사회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은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자주 표현합니다.
그러한 관심은 실은 기존 사회의 질서를 깨뜨리는 것이었고 그 결과는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한국 교회의 순교자들도 루카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 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순교자들을 존경하며 따르고자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약자들이 많고, 자신이 왜 약자인지조차 모르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왜 점점 더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지, 또 갈수록 양질의 일자리보다 비정규직이 많아지고 있는지 …….
제 자식이 비정규직이면 정규직이 되는 것에 그리 애가 타고 부유한 이들의 부정과 편법 상속에 분노하면서도,
대개는 이러한 사회 현상의 근본 원인과 개선을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버리는 문화’로 표현되는 사회 경제 논리만으로는 세상을 치유할 수 없기에,
“성경의 가르침대로, 모든 사람은 회개와 참회를 통하여
더 정의롭고 연대하는 세상의 증인이자 예언자가” 되어야 하며,
“복음은 이상향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희망”이라고 말씀하십니다(『돈과 권력』 추천사 참조).
복음을 읽고 묵상하면서 우리는 사회의식을 제거하는 경우가 많지요.
세상일과 신앙의 가치를 분리한 채, 마치 복음 읽기와 묵상을
먼 나라 이웃 나라 기행문쯤으로 여기는 태도는 신앙인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루카 복음에서 여인과 함께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사회의 문제아셨습니다.
차별받고 학대받는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하며 욕먹을 각오로 세상을 살아 내는 것, 그것이 복음 묵상의 열매입니다.
제발 부탁하건대, 누군가 피 흘려 이룬 신앙을 제 한 몸 평온하려는 도구로 타락시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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