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라는 물음에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라고 답하십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받는 사람이 둘 다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니 주는 사람이 없으면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예 있을 수 없고, 받지 않으면 주는 사람이 아무리 주려해도 받는 사람이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오늘 구원받을 사람이 적으냐는 질문과 천국의 문이 좁고 들어갈 사람이 많지 않다는 주님의 답은 어떤 겁니까? 하느님께서 소수의 사람에게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느님께서는 모두에게 구원을 주시고자 하지만 그 구원을 받으려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많지 않은 것입니까? 이 질문의 답에는 정교한 설명이 필요하겠습니다. 우선 하느님께서는 모두를 구원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아무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다고 하십니다. 무슨 얘깁니까? 하느님께서는 모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오기를 바라지시만 하느님 나라는 사랑의 나라이기에
사랑을 실천치 않는 자가 들어갈 수 없고, 불의를 저지르는 자는 더더욱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구원받을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천당에 가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참 사랑을 하려는 사람 많지 않고, 그래서 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참 사랑과 그렇지 않은 사랑을 구별하고 싶지 않지만 제가 여기서 참 사랑이라는 말을 굳이 썼는데 그렇다면 참 사랑은 어떤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뭣입니까?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기에 참 사랑이란 당연히 하느님 나라의 사랑입니다. 제 생각에 우리 중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많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저차원의 사랑을 하는 사람과 고차원의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으며, 땅의 사랑을 하는 사람과 하늘의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땅에서 하늘의 사랑을 하라고 하시니 문이 좁을 수밖에 없고, 땅에서 하늘의 사랑을 하려하니 문턱을 넘을 사람이 많을 수가 없겠습니다. 그러니 아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포기해야 할까요?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이고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아예 포기할 것인가, 그래도 도전할 것인가? 다행이 주님께서는 지금 당장
하늘 사랑의 수준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올라와도 된다고 하시고 오르려는 열망을 가지고 애를 쓰는 사람은 부모가 자녀에게 격려하고 힘을 주시듯 격려와 힘을 주십니다. 사랑하려는 사람에게는 사랑의 성령을 보내 주시어 내 사랑으로 사랑치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