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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의세계] 100. 묵시록 일곱 교회-1 - 신은근 신부

윤 베드로 2018. 10. 22. 07:44

요한 묵시록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쓰였다. 황제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티투스 장군의 동생이다.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기원후 81년 서른 살의 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10년 후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자신을 주인이며 신(Dominus et Deus)으로 부르게 했다. 숭배를 강요한 것이다.




 

유다인과 그리스도교인이 반발하자 박해를 가했다. 네로에 이은 두 번째 박해였다.


그때까지 생존해 있던 사도 요한은 파트모스 섬으로 귀양 가야했다(묵시 1,9).


이런 상황에서 묵시록 저자는 소아시아(터키)에 있던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낸다.


신앙을 굳게 하라는 당부였다. 일곱은 소아시아 교회만 가리키는 건 아니다. 세상 교회 전체를 가리킨다.


7은 전부를 뜻하는 숫자(묵시 4,5)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일곱 교회가 있던 도시는 다음과 같다. 에페소, 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티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이아.


에페소는 바오로 시대만 해도 번창한 항구였다.


7세기 아랍인들이 차지하자 항구는 폐쇄되고 유입되는 토사로 내륙이 되었다.


그러면서 계속되는 지진으로 땅속에 묻혔다가 근대의 발굴로 빛을 본 도시다.


아무튼 박해를 견디어낸 에페소 교회는 소아시아 기독교의 중심이 된다.


431년 공의회가 열렸을 땐 200명 넘는 주교들이 모였다.


그만큼 번창한 교회였다. 에페소 공의회는 역사상 세 번째다.


첫 공의회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로 아리우스파를 단죄했다. 두 번째는 381년 열린 1차 콘스탄 티노플 공의회다.

 

성령의 신성을 공인한 공의회였다. 스미르나는 오늘날의 터키 이즈미르Izmir항구다.


고대에는 그리스  식민도시였고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현재 터키에서 세 번째 큰 도시로 옛날부터 유다인이 많았다.

묵시록은 스미르나 교회가 유다인에게 박해받을 것을 예언했다(묵시 2,9).


로마박해 이전부터 그들의 박해를 받았던 것이다. 묵시록 일곱 교회 중 유일하게 교회 건물이 남아있다.


황제숭배를 거부했던 폴리카르포 주교를 기념해 17세기에 세운 성당이다.

 

현재 이즈미르교구의 주교좌성당이기도 하다. 그 는 요한의 제자로 사도들과 연관을 가졌던 마지막 인물이다.


중세 십자군 전쟁이 끝난 뒤 요한 기사단은 로도스 섬과 스미르나에 남는다.


이후 이들은 로도스 기사단이라 불린다. 스미르나를 지배한 마지막 기독교 세력이다.


1402년 티무르 제국은 스미르나를 빼앗고 기사단을 로도스 섬에 몰아넣었다.


1522년 오스만제국이 로도스 섬을 함락시키자 기사단은 몰타로 이주했다. 이때부터 몰타 기사단이라 불리었다.


신은근 신부(마산교구)


출처 : 평화와 착함
글쓴이 : dari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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