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암의 세 번째 신탁(24,1-14)
24,1-9 :
발라암은 자신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하느님께서 선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그가 하느님의 참 예언자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자였다.
그래서 그는 발락의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하여
모압으로 갔지만 하느님께서 자기 입술에 넣어 주신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을 축복한 것이다.
비록 탐욕에 이끌리는 자일지라도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말씀 외에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분명하게 안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더 이상 사술을 쓰지 않았다.
여기 전과 같이 邪術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사술을 쓸지라도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변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의미다.
실제로 발라암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기 전까지 자신의 방법으로
하느님의 뜻을 돌이키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알았지만
발락의 부름을 받아 모압으로 향했던 것이고,
또한 그 곳에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지만,
하느님께서 자신의 입술에 저주 대신 축복의 말을
넣어 주시는 것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주술적인 방법에 따라 번제의 장소를 달리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돌이켜 보려고 했던 것이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주술적 방법에 따라 하느님의 뜻을 돌이켜 보려고
거듭 시도해 보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하여 그는 사술을 더 사용할지라도
그것은 무의미한 일일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전과 같이 사술을 쓰지 않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로 정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바라본 것이다.
그가 낯을 광야로 향하여 눈을 들어 이스라엘이 그 지파대로 사는 것을
보았을 때, 하느님의 신이 발라암 위에 임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어 이스라엘을 축복한 것이다.
발라암은 세 번째 노래에서 이스라엘의 아름다움과 강함과
복의 원천이 됨을 노래하였다.
발라암은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야곱아, 너의 천막들이, 이스라엘아, 너의 거처가 어찌 그리 좋으냐!
골짜기처럼 뻗어 있고 강가의 동산 같구나.
주님께서 심으신 침향나무 같고 물가의 향백나무 같구나.24:5,6)”
여기 “천막” 또는 “거처”란 하느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를 의미한다.
이것은 발라암이 지금 광야를 보며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로 작정하신
이스라엘 전체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발라암은 또한 이스라엘의 진흥을 노래하였다.
“그의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고 그의 씨는 물을 흠뻑 먹으리라.
그들의 임금은 아각보다 뛰어나고 그들의 왕국은 위세를 떨치리라.24:7)”
발라암은 이스라엘을 “통에 물이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했고
또한 물가에 있는 종자에 비유했다.
가나안과 같은 기후와 환경 조건에서 물만 충분하다면
씨들은 아무 장애도 받지 않고 자라서 결실할 수 있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축복해 주시기 위한 표현으로서
그들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 즉 때에 합당하게 비를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신명11:14).
이런 표현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추복해 주심으로
그들의 풍성함을 보장해 주신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발라암이 이스라엘을 이처럼 많은 물과 종자로 묘사한 것은
그들의 번영을 예언한 것이다.
발라암은 이스라엘의 강함을 노래했다.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하느님은 그들에게
들소의 뿔 같은 분이시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맞서는 민족들을
집어삼키고 그 뼈를 짓부수며 화살로 쳐부수리라.
웅크리고 엎드린 모습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들을 일으켜 세우랴? 너희에게 축복하는 이는 복을 받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24:8-9)”
발라암은 이스라엘의 강함을 “들소” “숫사자와 암사자”로 묘사했다.
그래서 그들은 적국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꿰뚫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어떤 나라도 이스라엘을 대적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축복해 주신 이스라엘은 복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발라암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너희에게 축복하는 이는 복을 받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한 것이다.
실제로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신 자들을 축복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합한 것이므로 그는 복을 받게 되고,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신 자를 저주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거슬리는 것임으로 저주를 받게 된다.
24,10-14 :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초청해 온 발라암이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에 크게 노했다.
그는 발라암이 이스라엘을 축복할 때 그것을 참고
세 번씩이나 기회를 주는 배려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대신 축복하였을 때
더 이상 참지 못했던 것이다(24:10,11).
발락에게 발라암은 더 이상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기의 원수를 축복하는 자가 되었으므로 이제 원수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발락은 발라암에게 약속한 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줄 수 없었고,
그를 필요로 했던 것만큼이나 지금은 그를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발락은 발라암에게 “그대의 곳으로 달려가라”고 한 것이다.
발라암은 자신에게 속히 돌아가라고 말한 발락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임금님께서 저에게 보내신 사자들에게도 제가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발락이 비록 그의 집에 가득 찰 만한 은과 금을 준다 하여도,
나는 주님의 분부를 어기고서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말해야 합니다.’”(24:12,13).
발락은 이미 예고 된 것을 거두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어리석게도 미리 헛된 일을 하지 않도록
경고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므로 발락이 지금 당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지
발라암으로 인한 것은 아니다.
발라암의 네 번째 신탁(24,15-25)
발라암은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장차 이스라엘과 여러 나라들
가운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먼저 발라암은 이 예언을 하는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였다.
자신은 브올의 아들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귀를 기울이는 자임을 말하였고
이로 인하여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밝힌 것은 자신을 통하여 예언된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밝히기 위함이다.
그는 한 별이 야곱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 별을 통해 나타나는 징조는 “이 때의 일이 아니며…
가까운 일이 아니었다(24:17)”
이 말은 이 별의 징조가 지금의 일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며
또한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일을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이 별은 이스라엘의 후일에 될 일을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근동에서 별은 한 왕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본문에서 별과 홀은 동격으로 표현 되었다.
또한 우리는 동방에서 별이 왕을 상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보고 세상에 큰 왕이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를 경배하기 위하여 별의 인도함을 받아
유대 베들레헴까지 왔던 것이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24,17)”
이 예언은 장차 이스라엘에게서 나올 왕이 모압과
소동하는 자식들을 멸할 것이라고 했다.
여기 야곱의 왕이 장차 치게 될 ‘모압’과 ‘소동하는 자식들’은
모압이 하느님께서 축복하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한 것처럼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들을 말할 것이다.
이처럼 에돔과 세일도 이스라엘에게 패하여
그들의 속국이 될 것이고(24:18),
열국 중의 으뜸인 아말렉도 견고한 요새로 인하여
마치 그들의 거처가 바위에 있는 보금자리처럼
안전한 카인족도 황폐하게 될 것이며
앗시리아에 포로가 될 것이다(24:19).
그러나 앗시리아도 결국은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발라암은 장차 하느님께서 행하실 이처럼 두려운 일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 때에 살 자가 누구냐’
이 물음은 하느님께서 이처럼 열방을 치실 때 그들 가운데 어떤 나라도
그분의 손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하느님은 만물에 대하여 절대 주권을 가지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 분께서 여시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시면 열 자가 없는 것이다(묵시3:7).
“발라암은 일어나 제 고향으로 돌아가고, 발락도 제 갈 길을 갔다(24:25)”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기 위하여 함께 했던 이들은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이 각자 제 길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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