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에스텔기 공부

에스텔기 9장공부 : 유다인들이 승리하고 복수하다

윤 베드로 2017. 11. 24. 07:33


유다인들이 승리하고 복수하다(9,1-19) 


9,1-10 :

“아달 월 곧 십이월 십삼일”은 하만이 모르드개와 페르시아 제국 내의

모든 유다인을 죽이기로 제비뽑아 결정한 날이었다(3:7).

이 날 유다인의 대적들이 유다 사람들을 죽이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유다인들이 그들을 죽이는 날이 되었다.

유다인들은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자신들을 죽이려한 대적들 모두를

죽이려 하였지만 어떤 민족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그것은 유다인이었던 모르드개가 페르시아 제국내에서

존귀한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각 주의 대신들은 모르드개를 두려워하여 오히려 유다인들을 도왔다.

이처럼 모르드개가 존귀한 자가 된 것도 하느님께서 유다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행하신 섭리였다.

왜냐하면 모르드개가 하만을 대신하여 존귀한 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유다인들을 살육하라는 조서가 취소되었을지라도

대적들은 유다인들을 살육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역사는 실수가 없으시다.

10절, “그러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라는 말은

유다인들이 대적들을 도륙할 때 그들의 재산을 탐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즉 유다인들은 다른 사람의 재산을 탐하여

무고한 자를 살육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하만의 命에 따라 유다인들을 살육하려했던 자들은

유다인들에게 죄가 있었기 때문도 아니었고

또한 자신들에게 해를 끼쳤기 때문도 아니었고

오직 그들의 재산을 탐했기 때문이었다(3:13).

그러므로 대적들이 유다인들을 죽이고자 한 행위는

그 자체가 스스로 行惡者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뿌린 씨앗을 스스로 거두게 되었다.

이때 하만의 열 아들도 죽임을 당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한 사람의 탐욕이 자신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지 교훈 받는다.


9,11-16 :

왕은 에스더에게 도성 수산성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 주고, 다른 주에서도

유다인들의 대적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왕은 또 다시 에스더에게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했다.

그때 에스더는 “임금님께서 좋으시다면, 수사에 있는 유다인들에게 오늘

어명에 따라 행한 것처럼 내일도 실행할 수 있도록 윤허해 주시고,

하만의 열 아들을 말뚝에 매달게 해 주십시오.(9:13)”라고 요청했다.

왕은 에스더의 청을 허락했고, 이로 인하여 수산성에 살고 있는

유다인의 대적 삼백 명이 또 다시 죽임을 당하였고

하만의 열 아들은 나무에 매달렸다.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 각 주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시행되어

유다인의 대적들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계속되는 대적들에 대한 살육이 진행 되는 가운데서도

유다인들은 그들의 재산은 손을 대지 않았다.

이것은 자신들이 행하는 일이 불의한 자들에 대한 심판일 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특별히 유다인들이 이처럼 철저하게 대적들을 징계하고자 했던 것은

또 다시 자신들을 대적할 수 있는 불씨를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9,17-19 :

유다인들은 페르시아 제국 내 모든 곳에서 대적들을 멸한 후,

잔치를 베풀고 구원의 날을 경축하였다.

그들이 이처럼 축일로 삼은 날이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이었다.

그러므로 이 날들은 유다인들이 페르시아에서 전멸의 위기로부터

구원 받은 날을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푸림절을 제정하다(9,20-32) 

 

모르드개는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축일로 정하고

페르시아의 각 주에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된 이 날에 잔치를 베풀고

즐거워하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도록 하라고 편지했다.

그리고 이 기념일을 유대인들은 부림절이라고 했다.

여기 부림이란 부르(רופ)에서 온 말이다.

이것은 하만이 유대인들을 전멸하기 위하여 제비를 뽑아

날을 정한 것으로부터 유래했다.

따라서 ‘부르’의 문자적 의미는 “제비를 뽑았다”이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부림절을 대대로 지키는 축일로 정하여

후손들에게 부림절을 통하여 주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도록 하였다.

부림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느님의 백성들은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페르시아에서 유대 민족이 처한 환경은 참으로 절박했고

구원의 餘望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을 전멸하고자 계획한 자는 최고의 권력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의 재상이었던 하만이 계획했고 왕이 그 계획을 認准했다.

특별히 당시 페르시아 법은 왕이 내린 조서를

누구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도록 했다.

그렇다면 누가 유다인들을 학살하고자 하는 계획을 변경할 수 있겠는가?

당시 왕이 내린 조서에는 유다인들을 학살할 날자가 정해져 있었고

또한 페르시아 제국 내에 있는 모든 주에 전달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왕의 마음이 바뀐다고 할지라도 그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시간조차 넉넉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정황들은 당시 유다인들에게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말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인들이 이와 같은 위기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친히 그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

다른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