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에스텔기 공부

에스텔기 1장공부 : 크세르크세스 임금이 잔치를 베풀다

윤 베드로 2017. 11. 20. 09:00


크세르크세스 임금이 잔치를 베풀다(1,1-9) 


아하수에로는 다리오1세에 이어서 페르시아 왕이 된 사람이다.

이 이름은 히브리식 표기이고, 페르시아식으로는 크샤아르사,

헬라식으로는 크세르크세스로 불린다.

페르시아는 아하수에로 때에 강성했다.

그는 아버지 다리오가 제국을 20주로 나누어 통치하던 것을

127주로 세분하여 통치하였다.

당시에 페르시아제국의 수도는 수산궁이다.

본래 수산궁은 엘람의 수도였는데 페르시아가 엘람을 정복하고

그곳을 수도로 삼았다.

아하수에로는 수산성에서 즉위한 후 삼년 되는 해에

페르시아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고

이 잔치는 일백 팔십일이나 지속되었다.

이 잔치가 끝난 후 왕은 또 다시 수산성 주민을 위하여

칠일동안 잔치를 베풀었다.

이 잔치의 성대함에 대하여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얀 무명과 생목과 자주색 모직이 아마와 자홍색 끈으로

은 막대와 대리석 기둥에 매여 있고, 석고와 대리석과 자개와

흑옥으로 된 바닥에는 금과 은으로 된 평상들이 있었다.

그리고 임금은 금잔으로 술을 마시게 하였는데,

잔은 제각기 다른 모양이었고 술은 임금에게 걸맞게 넉넉하였다.

그러나 어명에 따라, 술을 억지로 마시게 하지는 않았다.(1:6-8)”

여기 잔치의 모습은 당시 페르시아가 얼마나 강국이었는지 말해 준다.

왜냐하면 당시 한 나라의 부는 그 나라의 생산력에 의해 이루어지기보다는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그 나라의 부를 약탈하거나

또는 조공을 받음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잔치에 사용된 각종 물품들은 다른 나라로부터

약탈해 온 것들이었을 것이다.

수산성 인민을 위한 잔치의 규모를 생각할 때 신복들과 각 주의 대신

그리고 귀족들을 위하여 베푼 180일 동안의 잔치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그 나라의 부의 규모를 추측할 수 있다.

이때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와스티 왕비가 폐위되다(1,10-22) 

 

1,10-12 :

왕은 酒興이 일어나서 즉흥적으로 왕후를 청하였고,

왕후가 자기의 명을 따르지 않자 그에 대한 진노가 불붙는 듯하였다.

결국 이로 인하여 왕은 왕후를 폐위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아하수에로의 이와 같은 모습을 통하여 당시 왕의 절대 권력을 실감한다.

우리가 왕후 와스디가 어째서 왕의 명을 따르지 않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추측은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왕후 역시 왕국에서 수산성의 부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있었다.

그렇다면 잔치의 주관자로서 자리를 비울 수 없을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또한 칠일동안 계속된 잔치로 누적된 피로로 인하여

여인으로서 백성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원치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왕은 왕후의 사정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명을 거역했다는 것만으로 분노했다.

우리는 왕의 모습을 통하여 부패한 인간이 절대 권력을 가질 때

얼마나 포악해 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1,13-22 :

왕은 사례를 아는 현인들에게 왕후 와스디의 행위를

어떻게 처치해야 하는지 물었다.

여기 현인들이란 왕의 자문 역할을 하는 자들을 말한다.

이들의 대답은 왕후 와스디가 왕의 명을 거역한 것은

왕에게 뿐만 아니라 대신들과 백성들에게도 잘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왕후로서 그리고 한 남편의 아내로서

본이 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왕후의 이와 같은 행위를 용납한다면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아내들이 남편을 멸시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왕에게 왕후 와스디의 位를 폐함으로

페르시아제국의 기강을 바로 잡아 줄 것을 요청했다.

이것이 힘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왕은 사례를 아는 자들의 권고에 따라 페르시아 제국 내의

모든 주에 조서를 내려 왕후를 폐했음을 알리고

또한 남편으로 하여금 집을 주관하도록 하게 했다.

이 사건은 페르시아 王家에 있었던 불행한 사건이었을 뿐이지만

이 사건은 모든 시대 하느님의 백성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유대인인 에스더로 하여금

페르시아의 왕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며,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하여 왕후가 된 에스더는

후에 페르시아에서 유대인들이 전멸할 위기에 처해 있었을 때

그들을 구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