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전도서 공부

전도서 5장 공부 : 종교적 권고

윤 베드로 2017. 11. 16. 07:45

종교적 권고(4,17-5,6) 


여기 “하느님의 집으로 갈 때”란 하느님의 임재 앞에 나가는 것을 말한다.

전도자는 하느님의 임재 앞에 나가고자 하는 자들에게

“네 발걸음을 조심하여라.”고 권고하였다.

이것은 하느님께 나갈 때에는 신중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살핀 후 나가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나갈 때 함부로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느님에 대하여 無知한 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어떠하심을 조금이라도 아는 자는

결코 그 앞에 함부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어떠하심을 아는 자는 하느님께 나갈 때에

말씀을 경청하려는 준비된 마음으로 나갈 것이고,

또한 생각 없이 말하지 않을 것이다(5:2).

그리고 헛된 꿈을 가지고 나가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임재 앞에서는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므로

헛된 꿈을 꿀 수 없기 때문이다.

전도자가 본문을 통하여 말해 주고자 하는 요점은 하느님을 아는 자와

알지 못하는 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어떠하심을 아는 자는 하느님께 나갈 때에는

언제나 근신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뜻을 살필 것이다.

그러나 성전에 나가 매일 제사 드리는 자일지라도

하느님에 대하여 무지하다면

그가 드리는 제사 역시 종교적 관습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경외함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불가피한 권력과 남용(5,7-8) 

 

각처에서 불의가 자행되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이 여기지 말라는 말은 사회구조 자체가

불의를 용납하고 있다면 사회에서 불의함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의미이거나

또는 공동체는 통치자가 있음으로 불의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는 

          그들이 주관할 문제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므로 통치 구조 자체가 부패하면 통치자들 개인의 정직함과 관계없이 

           사회 전체에 불의가 행해 질 것이고,

또한 통치 구조가 정의로우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의함은

통치 구조 자체가 그것을 제거해 줄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한 사회의 불의와 정의로움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 구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재물과 그 위험(5,9-6,2) 

 

5,9-17 :

전도자는 다시 한 번 소유에 대한 문제를 언급함으로

지나치게 소유에 집착함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에게까지 해악을 가져다주는 폐단을 경고하고 있다.

전도자는 본문을 통하여 소유가 인간의 궁극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여기 “돈을 사랑하는 자” “재물을 사랑하는 자”는

모두 소유가 삶의 궁극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고,

소유에 집착하는 자들을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돈으로도 만족할 수 없고 재물로도 만족하지 못한다.

여기 “만족”이란 삶에 궁극적 목적 즉 평화 또는 행복을 의미하는데,

소유로 만족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은 소유가 삶의 궁극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도자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유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근심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말함으로 소유에 대한 집착은 헛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말하고 있다(5:11,12).

전도자는 11-12절에서 노동자와 부자를 비교하며

오히려 부자보다 노동자가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이것은 부유한 것보다 빈곤한 것이 더 복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고 

        지나치게 많은 것을 소유하기 보다는 차라리 일용할 양식을

소유한 사람이 더 복된 삶을 살 수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전도자는 앞에서 소유에 대하여 언급한 것들을 생각하며

소유주가 소유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큰 폐단이라고 말하고 있다(13-15절).


5,18-19.

하느님이 사람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는 것은

그를 통하여 이루시기 원하시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베풀어 주신 은혜 안에서 기쁘게 살 수 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헛된 세상에서 가장 복되게 사는 삶이다.

전도서는 이처럼 동일한 사실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6,1-2 :

전도자는 태양 아래서 행하여지고 있는 불행한 일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런 불행한 일들 가운데 하나는 수고하여 많은 것을 얻을 지라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6:1).

소유를 위하여 수고하는 자들은 소유를 많게 할수록

더 복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 보다 더 복된 삶을 살기 위하여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수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생각이 변하지 않는 한,

그들은 일생동안 수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자들이야 말로 “재물과 부요와 영화를 하느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는 자들”일 것이다.

그들이 이처럼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릴 수 없었던 것은 삶의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목적을 망각하고 수단을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일생동안 수고하지만 진정한 삶의 목적에는 이를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