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에제키엘서 공부

에제키엘서 33장 공부 ① : 예언자 : 파수꾼

윤 베드로 2017. 10. 25. 07:57

예언자 : 파수꾼(33,1-9) 


*에제키엘서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주로 심판에 대한 메시지가 선포되었고(1-32장),

후반부에서는 구원의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다.

따라서 33-48장까지는 에제키엘서의 후반부에 속하며

예루살렘의 멸망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 것이다.

예언서들의 구조와 메시지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언서들 가운데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시간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대예언서에 속하는 예언서들의 모든 메시지들은

시간(과거, 현재, 미래)과 관계를 맺고 있다.

만일 과거의 사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메시지들은

주로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요청하는 메시지이고

현재와 관련 된 메시지들은 심판에 대한 경고가 들어 있으며

미래와 관계된 메시지들은 구원에 대한 전망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시간은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과거를 통하여

삶을 돌아보게 하고 현재를 통하여 현재 삶의 좌표를 그리고

미래를 통하여 삶을 전망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으로서 중요성을 갖는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은총의 수단으로서 시간을 허락해 주신 것은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함에 이르기 위하여

끊임없이 현재의 위치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며

삶의 궤도를 수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욱 불완전해 질 것이다.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삶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은혜의 수단이다.

그러므로 시간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일수록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언서는 우리에게 과거, 현재,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메시지를 주고 또한 이와 같은 메시지를 믿음으로 해석하여

삶에 적용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따라서 예루살렘 멸망 후의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하여 말씀 해 주고 있는 33-48장까지는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믿음으로

그들 앞에 펼쳐진 미래를 전망하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33,1-9 :

하느님은 어떤 사람도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하느님은 모든 시대 자기 백성을 위하여 파수꾼을 세워 주셨다.

여기 하느님께서 세우신 파수꾼이 바로 예언자들이다.

하느님은 에제키엘을 바빌론에 포로된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셨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에제키엘에게 파수꾼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만일 파수꾼이 재난에 대하여 경고의 나팔을 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무관심하므로 재난을 당하면 그 책임은 백성들에게 있지만, 

 파수꾼이 경고의 나팔을 불지 않음으로 백성들이 재난을 당했다면 그 책임은 파수꾼에게 있다.

하느님은 먼저 파수꾼의 일반적인 예를 말씀하신 후(33:1-6),

다음으로 에제키엘에게 그를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셨음을

말씀하신 후 그가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말씀하셨다.

그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들은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심판의 메시지는 대적들의 침략들보다

더 두려운 것이므로 에제키엘은 그 메시지를 들은 즉시 백성들에게 경고해 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심판을 피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8-9절은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움을 받은 예언자의 직무와

책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회개와 개인의 책임(33,10-20) 

 

33,10-16 :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지은 죄로 인하여 낙심하고 있을 때에

예언자를 통하여 그들에게 죄로부터 돌이키라고 격려해 주셨다.

이것은 “하느님은 자기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생각하시기보다는 죄를 깨닫고 회개하느냐에 대하여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그들이 회개만 한다면 “지은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해 주시고, 그들의 죄가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게 해 주시는 것이다”(이사1:18).


33,17-20 :

하느님은 악인들을 그들이 행한대로 심판하실 것을 선언하신 후,

그들에게 죄의 심판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셨다. 그것은 회개다.

비록 그들이 죄를 범하여 하느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을지라도

하느님은 그들이 죄에서 떠나 돌이킨다면 용서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33:11)”라고 말씀하신

하느님 자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하여

하느님의 공평하심이 각 사람의 행위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말씀해 주신 것이다.

하느님의 공평하심은 현재의 시점에서 각 사람을

공의로 판단하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전에 의롭게 산 사람이 지금 죄 가운데 살고 있다면 그는 심판을 면할 수 없고

과거에 죄 가운데 살았을지라도 지금 돌이켜 의롭게 산다면

하느님은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실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공평하심이 각 사람의 현재에 적용 되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의롭게 사는 것 자체가

삶의 보상이라는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언급한 것처럼 하느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죄인들에게 회개라는 은혜의 수단을 허락해주셨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죄 가운데 살아 온 자일지라도 스스로 죄인 됨을 깨닫고 회개한다면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죄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공평하심까지도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느님 자비의 마음에 기초되어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과거에 의롭게 살았지만 지금 죄 가운데 행하는 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공의는 다르다.

하느님은 어떤 사람이 과거에 의롭게 살았지만 현재 죄 가운데 살고 있다면 

          그는 죄 가운데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우리의 과거에 행한 의로움이 공로로 누적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즉 우리가 과거에 의롭게 살았다면 그렇게 살 것 자체가 삶의 보상이 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과거에 의롭게 산 것은 그 때 이미 보상이 되었으므로

그것이 현재의 죄를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공평하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