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역대기 공부

역대하 36장 공부 : 유다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

윤 베드로 2017. 9. 17. 07:28

여호아하즈의 유다 통치(36,1-4) 


여호아하스는 유다의 왕이 되어 불과 석 달 동안 통치하였다.

애굽왕 느고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그를 폐하고

그의 형제 엘리아김을 왕으로 세우고 이름을 여호야김이라고 하였다.

애굽의 파라오 느고는 전쟁의 배상으로 유다로부터 은 일백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뺏어 갔고 또한 여호아하스를 포로로 잡아갔다. 

 

여호야킴의 유다 통치(36,5-8) 

 

여호야김은 십일 년을 통치했지만 그의 업적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다.

다만 그에 대한 평가로서 “주 자기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가 있을 뿐이다.

그의 통치 중에 바빌론의 느브갓네살이 유다를 치러 올라왔을 때 패하여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이때 성전의 기구들이 바빌론에게 약탈당했다.

요시야의 두 아들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은 모두 주님 보시기에 악한 자였다(36:5).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유다 역사 가운데 前無後無하게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요시야의 아들인 이들이 어떻게 이처럼

주님 앞에 악한 자가 될 수 있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부친이 유다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하여 행하는

모든 일을 보며 자란 자들이었다.

왜냐하면 요시야는 39세에 죽었는데 여호야김이 25세에 왕이 되었다는 것은 

          요시야가 그를 14세에 낳았다는 것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18세부터라고 할 때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친이 종교개혁 하는 모든 것을 보며 자랐다는 것을 말해 준다.

물론 성경은 이들이 어째서 부친의 길로 행하지 아니하고

주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는지 말해 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만 상상할 뿐이다.


여호야킨의 유다 통치(36,9-10) 

 

여호야김이 바빌론에 잡혀간 후 그를 대신하여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8세에 유다의 왕이 되어 석달 열흘을 다스렸다.

여호야긴이 이처럼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그토록 짧은 기간을

다스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하여

“주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라고 말한 것은

여호야긴을 섭정한 자들이 주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것은 비록 여호야김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그와 함께 하느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던 자들이

유다를 계속 이끌어 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여호야긴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고 이때에 또 한 번 성전의 기구들이 약탈당했다. 


치드키야의 유다 통치(36,11-16) 

 

여호야긴을 이어 유다 왕이 된 사람은 그의 숙부 시드기야다.

그는 이십 일세에 왕이 되어 십 일 년 동안 유다를 통치했다.

그와 그의 시대는 하느님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12-13절).

이처럼 시드기야는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기회를 버리고 끝까지 거역하였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자가 복을 받는데 그는 하느님 앞에 악을 행하였고

예언자를 통하여 주신 권고의 말씀을 거역했고

또한 느브갓네살과 맺은 언약조차 배반함으로 끝까지 악을 행하였다.

이 시대는 왕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총체적으로 부패했다.

14∼16절은 이 시대의 모습에 대하여 이렇게 말해 주고 있다.

“모든 지도 사제와 백성도 이방인들의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주님을 크게 배신하고, 주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에서 성별하신

주님의 집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주 그들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당신의 처소를

불쌍히 여기셨으므로, 당신의 사자들을 줄곧 그들에게 보내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였으며, 그분의 예언자들을 비웃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님의 진노가 당신 백성을 향하여 타올라 구제할 길이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하느님의 사랑은 부패한 이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예언자들을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것으로 표현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음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거절했다.

결국 이들은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유다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36,17-21) 

 

유다가 그토록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 길을 갔던 것이

이런 결과를 얻기 위함이었을까?

만일 유다가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하여 하느님을 거역하였다면

그들이야 말로 무지한 자요 어리석은 자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유다가 범한 이와 같은 어리석음은

모든 시대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보다 더 좋은 것을 얻고자 하여

하느님을 떠났을 때 기다리는 것은 철저한 실패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바빌론의 칼에 넘어졌고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심으로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키실 때까지 그곳에서 노예로 살아야만 했다.

“이 땅은 밀린 안식년을 다 갚을 때까지 줄곧 황폐해진 채

안식년을 지내며 일흔 해를 채울 것이다.(36:21)”

하느님은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유다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후

칠십년에 귀환할 것을 말씀해 주셨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애가를 통하여 이와 같은 하느님의 자애하심을

애가 3,31-33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님께서는 마냥 버려두지 않으시네.

고통을 주셨다가도 당신의 크신 자애로 가엾이 여기시네.

그분께서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억누르지도 슬프게 하지도 않으시네.” 

 

유다의 마지막 역사에 등장한 네 왕들 가운데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들 모두는 하느님 앞에 악한 자였다는 것이고

또한 모두 외국에 포로로 잡혀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역사는 우리에게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교훈 해 준다.

첫째, 사람은 범죄 할수록 자유를 상실하고 속박되어 살게 된다는 것이다.

다윗은 하느님 앞에 정직히 행하는 자였으나 더 큰 향락을 얻고자 하여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함으로 범죄했다.

이로 인하여 그는 모든 자유를 상실했다.

우리가 죄의 길로 행하는 것은 죄의 길에서 더 많은 유익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이사48:22)”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하여 죄의 길을 택한다면

이로 인하여 우리는 더 많은 것들로부터 속박을 당하게 될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네 왕은 모두 하느님 앞에 악을 행하는 자들이었다.

이들이 모두 외국의 왕들에게 포로로 붙잡혀 갔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된다.

둘째, 이 역사는 우리에게 죄의 결과는 다음 세대까지 유전된다는 사실을

교훈해 준다. 물론 이것은 생물학적 유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문화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다.

실례로서 한 세대가 진리에서 떠나 세속적으로 살았다면

그들이 형성해 놓은 세속적인 문화는 다음 세대로 전달 될 것이고 

 이로 인하여 다음 세대는 세속적인 문화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전 세대로 인하여 세속적인 문화 속에 살게 된 이 세대는

더욱 신앙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유다의 마지막 역사는 유다의 역사 가운데

매우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유다의 역사 가운데 주님 앞에 악을 행하는 왕들(네 명의 왕)이

이처럼 연속적으로 통치한 경우는 없다.

오히려 한 왕이 주님 앞에 악을 행하였다면

그 다음은 경건한 왕이 나와서 유다를 다시 정화했다.

이처럼 유다는 부패함 가운데서도 회개를 통해 회복의 은혜를

가져왔기 때문에 역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네 왕들은 모두 하느님 앞에 악한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들로 인하여 형성된 세속화는 더욱 심화되어

결국 유다는 스스로 경건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하게 됨으로 멸망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36,22-23) 

 

주님께서는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