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역대기 공부

역대하 35장 공부 : 요시야가 파스카 축제를 지내다

윤 베드로 2017. 9. 17. 07:15


요시야가 파스카 축제를 지내다(35,1-19) 


35,1-6 :

요시야는 우상을 제거하고 성전을 정화한 후 파스카 축제를 회복했다.

이처럼 요시야가 과월절을 회복시켰던 것은 이 절기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이스라엘을 신앙의 공동체로 회복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과월절을 지킨다는 것은 구원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갖는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출애굽 때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들이

구원 받은 날을 기념하여 이스라엘에게 영원히 과월절을 지킬 것을 명하시고,

과월절이 있는 그 달을 그 해의 첫 달로 삼으라고 명하셨다.

이것은 과월절이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 중에 가장 중요한 것임을 말해 준다.

과월절이 이토록 중요했던 것은 과월절은 구속받은 이스라엘이

일생동안 간직해야 할 신앙의 고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월절에는 하느님의 능하심과 자기 백성을 대적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시고 

        노예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것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 있다.

그러므로 유다 가운데 과월절 절기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신앙의 공동체로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하여 그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각각의 직분을 맡기고

그 직분에 따라 직무를 행하도록 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전까지 레위인들의 직무들 가운데 하나는

성막을 옮길 때마다 지성소 안에 모셔있는 계약궤를 어깨에 메고 옮기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 한 후부터 성막을 옮기는 일이

자주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직무는 점점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로 변한 듯하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 한 후에는 레위인들에게 계약궤를 메어 옮기는 일은 

          더 이상 요청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요시야가 레위인들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상기시키며

“그대들은 이제 주 그대들의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섬기시오”(3절)라고 말함으로

자신들의 직무에 충실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특별히 레위인들이 과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은

반열에 따라 스스로를 성결케 하여 이스라엘을 위하여

과월절 어린 양을 잡는 것이었다.


35,7-9 :

왕과 제사장 그리고 대신들과 레위인 두목들이

백성들에게 과월절 제물을 기부했다.

왕은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삼만과 수소 삼천마리를 주었고,

제사장들(힐기야, 스가랴, 여히엘)은 양 이천육백과 수소 삼백을 주었고, 

     레위 두목들 곧 고나냐와 그 형제 스마야와 느다넬과

또 하사뱌와 여이엘과 유사밧은 양 오천과 수소 오백을

레위 사람들에게 과월절 제물로 주었다.

이처럼 이들이 과월절 제물을 기부한 것은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서

또는 미처 예물을 준비해 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함으로 과월절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의 축제가 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진정한 배려는 모두를 위한 축제가 되게 한다.


35,10-15 :

제사장들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을 할 때,

그리고 레위인들이 자기의 직무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행할 때,

마찬가지로 백성들이 서 있어야 할 위치에 서 있을 때

비로소 과월절은 하느님께서 명하신 것에 따라 지킬 수 있었다.

물론 과월절뿐만 아니라 평소 성전에서 드리는 모든 제사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양을 잡는 일과 백성에게 나누어주어 주님께 드리게 하는 일

그리고 과월절 양을 불에 굽거나 삶아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 일 등, 

        모든 일을 각각 맡은 직임에따라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행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에게 예배는 준비함으로 드릴 수 있는 것이라는 영적 원리를 교훈해 준다.

 

35,16-19 :

이들은 과월절을 지킬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한 후에

정한 날짜에 과월절과 연이어 무교절을 지켰다.

18절은 이때 과월절을 지킨 모습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무엘 예언자 시대 이래 이스라엘에서 파스카 축제를

그처럼 지낸 적이 없었다. 어떤 이스라엘 임금도

요시야가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거기에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들과 함께 지낸 것과 같은

파스카 축제는 지낸 적이 없었다.”

요시야는 이처럼 과월절을 성대히 지킴으로 반 신앙적인 문화(우상들과

그 제단들)를 제거한 후 그 자리에 신앙적인 문화(과월절)를 채웠다.

요시야는 자신에게 주어진 왕권을 가지고 이처럼 전심으로 주님을 경외했다.

특별히 요시야가 다른 어떤 축제보다도 과월절을 이처럼 지켰던 것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과월절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반드시 고백해야할 신앙의 고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과월절을 통하여 이 신앙의 고백을 회복할 때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온전히 설 수 있었다. 

 

요시야가 죽다(35,20-27) 

 

여기 “이런 일이 모두 일어난 다음”은

요시야가 이스라엘의 신앙을 회복한 후를 말한다.

이때 애굽의 느고가 유프라테스강 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왔다.

느고가 갈그미스를 치러 가기 위해서는 유다를 통과해야 했다.

느고는 요시야에게 자신이 유다로 올라 온 것은 그를 치기 위함이 아니고 

         갈그미스를 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하며

요시야에게 양해를 구하였으나 요시야는 듣지 않았다.

22절은 보면 느고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은 요시야의 실수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요시야는 그에게서 물러서지 않고, 그와 싸우려고 변장까지 하였다.

이렇게 요시야는 하느님의 입에서 나온 느코의 말을 듣지 않고,

그와 싸우려고 므기또 평원으로 진군하였다.”

이 말씀은 요시야가 애굽과 싸우지 않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음을 말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야가 애굽과 싸우려고 했던 것은

그가 이 전쟁에 나갈 때 먼저 하느님께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을말해 준다.

다윗은 언제나 전쟁에 나갈 때 하느님께 물어 보았다.

그리고 믿음의 왕들이 전쟁에 나갈 때에도 이 원칙은 지켜졌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예언자들을 보내주신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왕들로 하여금 전쟁에 나갈 때 하느님의 뜻을 물어보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요시야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왕으로서 전쟁에 나갈 때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그가 어째서 이와 같은 원칙을 지키지 않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이 원칙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 전쟁에서 전사하였다.

요시야는 느고를 저지하기 위하여 므싯도로 나갔다.

느고는 요시야와 싸우기를 원치 않았지만,

요시야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가

결국 적병이 쏜 화살에 맞아 중상을 당하였다.

그는 신하들에 의하여 급히 예루살렘으로 후송 되었으나 결국은 죽었다.

우리는 요시야 이후의 유다 역사를 통하여

그의 죽음이 유다에 얼마나 큰 손실을 가져다주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이후 모든 왕들은 하느님 앞에서 신실하지 못했다.

그래서 유다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요시야의 죽음은 당시 그를 통해 유다의 회복을 바라던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큰 슬픔을 가져다주었다.

“예레미야도 요시야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다.

그래서 요시야를 애도할 때에는 오늘날까지도 노래하는 남녀들이

모두 그 애가를 부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이스라엘의 규정으로 삼았다.

그 애가는 애가집에 실려 있다.(3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