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예레미야서 공부

예레미야서 52장 공부 :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지다

윤 베드로 2017. 6. 19. 08:06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지다(52,1-30)

 

*본문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기까지 있었던 사건들의 日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 기록된 내용들을 열왕기하24:18-25:30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 기록을 보면 유다인은 바빌론에 의하여 세 차례에 걸쳐서 포로로 잡혀갔다.

첫 번째는 BC 598년에, 두 번째는 BC 587년에,

세 번째도 BC 582년(이때는 어쩌면 그달리야의 암살에 대한 보복이었을 것이다)에 잡혀갔다.

이때 잡혀간 사람은 4천 6백 명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건강한 남자의 數라고 한다면,

         남자와 여자와 아이를 포함한 실제의 포로 수는

         대략 만 오천 명에서 이만 명에 이를 것이다.

유다인들을 이처럼 16년에 걸쳐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이다.

 

52,1-3 :

시드기야의 본 이름은 맛다니야다.

그는 여호아긴이 바빌론에 의하여 폐위되고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를 대신하여 왕위에 오른 자다.

이때 그의 나이는 이십 일 세였다(B.C597).

그는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주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였다.

시드기야는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말씀을 거역하고

                   오히려 애굽을 의지하고 바빌론을 배반하므로

그의 재위 십일 년 B.C. 586년에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패했다.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은 유다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었다.

 

52,4-11 :

유다가 바빌론의 침략을 받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유다왕 시드기야가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이다.

시드기야는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바빌론에게 항복하는 것만이

        유다가 살길이라는 말씀을 거역하고 오히려 바빌론을 배반하고 애굽을 의지했다.

이로 인하여 바빌론의 침략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은 불순종의 결과였다.

바빌론 군대는 시드기야의 재위 9년에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재위 십일년 예루살렘을 정복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내에는 극심한 기근이 있었다.

결국 유다는 바빌론의 침략을 방어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본문은 이때 예루살렘의 모습을 7-9절에서 전해 주고 있다.

바빌론 왕은 시드기야의 목전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또한 그의 두 눈을 뽑았다.

그리고 그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빌론으로 데려가서 죽는 날까지 감옥에 두었다(52:10).

유다 왕으로서 시드기야의 불순종은 이처럼 유다 전체와

         그 자신과 가족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바빌론의 위협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어리석음이었을 뿐이다.

 

52,12-16 :

예루살렘은 바빌론에 의하여 철저하게 약탈당했다.

성전과 왕궁과 귀인들의 집은 모두 燒失되었고, 예루살렘의 사면 성벽은 헐렸다.

백성의 대부분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갔고

            예루살렘에 남겨진 자는 가난한 사람들뿐이었다.

 

52,17-23 :

바빌론은 성전을 약탈해 갔다.

그들은 성전에서 금과 은, 놋을 약탈 해 갔는데

            이것들은 여러 가지 祭具들과 성전 기둥에 입힌 것들과

              성전을 장식하는데 사용한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이 약탈해 간 금과 은, 그리고 놋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이었다.

이처럼 바빌론에 의하여 그토록 화려했던 성전이 철저히 약탈당했다.

 

52,24-27 :

또 다시 시위대 장관에 의하여 사로잡힌 자들을 언급하고 있다.

시위대 장관에 의하여 성전에서 사로잡힌 자는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전 문지기 세 사람이었고,

또한 성중에서도 사로잡힌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군사를 거느린 장관 하나와 왕의 시종 일곱 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 안에서 만난 평민 여섯 명이었다.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은 이들을 사로잡아 리블라에 있는

             바빌론 왕에게 갔고 왕은 하맛땅 리블라에서 그들 모두를 죽였다.

 

52,28-30 :

본문은 바빌론 왕이 유다인을 포로로 잡아간 자들의 수를 말해 주고 있다.

재위 제 칠년에 유다인 삼천 이십삼 명을 포로로 잡아갔고,

         재위 십팔 년에는 팔백 삼십이 명을, 재위 이십 삼년에 시위대장관 느브사라단이

         사로잡아 옮긴 유다인이 칠백 사십오 인이었다.

그러므로 총수는 사천 육백 인이었다.

 

다윗 후손의 운명(52,31-34)

 

52장을 정리해 본다.

본문은 시드기야의 즉위에 대한 것과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을 때의 기근에 대한 것과

            도시와 성전의 파괴에 관한 기사,

            그리고 포로로 잡힌 시드기야가 립나에서 바빌론왕

            느브갓네살로부터 받은 재판에 관한 기사,

             그곳에서 살해된 제사장과 대신들의 명단,

            이미 언급한 세 차례에 걸쳐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의 수 등을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역사는 바빌론의 침략으로 인하여

               유다라는 한 나라의 역사가 중단 된 것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슬픈 역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