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욥기 공부

주님의 말씀 ; 하느님과 욥의 대화(38,1-42,6) ②

윤 베드로 2017. 3. 1. 08:11

Ⅵ. 주님의 말씀 ; 하느님과 욥의 대화(38,1-42,6) ②

 

욥의 답변과 주님의 꾸짖으심(40,1-14)

 

*주님의 메시지 중간에 나오는 본문은 두 가지 사실을 역설한다.

바로 자기 義를 고집하며 하느님을 원망하던 욥의 신앙적 한계와

하느님의 공의로우시며 주권적인 섭리의 위대성이다.

이러한 부분은 ①하느님이 욥에게 질문하심(1-2절)

②욥이 자신의 미천함을 고백함(3-5절),

③욥에 대한 하느님의 책망(6-14절)으로 구성.

특히 하느님께서는 욥이 그동안 당신의 공의와 섭리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불평하고 항의하던 것에 대해 꾸짖고 계시는데,

이는 욥으로 하여금 회개하고 당신의 주권적 섭리에

완전히 복종하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주님의 꾸짖으심(40,1-2)

1 주님께서 욥에게 계속 말씀하셨다.

2 불평꾼이 전능하신 분과 논쟁하려는가? 하느님을 비난하는 자는 응답하여라.

 

1-2, 욥의 대답을 촉구 :

①주님께서 욥에게 계속 말씀하시기를,

②불평꾼이 전능하신 분과 논쟁하려는가? 하느님을 비난하는 자는 응답하여라.

 

⇒본절은 그동안 자기 무죄를 주장하며 친구들과 논쟁을 해왔던

욥의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욥은 하느님 앞에서 변론하겠다던 태도(23,7)를 바꾸어,

조용히 침묵하게 된 것이다.

 

욥의 첫째 답변(40,3-5)

 

*하느님께서 거듭 대답을 요구하시자

욥은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고 더는 할 말이 없다고 대답한다.

하느님은 앞서 던진 피조 세계의 질서와 경이에 관한 질문에 이어

공의로운 통치와 능력에 대한 질문들을 욥에게 던지신다.

40장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능력과 섭리로 만물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욥에게 확증시켜 보여준 첫 번째 말씀(38-39장)의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유구무언(40,3-5)

 

3 그러자 욥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4 저는 보잘것없는 몸, 당신께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손을 제 입에 갖다 댈 뿐입니다.

5 한 번 말씀드렸으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두 번 말씀드렸으니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3-5, 욥의 대답 :

①그러자 욥이 주님께 대답하기를,

②저는 보잘것없는 몸, 당신께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③한 번 말씀드렸으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표현은 친구들과의 대화 가운데서 자기 무죄를 주장한

욥의 태도가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전에 욥은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당당하게 대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적이 있다(13:22 ; 14:15).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생각들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잠잠히 침묵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완전한 참회의 고백이 아니다.

욥은 하느님께서 직접 보이시는 공의와 권능의 말씀 앞에서

비로소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42:6).

 

주님의 둘째 말씀(40,6-14) ; 주님의 꾸짖으심

 

6-14, 두 번째 나타나신 하느님 :

①주님께서 두 번째에서도 폭풍 가운데서 말씀하신다.

②사내답게 허리를 묶고 묻는 말에 대답하라고 하신다(7절)

③너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나를 단죄하려느냐?

④네가 하느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존귀와 엄위로 꾸미고 존엄과 영화로 옷을 입어 보아라.

⑥교만한 자는 누구든 살펴 그를 꺾고 악인들은 그 자리에서 짓밟아라(11-12절).

⑦그들을 모두 흙 속에 숨기고 얼굴을 염포로 묶어라.

⑧그러면 나도 너를 인정하리다.

하느님이 다시 대답하신다.

아직도 하느님의 의로운 다스림에 대해 욥이 납득하지 못하자,

이제는 욥이 해야 할 일을 말씀하신다.

분노와 교만을 버리고, 자기 존엄을 가지고, 세상의 불의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내 고난에 함몰되지 말고, 고난 받는 이웃의 손을 잡아주라는 것이다.

그것이 고난을 이기는 하느님의 방법이다.

 

브헤못(40,15-24)

 

①내가 너를 만들 때 함께 만든 브헤못(하마)을 보아라.

그것의 힘은 허리에 있고 그 뚝심은 배의 힘줄에 있고,

그것이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얽혀 있으며,그 뼈는 구리통 같고 그 뼈대는 쇠막대기 같으니,

그것은 하느님이 만드신 것 중에 으뜸이다(16-19절).

③모든 들짐승들이 뛰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낸다(20절)

④그것이 연잎 아래에나 갈대 그늘에서나 늪 속에 엎드리니

연잎 그늘이 덮으며 시내 버들이 그를 감싸 준다(21-22절).

⑤강물이 소용돌이칠지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르단 강 물이 쏟아져 그 입으로 들어가도 태연하니,

그것이 눈을 뜨고 있을 때 누가 감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것의 코를 꿸 수 있겠느냐?(23-24절).

 

⇒여기에서는 하마를 보호하시며 세밀하게 관찰하시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보여주고 있다.

하마는 아무리 거센 물결이 몰아닥쳐도 전혀 당황하지 않으며,

요르단강이 순식간에 뒤집혀도 태연하게 있다는 것을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하마의 담대함과 자기 확신은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주신 것으로

이 동물 또한 하느님의 지배 아래 있음을 보여준다.

브헤못이 아무리 으뜸가는 존재라도 하느님의 피조물이며,

하느님의 통제 아래 있다.

또한 하느님은 욥을 브헤못과 동일한 위치에 두신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통치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으뜸가는 존재로 여기시기에

우리는 어떤 시련과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레비아탄(40,25-41,26)

 

40,25-41,3, 도전적 질문 :

①우리 힘으로는 레비아단을 이기지 못한다(40,25-41,1절)

②레비아단도 하느님의 것이다(41,2-3절).

 

⇒하느님은 브헤못에 이어 레비아단을 들어 인간의 연약함을 강조하신다.

인간이 만든 어떤 무기와 도구로도 이 괴물을 잡을 수 없지만,

하느님은 창조물의 으뜸인 브헤못처럼

모든 교만한 것의 왕인 레비아단도 통제하시고 다스리신다.

하느님은 욥에게 레비아단을 통제할 수 있는지 질문하신다.

질문의 초점은 ‘누가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손으로 만져보라고 하신다.

대답은 ‘우리는 못하지만 하느님은 하신다’이다.

인간은 스스로 결코 할 수 없다.

레비아단과 같은, 아니 그 이상의 무시무시한 악과 고난 앞에서

우리는 속절없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

이는 욥으로 하여금 결코 악어를 정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며, 여기서 하느님과 논쟁하겠다는 주장을(23:3-7)

철회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더 이상 하느님과 논쟁한다는 것은 악어와 싸움을 계속하는 것보다

훨씬 무의미하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4-26, 레비아단의 모습 :

 

⇒레비아단은 하느님의 창조세계에 존재하는 무서운 괴물(악어)이다.

그와 맞설 상대가 없으며 다른 동물처럼 포획하기 어렵다.

칼, 화살, 작살, 몽둥이와 사냥꾼의 무기도 소용이 없다.

엄청난 위용과 위세가 강력하면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인간에게 적대적인 혼돈과 악의 세력을 상징하던

이 동물이 하느님의 권세와 권능 앞에서 하느님의 창조세계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욥은 세계가 악인의 손 안에 있고, 그 손에서 놀아난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9, 24절).

하지만 하느님은 고난이 욥의 구속을 위한 일부이며,

그 모든 것이 최종적으로 당신의 수중에 있다고 선언하신다.

 

욥의 둘째 답변(42,1-6)

 

*하느님의 질문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새롭게 깨달은 욥은

하느님께 공손하게 답변하면서 회개한다.

하느님은 욥의 친구들을 책망하시고, 욥에게 번제를 부탁하라고 하신다.

친구들을 위해 기도한 욥은 온전한 회복을 경험한다.

*하느님께서 욥의 고통 이유에 대하여 직접 답하시지는 않았지만,

이제 욥은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주권적 섭리를 깨닫게 된다.

즉 욥은 하느님의 계속되는 말씀 속에서 자신이 무지하여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을 깨닫지 못했던,

자기 義에 대한 고집들을 깊이 회개하기에 이른 것이다(3-6절).

솔직히 욥은 환난 중에 주님께서 침묵하심을 안타까이 여기고

고통스러워했지만 이제 하느님의 顯示를 통해

그 고난은 없어지고 온전히 주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하느님 체험과 고백(42,1-6)  ; 욥의 두 번째 응답 :

①욥이 주님께 대답하기를, 저는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고,

어떠한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음을 알았다(1-2절).

②욥은 스스로를 책망한다(3절)

③내가 말하겠사오니 들으시고 내가 묻겠사오니 가르쳐 주십시오(4절).

④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5절)

⑤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6절)

 

욥은 그동안 친구들이 전하는 하느님의 모습에 심히 절망했고,

그래서 하느님께 거칠게 대들었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대면을 통해 하느님께서 고난을 통해

감히 헤아리기 어려운 방식으로 우리뿐 아니라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래서 어리석은 입을 다물고 회개한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 대해 놀라움을 가지고 있었던 욥은

이제 만물에 대한 하느님의 행위가 너무도 기이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떠들었던

친구들과의 대화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는가를 뉘우친다.

이와 같이 욥의 반응은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주권적인 행사가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기묘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였는가를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스스로가 인지하였음을 반증한다.

하느님을 직접 만나볼 것을 소망했던 욥으로서는,

지금 자기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그분을 체험하고 인지한 이상,

자기의 요구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음을 깨닫고 있다.

참으로 욥은 하느님을 직접 대면함으로,

하느님을 경험하고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