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공부/요한묵시록 공부

[스크랩] 요한 묵시록 1장

윤 베드로 2016. 9. 11. 07:57

<요한 묵시록 1장>

 

    요한 묵시록은 종말에 대한 예언서입니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라, 박해의 고통에 시달리는 신

    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한 책입니다. 그래서 지금 고통과 시련

    에 시달리고 있더라도 곧 승리할 것이다, 조금만 참고 견뎌라, 회개하고 기다려라, 하느님

    께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라는 내용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요한'이라는 이름의 저자가 지중해 연안에서 서기 94년-96년경에 기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1장

 

<1절-3절 : 머리말>

 

1절..<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

    여 주시려고 그리스도께 알리셨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천사를 보내시어 당신 종 요한에게

    알려 주신 계시입니다.>--이 구절의 뜻은,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기록한 책

    으로서 이 계시의 내용은 곧 일어날 일들이고, 하느님 → 그리스도 → 천사 → 요한 →

    종들의 순서로 전달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전달 순서는 계시 내용이 틀림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보증한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시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

    한 계시라는 뜻입니다.

    <계시>--'계시' 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아포칼뤼프시스(Apokalypsis)'인데, 이 말은 '계시,

    묵시'로 번역되며, 주로 종말에 있을 예수님 재림의 영광스러움을 나타내고, 하느님의 심

    오한 진리의 나타남을 뜻할 때에도 사용합니다.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이 말은 하느님의 계획은 취소될 수 없다

    는 것과 그 일은 곧 일어난다는 긴박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여기서 '종들'은 1. 초대교회의 예언자들, 2. 순교자들,

    3. 그리스도인 전체를 가리킵니다. 즉 이 계시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알리셨고>--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말씀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즉 계시의 원천은 하느님이시고, 그 계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천사를 보내시어>--천사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인데, 하느

    님과 인간을 중개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여기서 천사를 파견하시는 분이 그리스도로 되어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를 예수님이 파견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곧 하느님이심을 뜻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직접 만날 수 없지만 천사를 통해서 하느님과 만날 수 있습니다.

    천사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성의 구별이 없는데, 성경에서는 남성적인 모습으로 나오

    고, 천사라는 단어도 남성명사를 쓰고 있습니다.

    천사의 아홉 계급은 어떤 신학자가 만든 것으로 교리에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며, 우리 교

    회에서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외에는 천사들의 이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당신 종 요한에게 알려 주신 계시입니다.>--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밝히고 있고, 자신을 '하느님의 종'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종'이라는 말은 자

    기 자신을 하느님의 종들이었던 옛 예언자들과 같은 위치에 있는 예언자라고 소개하는 것

    이며 자신의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전통적으로 요한 묵시

    록의 저자를 사도 요한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사도 요한의 제자나 추종

    자가 요한의 이름으로 묵시록을 썼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절..<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자기가 본 모든 것을 증언하였습

    니다.>--<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자기가 본 모든 것을>--'하

    느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증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전체를 뜻하는데, 여기

    서는 특별히 '요한이 본 모든 것', 즉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계시들을 가리킵니다.

    <증언하였습니다.>--그리스어로 '증언'이라는 말에는 '순교'의 뜻도 들어 있습니다. 즉 증

    언자는 자신의 증언을 말로써 뿐만 아니라 피로써(목숨을 바침으로써) 진실한 증언이라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3절..<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

    은 행복합니다. 그때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이 구절은 요한 묵시록의 일곱 행복선언

    중 첫 번째입니다. 나머지 여섯 개는 14,13 ; 16,15 ; 19,9 ; 20,6 ; 22,7,14에 있습니다.

    이 구절의 내용은 이제 구원의 때가 다가왔기 때문에 하느님 말씀대로 산 사람들은 행복

    하다는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이 말은 오늘날의 미사 독서자가 독서를 하듯이 전

    례 상황에서 요한 묵시록을 낭독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낭독하는'이라는 말이 단

    수형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이 말은 독서자가 요한 묵시록을 낭독할 때 그것을 청중이 듣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듣고' 라는 말이 복수형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청중은 말씀을 듣고 기억하는 것

    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그 말씀의 뜻을 깊이 깨달아야 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주시는 행복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3절은, 이 책은 하느님의 계시를 기록한 묵시록이며 동시에 예언서로서 교회의 공적인 모

    임과 전례에서 읽어야 할 책이고, 읽고, 듣고, 새기고, 실천해야 할 책이라는 것을 강조하

    는 구절입니다.

    <그때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하느님의 구원사업은 예수님의 부활로 '이미' 시작되었

    고, 마지막 날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하느님의 심판이 임

    박했다는 것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먼 훗날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지금'의 신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위로하

    며, 적들에게는 무서운 위협을 주는 책입니다. '그때'가 곧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4절-8절 : 인사>

 

4절..<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아시아>--바오로 사도

    가 선교활동을 했던 지역으로 현재의 터키 지방, 소아시아 지역을 가리킵니다.

    <일곱 교회>--여기서 7은 완전함, 충만함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일곱 교회'는 편지 내용

    이 완전하다는 것과 이 글을 '전체 교회'에 전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 글의 대상

    은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 있는 교회입니다.

    <지금도 계시고>--이 말은 탈출기 3장 14절의 "나는 있는 나다(나는 야훼다.)."에서 온

    표현으로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전에도 계셨으며>--이 말은 하느님께서 이미 인간 역사에 나타나셨다는 역사적 성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앞으로 오실>--하느님께서는 앞으로도 인간역사를 주관하러 오실 분입니다.

    이 세 가지 표현은 '성부 하느님'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이 구절은 '성령'을 나타냅니다.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이라는 말은 '하느님과 함께 계신'이라는 뜻입니다. '영'은 하느님의 영, 즉 성

    령입니다. 여기서도 '일곱'은 완전함, 충만함을 상징합니다.

 

5절..<또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

    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

    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5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표현입니다.

    <성실한 증인이시고>--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성실하게 드러내고, 선포하

    고, 행동으로 옮긴 증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증인'이라는 말은 메시아를 뜻하기도 합니다.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한 첫 번째 분이십니다. 공동번역 성

    서는 '죽음으로부터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으로 번역했는데, 성경 원문은 '죽은 자들 중

    에서 첫 번째로 태어나신 분'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새로운 탄생으로, 또 하느님

    의 새로운 창조의 시작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신>--로마 제국의 박해를 받을 때, 신자들은 전 우주가 하느님

    과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고 확신하면서 박해를 견디어 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그

    리스도교를 박해하고 있는 로마 황제도 사실 알고 보면 하느님과 그리스도에게 속한 피조

    물일 뿐이라는 믿음 속에서 박해를 견디어 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함께 전

    우주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시기도 합니다.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은총'이라는 말에는 '기쁨'의 뜻도 들어

    있는데, '기뻐하소서.' 라는 그리스 인사말에서 온 표현이고, '평화'는 '샬롬(평화가 있기

    를)'이라는 유대인들 인사말에서 온 것입니다. 이 두 인사를 합해서 초대교회 신자들은

    '은총과 평화를 빈다.' 라는 인사말을 사용했습니다. 이 인사말은 평화와 기쁨을 갈망하던

    신자들의 소망이 들어 있는 말이면서 동시에 은총과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

    하는 인사말입니다. 그래서 4절-5절은 성부, 성자, 성령, 즉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은총

    과 평화를 온 교회에 기원하는 인사말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이 구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것으로 그것은 곧 우리를 향한 사랑이었음

    을 강조하는 구절입니다.

 

6절..<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원문대로

    직역하면 '우리로 하여금 왕국을 이루신'인데, 왕국을 이룬다는 것은 곧 구원된 사람들을

    '왕'이 되게 하신다는 것, 왕의 권력을 갖게 한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를 피지배

    자로 만들지 않고 세상을 다스리는 공동 통치자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구원받은 이들은 예수님의 사제직

    에도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지배권과 사제직에 참여한다는 것은 옛 이

    스라엘의 특권이 그리스도 교회로 옮겨졌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로마 제국에서는 '영광과 권능'을

    국가나 황제에게 바쳤습니다. 교회는 로마 제국에 대한 저항의 뜻으로 영광과 권능을 예

    수님께 바쳤습니다. '아멘'은 찬성과 강조를 뜻하는 표현입니다.

    4절-6절의 인사말과 영광송은 당시의 신자들에게 용기와 긍지,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말

    이었습니다.

 

7절..<보십시오,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 그분을 찌

    른 자들도 볼 것이고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여기에 인용된 구절은 다니엘서 7장 13절과 즈카르야서 12장 10절을

    섞어서 인용한 혼합 인용문으로서 예수님의 재림 때 일어날 일들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구절은 마태오복음 24장 30절과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이 말하는 것은 종말의 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가 아니라, '누

    가 오시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구름'은 '하느님의 나타나심'을 상징하는데 '구름을 타고 오시는 분'은 신적인 권한을 가

    지신 주님, 세상의 심판자를 뜻합니다.

    '모든 눈'이 본다는 것은 그 심판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그분을 찌른 자들'이라는 말은 일차적으로는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찌른 자들을 가리키지

    만, 여기서는 교회를 박해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가슴을 친다.' 라는 말은 뒤늦은 후회를 뜻합니다.

    7절은 심판의 위협을 선포하는 구절이 아니라 적들에 대한 승리와 신자들에 대한 구원을

    선포하는 구절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이라는 말은, 이런 일들에 대한 교회의 절대적인 확신을

    나타냅니다.

 

8절..<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

    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하느님에 대해서 4절의 표현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알파'는 그리스어의 첫 글자이고, '오메가'는 그리스어의 마지막 글자입니다. 따라서 '나

    는 알파요 오메가다.' 라는 말은 '나는 시작이요 마침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이사

    야서 44장 6절에서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의 뜻은 하느님에 의해 만물의 창조가 시

    작되었고, 하느님이 만물의 최종목표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이 말이 성부 하느님의 말

    씀으로 되어 있는데 17절에서는 그리스도에게도 적용됩니다.)

    하느님은 이처럼 모든 것을 포괄하시는 분이고, 창시자이며 완성자이고, '전능하신' 분입

    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을 200주년 성서는 '만물의 주재자'로 번역했습니다. '세상 만

    물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갖고 계신 분'이라는 뜻을 살려서 번역한 것입니다.)

    8절은 1절-7절의 머리말과 인사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하느님께서 보증하신다는 뜻의 구

    절입니다.

 

<9절-20절 : 요한의 소명>

 

9절..<여러분의 형제로서,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과 더불어 환난을 겪고 그분의 나라에 같이

    참여하며 함께 인내하는 나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 때문에 파트모

    스라는 섬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여러분의 형제로서>--교회 안에서는 모든 이가

    섬겨야 할 한 분의 스승, 한 분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모든 이가 서로 형제입

    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을 '여러분의 형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과 더불어 환난을 겪고>--신자들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고, 말씀

    을 전파하고, 증언하다가 박해를 받게 되고,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것은 혼

    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자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외부의 환난과 박해를 받을수

    록 교회의 형제애는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신자들은 '함께' 박해를 견디어 낸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과 더불어'를 공동번역 성서는 '함께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라고

    번역했는데 공동번역 성서의 번역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분의 나라에 같이 참여하며>--신자들은 주님의 왕권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함께 인내하는>--박해를 받으면서도 신자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함께 참고 견

    뎠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 때문에>--자기 혼자 숨어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박

    해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증언했기 때

    문에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신자라면 당연히 복음을 전해야 하고, 박해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파트모스라는 섬>--'파트모스'는 에게해 동쪽, 에페소에서 남서쪽으로 약 75Km 떨어진

    바위섬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사도 요한이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했고, 채석장에서 강제노

    동을 했다고 합니다.

 

10절..<어느 주일에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내 뒤에서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어느 주일에>--'주일'은 '주님의 날',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

    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유대교의 안식일(토요일)을 지키지 않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일요일을 주님의 날로 지켰습니다.

    <성령께 사로잡혀>--이 말은 성령을 가득히 받은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것을 '탈혼 상태'

    라고도 하는데, 영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에 들어가 초감각적인 것을 보고 듣게 됩니다.

    <내 뒤에서>--자기 '안에서'가 아니라 '뒤에서', 즉 밖에서, 어딘가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는 뜻입니다.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큰 목소리>--'나팔 소리'는 하느님의 나타나심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큰 목소리'는 곧 하느님의 목소리입니다.

 

11절..<그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 곧 에

    페소, 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티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이아에 보내라.">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말로써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요한에게는 '글로써' 복음을 선포하라는 명령이 내립니다. 이것

    은 하느님의 말씀을 글이라는 효과적인 수단을 통해서도 전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볼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곱 교회>--여기에 언급된 일곱 교회는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있었던 교회들인데, 실

    제로는 다른 교회들이 더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곱만 언급한 것은 일곱이라는 숫

    자의 상징 때문입니다. 즉 전체 교회를 나타냅니다. 여기 언급된 일곱 도시는 당시 총독

    이 주재하던 도시들로서 그 지역에서는 중요한 도시들이었습니다.

 

12절..<나는 나에게 말하는 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보려고 돌아섰습니다. 돌아서서 보니

    황금 등잔대가 일곱 개 있고,>--요한은 말하는 분이 누구인지 보려고 말씀이 들려오는

    쪽을 향하여 돌아섰고, 첫 환시를 체험하게 됩니다.

    <황금 등잔대가 일곱 개 있고>--황금은 가장 값진 금속으로서 천국의 모습을 설명하는

    소재로 등장합니다.

    일곱 개의 황금 등잔대는 예루살렘 성전에 있었던 등잔대(탈출기 25,31-40 ; 즈카르

    야 4,2-6)에서 온 표현으로서 일곱 교회를 뜻합니다. (이 설명은 20절에 나옵니다.)

    보통 등잔대의 등불은 세상을 비추는 하느님의 빛을 뜻합니다. 따라서 교회란 하느님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는 등잔대, 또는 등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절..<그 등잔대 한가운데에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발까지 내려

    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두르고 계셨습니다.>--<등잔대 한가운데에>--일곱

    등잔대가 일곱 교회라면 '등잔대 한가운데' 라는 말은 예수님이 전권을 가지고 전 교회를

    장악한 것을 뜻하는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구절은 다니엘서 7장 13절에서 온 표현으로서 메시아, 종말

    의 심판자를 뜻합니다.

    <발까지 내려오는 긴 옷>--이것은 사제의 복장인데 이분이 천상적 존재라는 것을 나타

    냅니다.

    <가슴에는 금띠를>--구약성경에서 '금띠'는 왕권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대사제도 금띠를

    했는데, 왕은 허리에 금띠를 둘렀고 대사제는 가슴에 둘렀습니다.

    따라서 '긴 옷과 금띠'는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존엄성을 상징합니다.

 

14절..<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흰 양털처럼 또 눈처럼 희고 그분의 눈은 불꽃같았으며,>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흰 양털처럼 또 눈처럼 희고>--이것은 다니엘서 7장에서 온

    표현입니다. '흰 색'은 하느님의 나타나심, 신적인 형상, 하느님의 존엄성과 승리, 죄 없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하느님께서 친히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 안에서 드

    러난다는 뜻입니다.

    <그분의 눈은 불꽃같았으며>--이것은 다니엘서 10장에서 온 표현으로서 '불꽃'은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아니라 모든 것을 사르며 깊이 파고드는 힘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하느님의 전지하심, 모든 생각과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통찰력을 뜻합니다.

 

15절..<발은 용광로에서 정련된 놋쇠 같고 목소리는 큰 물소리 같았습니다.>--<발은 용광

    로에서 정련된 놋쇠 같고>--이것은 다니엘서 10장에서 온 표현입니다. 이 구절은 하느님

    의 전능하심을 나타내는데, 어떤 폭력이든지 하느님의 전능에 압도된다는 뜻입니다.

    '용광로'는 심판자이신 그리스도의 신적 주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용광로에서 정련된

    놋쇠'는 그리스도의 권능, 힘을 상징합니다.

    <목소리는 큰 물소리 같았습니다.>--이것은 에제키엘서 1장과 43장에서 온 표현입니다.

    '큰 물소리'는 신적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이며,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하느님의 음성(명

    령)을 뜻합니다.

 

16절..<그리고 오른손에는 일곱별을 쥐고 계셨으며 입에서는 날카로운 쌍날칼이 나왔습니

    다. 또 그분의 얼굴은 한낮의 태양처럼 빛났습니다.>--<오른손에는 일곱별을 쥐고 계셨

    으며>--20절에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오른손'에 쥐고

    있었다는 말은 굳게 쥐고 있음을 뜻합니다.

    '일곱 교회의 천사들'은 교회의 지도자들, 또는 교회 공동체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이 구

    절은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지배권, 통치권을 뜻하는데, 주님께서 그 지도자들에게 맡긴

    임무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그들에 대한 주님의 통치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입에서는 날카로운 쌍날칼이 나왔습니다.>--'입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쌍날칼'은 하느님

    말씀의 관통력을 뜻합니다. 즉 하느님의 말씀은 심판의 말씀이고 살아 있는 말씀이며 사

    람의 심층까지 파고드는 힘이 있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칼날이 쌍날인 것은 교회 지도

    자들에 대한 표현으로 지도자들은 주님으로부터 교회를 통치하는 권한을 받았지만 동시에

    책임도 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심판 날에는 지도자들도 심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즉

    자기들이 한 일에 대해서 결산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의 얼굴은 한낮의 태양처럼 빛났습니다.>--하느님은 빛 자체이시며 인간의 육안으

    로는 바라볼 수 없는 강렬한 빛입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연상하게 하는

    구절인데,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7절..<나는 그분을 뵙고, 죽은 사람처럼 그분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나

    에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나는 그분을 뵙고, 죽은 사람처럼 그분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이 구절은, 하느님의

    본질과 권능이 계시되었을 때, 그 초월적 존재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나약함을 느끼고 압

    도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구절입니다. '죽은 사람처럼' 엎드렸다는 말은 큰 두려움을

    표현한 말입니다.

    <그분께서 나에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하느님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쓰러진 인간을 일으켜 세울 분은 하느님뿐입니다.

    손을 얹는 것은 안수 동작인데, 여기서는 위로를 주는 동작이면서 동시에 예언자에게 사

    명을 부여하는 동작입니다.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8절에서 하느님에게 적용된 '알파요 오메가' 라는 표현이

    이제 예수님에게도 적용됩니다.

    하느님과 그리스도는 구원 역사의 시작이고 마침이십니다.

 

18절..<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나는 죽음과 저승

    의 열쇠를 쥐고 있다.>--<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

    다.>--원래 '살아 계신 하느님'이라는 표현은 죽은 우상들과 대조하여 하느님을 일컫는

    명칭입니다.

    여기서 '살아 있는 자다.' 라는 말은,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써 '살아 있는 자', 즉 살아

    계신 하느님이라는 것이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죽었었지만', 즉 예수님은 인간의 운명에 참여하여 죽음을 당했지만,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즉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부활로써 죽음을 극복했고, 하느님의 충만하고 영원한

    생명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보라' 라는 말은 엄숙하게 선언할 때의 관용어입니다.

    <나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있다.>--(공동번역 성서는 '저승'을 '지옥'으로 번역했

    는데, 여기서는 단순히 '죽은 사람이 머무는 곳'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저승'이 올바른

    번역입니다.) '열쇠'는 능력과 주권을 뜻합니다. 그리스도는 부활로 죽음을 이기고, 모든

    죽음과 모든 죽은 자들, 또 죽은 자들이 있는 저승에 대해서도 완전한 주권을 가지고서

    주님으로 군림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죽음의 세력은 예수님의 교회를 지배할 수 없고,

    우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절..<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일어나는 일들과 그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여라.>

    --11절의 명령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환시를 통해서 본 것들을 기록해서 모든

    교회에 보내야 합니다. '네가 본 것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과거와 현재의 교회 상

    황인데, 2장-3장의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일어날 일들'은 미래의 상황인데 4장부터의

    내용입니다.

 

20절..<네가 본 내 오른손의 일곱별과 일곱 황금 등잔대의 신비는 이러하다.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고 일곱 등잔대는 일곱 교회이다.">--이 구절은 앞에 나온 상징들을 설

    명해주는 구절입니다. '일곱 교회'는 전체 교회를 뜻합니다. '일곱 교회의 천사들'은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들, 또는 교회 공동체 자체를 나타낸다고 해석됩니다.

    (그런데 왜 '천사들'이라고 표현했는지는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에서는 '별'은 곧 '천

    사들'이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별'이 초월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천사들'은 교회를 책임

    지고, 교회를 대표하면서 교회와 동일시되는 교회의 수호천사들을 뜻한다고 해석하는 학

    자들이 있습니다. 이 해석도 어느 정도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 우리 교회가 각 개별

    교회마다 수호천사가 있다고 믿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2장-3장의 편지의 내용

    을 보면 각 교회를 칭찬하거나 꾸짖고,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에게 회개를 촉구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여기서는 이 말을

    교회의 수호천사로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을 그냥 '교회 공동체들, 또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인격화한 표현으로 생각

    하는 것이 무난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묵시록의 다른 곳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표현을 왜 이곳에서만 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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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계시, 사랑"

 

우리는 신이 있다고 믿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신이 없다고 믿습니다.

(결국 그들도 무엇인가를 믿기는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

무신론자들은 믿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만 믿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증언하고,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선교활동이라고 부릅니다.

무신론자들은 우리를 사랑하는 신이란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은 마치 '신이 없다는 것을 믿는' 종교의 선교활동처럼 보입니다.

 

묵시록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계획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사랑의 계획이라고 믿습니다.

신이 없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신의 계획, 섭리 같은 것은 믿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이 우주는 목적 없이 흘러가다가 증발하게 될 허무일 뿐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것'만 믿습니다.

우리는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믿습니다.

우리는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믿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무신론자들은 우리에게 신의 존재를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그 행복을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증명할 수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증명할 수 있는 행복은 행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과학이 아닙니다.

그냥 체험이고 느낌이고 깨달음입니다.

 

계시된 신비 중에 최고의 신비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

 

계시... 그것은 곧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기 때문에 알게 됩니다.

믿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기 때문에 믿게 됩니다.

사랑은 곧 신비이며, 신비 속으로 들어가는 열쇠입니다.

 

2007. 12. 26.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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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Rev.S.Moy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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