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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 11 강의 : 코린토 후서 (김영필 신부님)

윤 베드로 2016. 8. 27. 21:30

 목성 성당 김영필 주임 신부님

 

 

 

 

 

 

 

 

 

 

 

제 11강의 : 코린토 후서

 

 

 

 

1. 구조

 

 

      바오로의 4변째 편지(화해 편지)

 

라. 1장 - 9장

 

  1) 서언 : 1, 1 - 2

 

  2) 바오로와 코린토 교회와의 관계 : 1, 3 - 7, 16

 

      * 찬미와 감사(1, 3 - 11)

 

      * 코린토 방문 계획을 취소한 이유(1, 12 - 2, 13)

 

      * 사도직의 위대함과 우위성(2, 14 - 4,6)

 

      * 사도직의 고초와 희망(4, 7 - 5, 21)

 

      * 하느님을 일꾼으로서의 생활(6, 1 - 7, 4)

 

      * 디도를 만난 기쁨(7, 5 - 16)

 

  3)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8장 - 9장)

 

 

 

      바오로의 3번째 편지(눈물 편지)

 

다. 10장 - 13장

  4) 반대자에게 충고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호(10장 - 13장)

      * 사도 직분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대한 답변(10장)

      * 반대자들에 대한 사도직 권위 변호(11, 1 -12, 13)

      * 세 번째 방문 계획(12, 14-13, 10)

 

  5) 맺음말 ㅡ 마지막 훈시와 작별인사(13, 11 - 13)

 

 

 

2. 길잡이

 

     4편의 코린토 서간

 

 약 성경에는 바오로가 코린토 교회에 보낸 편지가

전, 후서 2통만 수록 되어있지만, 실은 4통의 편지를 써 보냈다.

 

54년경 에페소에서 3차 전도여행을 할 때(코린전 16, 8 - 9)

발송한 것이 현재의 코린토전서이다.(나).

 

 

그러나 이에 앞서

또 한편의 편지를 써 보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가).(1코린5, 9)

 

 

 

 

 오로는 예루살렘 교우들을 위해 모금을 독려코자

디도와 현조자 한 사람을 코린토로 파견했으나(2,코린 12, 17 - 18)배척 당한다.  

나아가 바오로의 사도직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몸소 코린토를 방문한다.

 

 

하지만 코린토 신자 대부분이

바오로 반대파들에게 동조한다.(2코린2, 5 - 11)

 

 

 

바오로는 허탈한 마음으로 에페소로 돌아와서

그 교우들에게 비통한 편지를 써 보낸다.(2코린 2, 4)

이 편지를 "눈물편지"라고 하는데,

바오로가 코린토 교회에 보낸 3번째 편지로서

현재의 코린토 후서 10장 ㅡ 13장이 그것이다.(다)

 

 

 

반대자들을 대항하여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눈물겨운 서간이다.

 

 

 

디도를 시켜 이 서간을 보낸 다음

노심초사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기를 기더렸다.(2코린2, 12 - 13 : 7, 5 - 6)

마침내 디도가 돌아와 희소식을 전하였다.

 

 

 

코린토 교우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바오로와 화해하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

불의를 행한 고우들을 처벌했다는 소식이었다.(2코린 2, 5 - 11 : 7, 6 - 16)

이에 바오로는 기쁨과 고마움에 겨워

코린토 교회로 4번째 서간을 보냈다.

 

 

 

 

이것이 바로 현 코린토후서 1장 ㅡ 9장이다.

때는 57년경,

디도는 이 편지를 가지고 형제 한 명과 함께 (8, 6. 17 - 18)

코린토로 내려가 예루살렘 교우들을 위해 모금도 하고

(2코린 8장 - 9장 : 로마 15, 25 - 31)바오로의 방문도 준비했다.

 

 

뒤이어 바오로가 코린토에 당도하여 3달 정도

조용히 지내면서 (사도20, 3)

 

자신의 신락과 신앙을 총 정리하여 로마서를 집필하였다.

 

 

 

 

 

 

 

 

 

 

* 바오로 이후의 코린토 교회

 

 

 바오로는 57년 봄에

코린토를 떠나 필립지에서 해방절을 보내고(사도20, 6)

예루살렘에 상경했다가,

성전에서 로마군에게 체포되었다.

 

 

그 후 가이사리아 총독부에서 두 해 동안

미결수로 옥고를 치르고 나서

네로 황제에게 상소한 까닭에(사도25, 11) 로마로 압송되어

두 해 동안(60 - 62년경) 가택연금 상태에서

지내면서 황제의 재판을 기다렸다.(사도28, 30 - 31)

 

57년 봄 바오로가 코린토를 떠난 다음부터 95년경

로마의 주교 클레멘스가 코린토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까지는

코린토 교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즉 클레멘스 주교는 코린토 교회에 분열이 생기고

지도자들 몇몇이 파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와 더불어 로마 교회 사절 3명을 파견하여

 

화합과 일치를 촉구한 바 있다.  

 

 

 

 

 

 

출처 : 고 운 흙
글쓴이 : 젬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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