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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17>요한복음(하)사랑의 근원과 하나인 참사랑의 구현자 예수

윤 베드로 2016. 8. 23. 14:35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17>요한복음(하)

 

 

 

 

사랑의 근원과 하나인 참사랑의 구현자 예수

 

 

▲ 렘브란트 작 '라자로의 부활', 1630년.

 

 

요한복음의 주제는 '사랑'이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함께

이 세상에서 황홀한 말은 생명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예수님은 생명이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과

사랑이다.

사랑이 먼저일까,

생명이 먼저일까.

두 가지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

사랑이

생명을 낳고,

생명이

사랑을 낳는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보내

그를 믿는 사람은

심판받지 않고

구원받게 하셨다고 요한복음은 말한다.

사랑의 계명에 대해 공부하고자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어떻게 새로운 계명일까.

예수님은 이것이 왜 새롭다고 하셨을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너를 사랑한 것처럼'이다.

사랑의 모델을 예수님이 제시하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계명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나.

예수님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고 말씀하신다.

생명을 얻으려는 자는 잃을 것이고,

생명을 버리는 자는 얻을 것이라고 하신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으려면

밀알은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한다.

이것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친구들에게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웃과 친구를 위해

어떻게 목숨을 내놓으셨나.

카나의 혼인잔치에 술이 동났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확신으로

예수님께 이 사실을 알린다.

예수님 답변은

"아직 제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였다.

예수님이 거부하는 듯한 발언을 하신 것이다.

이 '때'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때다.

성모님은 모든 것을 아들에게 위임한다.

어머니의 신뢰를 받은 아들은 행동에 나선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예수님은

빵의 기적(오병이어)에 이어

없어질 빵에 만족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의 빵을 먹으라고 말씀하신다.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 살 것이라고 하셨다.

말씀 자체이신 분이

우리에게 오셔서

빵으로 먹힌다는 것은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것을 비유한다.

우리는 간음하다 잡힌 여자 이야기를 알고 있다.

유다인 율법에 따르면

간음하다 잡힌 여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

로마법은 간음을 사형죄로 판단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셨다.

이 동작은 침묵으로 자신을 돌아보라는 무언의 요구다.

예수님은

고발자들을 자극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들이 물러났고 고발은 무효가 됐다.

이 여자에 대한 고소는 취하되고

여자는 자유로운 몸이 됐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를

예수님이 보여주신 자비와

인간의 죄가 가진 비참함만이 남아 있다고 해석했다.

예수님이 여자를 용서하신 것은

여자가 져야 할 죄의 대가를

당신이 짊어지겠다는 뜻도 있다.

예수님이 보여준 일화로 라자로 이야기가 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면서 베타니아에 들른다.

유다 지방 베타니아는 위험한 지역이다.

제자들 만류에도 예수님은

라자로를 소생시키기 위해

라자로가 사는 베타니아에 갔다.

예수님이 라자로를 살리는 일은

당신으로선 죽으러 가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라자로를 살린 후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늘었고,

유다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최고의회가 소집됐고,

"많은 표징을 일으키는 저 자를 그대로 두면

모두가 그를 믿는다"며

대사제 가야파가 나서서 예수님을 죽이자고 선동했다.

예수님은 라자로를 살리신 대신

당신은 죽음의 길을 가셨다.

"나는 양들을 위해 내 목숨을 내놓는다"는 말씀을 실천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한 유다를 포함해

당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사랑의 근원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요한 15,9)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사랑의 기원이 바로

당신을 사랑하신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아버지의 아들을 향한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 사랑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생명과 진리,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의 권한,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받으셨다.

아들은

아버지께 받은 전폭적인 사랑에 보답한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당신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보여주신 진리를

세상에 증언하는 것이

당신이 세상에 온 목적이라고 말씀하신다.

십자가에서 목숨을 잃으면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일치에로 초대를 받았다.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5,5)고 말씀하신다.

 

 

<가톨릭대학 성서신학 교수 백운철 신부님>


 

 

 

 

 

 

 

 

출처 : 고 운 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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