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자료/신약 여행

[스크랩]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14>사도행전, 인간적 나약함을 통해 이뤄지는 복음 선포

윤 베드로 2016. 8. 22. 17:23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14>사도행전

 

 

 


인간적 나약함을 통해 이뤄지는 복음 선포

 

 

 

▲ 렘브란트의 '바오로와 베드로의 논쟁'(1628년).

높은 의자에 앉아 성경 구절을 적으며 설명하는 바오로와

반론을 펴려고 다른 몇 군데에 손가락을 끼워 놓고

바오로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베드로.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들이 유다인 율법을 지킬 의무가 있는지를 토론했다.

 

 

 

 

성령강림은

이스라엘의 재건,

즉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일으킨 사건이다.

예루살렘은 사도들이

처음 예루살렘 교회를 세워 선교활동을 전개한 곳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날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나누며 기도한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영원한 이상으로 남았다.

예루살렘 교회가 기도하는 공동체로서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부족한 모습도 있었다.

성찬례는 빵을 나누는 나눔의 자리였다.

그런데 그리스계 유다인 과부들에게

빵 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과부들이 호소했다.

열두 사도들은

그리스계 유다인들로 7명의 지도자를 뽑는다.

이중 스테파노가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된다.

개방적인 스테파노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최고 의회에서 설교하면서

의인이신 예수를 여러분이 죽였다고 말한다.

스테파노의

비판적 설교에 사람들은 격분했고,

스테파노를 죽이게 된다.

스테파노는 '주님, 제 영을 받아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스테파노는

신약성경의 첫 순교자가 됐다.

스테파노의 순교 사건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로 발전했다.

초대교회에서 복음이

 예루살렘 바깥으로 선포된 계기는 박해였다.

예수가

너희들은 이제 예루살렘을 바탕으로

온 유다와 사마리아,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예수의 예언이 실현됐다.

6명의 지도자들은

안티오키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스계 출신 유다인들이

복음을 선포해 교회를 세웠고,

예루살렘 다음으로 중요한 그리스도교 교회가 안티오키아에서 세워졌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사울이라는 인물이 등장했다.

사울은 암흑 속에 있다가

하나니아스라는 유다인을 만나면서 자신의 소명을 듣는다.

사도로 불림을 받는 사건은

다마스쿠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사도행전 전반부에는

베드로 사도가 주인공으로 활동한다.

오순절 설교를 시작으로

주도적 역할을 하며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선포한다.

베드로는 환시 체험을 통해

음식 규정에서 자유롭게 되고

백인대장의 집에 머물며 집안 사람들에게 세례를 준다.

이방 선교는

바오로 사도가 아닌 베드로 사도를 통해 시작됐다.

베드로 사도가 이방인들을 만나 복음을 선포하고 식사를 했다.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가

이방인을 만나며 제기된 질문은

유다계 율법을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였다.

사도들은

이방인들이 유다인 율법을 지킬 의무가 있는지를 놓고 토론했다.

이것이 예루살렘 사도회의(AD 49년)다.

이들은 할례는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이방인도 지켜야 할 규정 네 가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은 먹지 않는다'

'불륜(불법적 결합)을 행하지 않는다'

'목 잘라 죽인 짐승의 고기를 먹지 않는다'

'피를 먹지 않는다'를 정했다.

친서에 나타난 바오로 사도의 모습과

사도행전에서 보여주는 바오로 사도의 모습은 다르다.

바오로 사도는

율법에 대해 친서에서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강조한다.

사도행전에서 바오로 사도는

디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푼다.

바오로 사도는 재판장에서

조상의 율법과 전통을 어긴 적이 없다고 자부한다.

친서에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소중해

모든 과거를 쓰레기처럼 여긴다고 말한다.

사도행전에서 바오로 사도는

바리사이의 전형적인 사람이라고 자신을 내세운다.

50년대 바오로 사도는

유다교의 율법과 치열하게 대결했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주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바오로 사도의 신학적 전망에서 온 것이다.

루카복음사가의 활동 시기에는

유다교와 갈등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바오로 사도가

집중적으로 설교한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예수 부활은

성령강림을 촉발시키고

성령강림은 이방인을 포함하는

하느님 백성의 재건을 가져왔다.

부활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하느님 백성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다.

바오로 사도는

부활을 믿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스테파노에 이어 야고보 사도가 순교하고

열두 사도는 흩어져 예루살렘 밖에서 복음을 선포한다.

이방인을 중심으로

복음을 선포한 바오로 사도는

마지막 여정으로 예루살렘을 여행했다.

바오로 사도는

여행하면서 유다인 눈에 띄어 체포된다.

2년간 옥살이를 하고 재판받는다.

바오로 사도는

심문과정에서

이스라엘의 희망이 예수 부활이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도행전이 주는 메시지는 복음 선포자들이

(예수가 그러했던 것처럼) 괴롭힘을 당하고

채찍질을 당하는 등

온갖 어려움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말씀이 승리한다는 것이 아니다.

복음 선포는 장애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불구하고'와 '통해'를 잘 구분해야 한다.

불구하고는 장애를 극복하는 승리의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바오로 사도가 여정을 통해 보여준 것은 인간적 나약함이다.

루카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하신 말씀에

끝까지 충실하시다는 것을

사도행전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고,

하느님 말씀에 대한 신뢰를 전해준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을 위한 호교론이라는 것을 사도행전이 전해준다.


<가톨릭대학 성서신학 교수 백운철 신부님>

 

 

 

 

 

 

 

 

 

 

출처 : 고 운 흙
글쓴이 : 고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