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11> 루카 (상)
구원 계획,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 루카복음서는 예수가 장차 행하게 될 소명을 시메온의 노래를 비롯한 네 개의 찬미가로 드러난다. 시메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감격스러워 하는 장면을 묘사한 모자이크화.
루카는 바오로 사도와 함께 선교했던 동역자이자 의사로서, 예수와 시간상으로 동떨어진 제3세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구약성경과 그리스 문화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유려한 필치로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편찬했다. 다가오는 종말과 심판, 하느님 나라에 심취해 세상의 질서와 제도에 무관심한 편이었다. 그러나 루카는 이들에게 현실에 관심을 둬야 한다는 점과 현실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또 주요 인물들이 활동한 장소와 시간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구원 계획과 세상 역사를 결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병행법(synkrisis)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루카복음에서는 예수와 요한 세례자 행적이, 사도행전에서는 예수와 제자들 행적이 반복 서술돼 있다. 이는 제자들이 스승 예수의 삶과 소명을 이어받아 뒤따른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모두 예수의 유년기를 기록하고 있지만, 내용 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마태오복음이 예수 부모 중에서도 요셉을 중심으로 기록했다면 루카복음은 철저히 마리아 중심으로 서술했다. 또 마태오복음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요셉에게 마리아 잉태 사실을 통보하지만, 루카복음에서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찾아와 아기가 생길 것임을 알린다. 이때 천사는 마리아와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취한다. 마태오복음에서 예수는 통치자 헤로데 왕(BC 4-7년)과 적수인 것처럼 묘사된다. 반면, 루카복음에서는 예수 부모가 호구조사에 응하기 위해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여정에 예수가 태어난다. 이 같은 시간차는 예수 부모가 로마제국의 정치질서와 유다교 율법에도 충실했음을 드러냄으로써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에 적대적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 평화를 전하는 종교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마태오복음에서 별이 나타나 동방박사들을 이끈다. 메소포타미아의 학자이자 사제였던 이들이 가장 먼저 예수 탄생을 알게 됐다는 것은 예수가 유다인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할 보편적 메시아라는 점을 암시한다. 루카복음에서는 양을 치던 목동들 앞에 천사들이 나타나 환호의 노래를 부른다. 이는 예수 탄생이 우주적 찬미가 울려 퍼지는 경사스런 사건이라는 것을 뜻한다. '다윗 왕좌를 계승하는 이'와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리는 이'로서 그 신원과 사명이 제시된다. 그가 장차 행하게 될 소명은 네 개의 찬미가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가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1,52-53)라고 노래한다. 다소 과격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노래는 당시 예루살렘의 가난한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가 아닌가 추정된다. 이는 다가올 메시아에게 이러한 역할을 기대한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 간절히 청원한 끝에 뒤늦게 아기를 가진 그는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1,76-79) 하고 노래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 그들을 평화의 길로 이끄는 사명이라는 것이다.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2,14)라고 노래하며 평화의 복음을 선포했다. 간절히 청했던 시메온은 예수를 안고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2,29-32)라고 노래했다. 이는 아기 예수를 본 것이 이미 구원을 본 것이며, 하느님 구원이 이 땅에 도래했다는 결정적 사실을 나타낸다.
<가톨릭대학 성서신학 교수 백운철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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