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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족은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윤 베드로 2015. 8. 4. 10:36

 

가족은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우리가 가장 사랑을 받는 곳이며, 가장 상처를 받는 곳입니다.

최근 인기 안방극장 ‘가족끼리 왜 이래’는 가족이라서 당연하게 여겨왔던 희생과 배려들,

가족이라서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았던 상처와 무관심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평생 두부 가게를 운영하면서 자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아버지가 드라마 중반에서는 자식들을 대상으로

‘불효소송’을 내어 법정공방까지 벌어지게 합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고등학교 이후에 들어간 돈, 즉 학비, 생활비 등 각자 몇 억씩을 내라고 소송을 하고,

자식들은 부모가 자식을 키우고 공부시켜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맞대응을 합니다.

자식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자식 바보 아버지가 왜 그랬을까요?

자식들은 커 가면서 가족보다 각자 자기 일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으려고 온 힘을 쓰지만 정작 가정사와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소홀해집니다.

직장 일이 우선시 되면서, 아버지 생일은 물론 어머니 기일도 뒷전으로 미루고 맙니다.

이제야 아버지는 자신의 가슴을 치며, 자신이 자식을 잘못 키웠음을 통탄하지만,

이제 자신의 힘으로는 자식을 움직일 수 없어, 법의 힘으로나마 자식을 훈계하려고 합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잊어버린 자식들을 위해서, 세상의 경쟁에 휘말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는 자식들에게

회초리를 드는데, 나중에 이 일은 암이 걸린 아버지가 남은 3개월을 자식들과 함께 보내고자 하는 의도였음이 밝혀집니다.    

 

여러분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해 본 적이 언제였나요?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법칙을 정해서 함께 식사하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드라마에서도 아버지가 소송을 취하하는 대신 내세운 것이 자식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공동 식사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희 수도 공동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족은 혈연 공동체이기에 관계가 깨어졌다가도 그나마 쉽게 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수도 공동체는 수도가족이라고 하지만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규율이 생겨났다 봅니다. 공동 기도시간, 공동 식사시간, 공동 작업시간, 공동 오락시간 등.

이런 규칙을 성실히 지켜나가지 못할 때는 수도 공동체는 가족공동체가 아니라, 하나의 기숙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말 그대로 밥상머리에 앉아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부모가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고

삶의 지혜와 예의를 가르치며,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밥상머리 교육’을 잘 행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서로 다른 환경의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 제자들을 한 가족 공동체로 만드시기 위해 예수님은 ‘밥상머리 교육’을

실시하셨습니다.

마지막 ‘밥상머리 교육’이 이루어진 곳이 ‘최후의 만찬’ 상이었습니다.

당신이 떠나시고 나서도 이 ‘밥상머리 교육’이 이어지기를 원하셨기에 당신 몸을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밥상머리 교육’이 지금도 ‘미사’를 통해서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체를 받아 모시기 위해 우리들은 매주(매일) 모입니다. ‘말씀 전례’를 통해 예수님의 말씀(훈화)을 듣고

‘성찬 전례’ 때 음식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 안에 영하고

(이때 예수님만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함께 계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받아 보시는 것임),

이제 이 받은 사랑을 나누기 위하여 세상에 파견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살아갈 힘을 얻고 우리의 모든 생활은 여기를 향하고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이다.” (교회헌장 11항)이

‘밥상머리 교육’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교회 가족 공동체에서 쉽게 이탈해 나가기에,

교회는 신자들에게 주일미사 참여를 의무로 하고 있습니다. 

 

성체(Eucharist)의 어원이 ‘감사’라는 말이듯이,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부모님에 대하여 하느님에 대하여 감사하며 살아갈 때, ‘가족끼리 왜 이래’가 아니라 ‘가족이니깐’ 모든 것이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는 삼위일체 하느님 공동체를 닮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리 파울리타 수녀

 

출처 : 레지오단원들의 쉼터
글쓴이 : ♥보니파시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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