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키아 교회 (행전 11, 19-30) 안티오키아 교회가 갖고 있는 중요한 의미를 살펴보면, ①최초의 혼성교회 : *안티오키아 교회는 : 유다 땅이 아닌 이방 지역에 세워진 그리스도교 최초의 유다인과 이방인 혼성교회.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이후 예루살렘에서 열 두 사도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교회가 탄생했다. 주축을 이룬 신도들은 本土 유다계 그리스도인과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로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행동을 같이 했던 이들이다. 그들 중 스테파노가 처음으로 순교했고,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 안티오키아로 옮겨갔다. 그들은 안티오키아에서 교회를 시작했는데 그 당시 이야기가 사도행전 11장 19-30절에 실려 있다. *안티오키아에서 디아스포라 유다인을 대상으로 선교하던 중 뜻밖의 일이 벌어졌는데, 키프로스 사람과 키레네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이다. 이방인한테도 선교 효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예루살렘 母교회는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에 파견했고, 성과를 확인한 바르나바는 다르소에 있던 바오로를 데려왔다. 바오로는 1년 동안 안티오키아 교회에 머물렀다고 하는데, 이 기간 동안 유랑 선교사 생활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정보를 습득한 것 같다. ②이방인 선교의 전초 기지 : *바오로의 유랑 선교사 생활에서 안티오키아 교회는 매우 중요하다. *로마제국에는 : 인구 50만이 넘는 도시가 세 곳이나 있었다. 제국의 수도 로마와 문화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동방의 중심지 안티오키아였다. ⇒오늘날로 보면 인구 50만은 별로 많지 않으나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안티오키아는 : 내륙에 있었지만 가까운 곳에 지중해로 연결되는 셀레우키아 항구가 있어 지중해 각처로 여행하기에 편리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오로가 세 차례의 선교여행을 할 때 언제나 안티오키아 교회를 출발지요 도착지로 삼았다고 한다. ③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 : 안티오키아 시민들은 : 안티오키아 교회의 구성원에게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붙여 주었다(사도11,26). ⇒1세기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다.(베드로 1서 4,16). ④이냐시우스 주교 : 안티오키아의 3대 주교인 이냐시우스가 그리스도교 전체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이냐시우스 주교는 : 110년경 로마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안티오키아에서 로마로 압송 당해 순교했는데, 끌려가는 도중 주변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그리스도교의 기틀이 되는 중요한 내용을 언급한다. 그는 예수님을 하느님과 같은 분으로 보았는데, 이것은 후에 그리스도교의 핵심 가르침으로 자리잡게 된다. 곧 우리가 매주 외우는 ‘니케아 신경’(325년에 완성)의 정신을 제공했던 것이다. 이냐시우스 주교는 그리스도인들을 ‘가톨리켄’이라 불러 후에 그리스도교의 공식 명칭이 ‘가톨릭’이 되게 한 장본인기도 하다. ⑤안티오키아 학파 : 2-7세기에 활동했던 안티오키아 학파는 그리스도교 신학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고 많은 신학자들을 배출했다. ⇒그리하여 니케아 공의회에서 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리아와 로마 교회를 총 대주교좌로 임명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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